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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니쉬 걸]

  톰 후퍼의 [대니쉬 걸]은 20세기 초 역사상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았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던 덴마크 화가 에이나르 베게네와 그의 아내 게르다 베게네의 실화에 바탕을 둔 데이빗 이버쇼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버쇼프의 원작 소설이 얼마나 실화에 가까운 지 그리고 또 영화가 얼마나 원작에 가까운 지를 생각해 보면 묘한 거리감이 생기는데, 영화에서도 이에 상응하는 거리감이 있습니다. 베게네가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여성성을 서서히 인지하는 과정과 그에 따른 그와 그의 아내 간의 관계 변화는 전반부 동안 비교적 잘 묘사되어 있지만, 정작 성전환 수술과 관련된 후반부는 어정쩡하고 머뭇거리는 티가 나지요. 추천하는 게 망설여지긴 하지만, 에디 레드메인과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지난 주 오스카 후보 지명이 당연할 정도로 좋으니 이들 배우들 팬이시면 꼭 챙겨보시길 바랍니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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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데이빗 O. 러셀의 신작 [조이]는 그의 전작 [아메리칸 허슬]에서처럼 실화를 기점으로 해서 그의 단골배우들과 이야기를 이리저리 마음껏 굴려대려고 하지만, 전작만큼의 성과나 재미를 뽑아내지 못합니다. [아메리칸 허슬]에 비해 이야기 통제력이 약하다 보니 산만한 티가 자주 나는 가운데, 주인공을 둘러싼 조연 캐릭터들은 상대적으로 매우 얄팍한 편이고, 후반부에서 결말에 도달하는 과정은 아예 대놓고 작위적이다시피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 영화는 러셀의 전작들처럼 별나게 튀는 면들로 소소한 재미를 전달하고, 25세의 나이에 이 영화로 벌써 네 번째 오스카 후보에 오른 제니퍼 로렌스는 본인만의 존재감으로 영화를 든든히 지탱합니다. 본인 경력의 최고 순간이 아니더라도, 로렌스의, 로렌스에 의한, 그리고 로렌스를 위한 본 영화에서 그 자연스러운 매력과 함께 다시 한 번 스타 배우의 입지를 다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도 영화 속 결점들을 살짝 눈감아줄 만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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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보]

  제이 로치의 [트럼보]는 1940-50년대 동안 블랙리스트로 고초를 당했던 유명 할리우드 인사들 중 한 명인 달톤 트럼보의 전기 영화입니다. 1947년 반미 활동 조사 위원회 앞에서 그의 절친한 동료들과 함께 증언을 거부한 뒤 트럼보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여느 다른 사람들처럼 많은 고생을 했는데, 그러다가 1960년에 [스파르타쿠스]와 [엑소더스]로 그는 다시 업계에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블랙리스트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여러 모로 얘기할 거리가 많은 극적인 실화이지만, 정작 영화는 이야기를 너무 좀 단조롭고 심심하게 그려가고, 그러니 주연배우 브라이언 크랜스턴의 최근 남우주연상 지명은 그의 좋은 연기에도 불구 노력상 같아 보입니다. 루이스 C.K., 존 굿맨, 마이클 스털바그, 다이앤 레인, 그리고 헬렌 미렌 등의 쟁쟁한 배우들을 조연으로 데려다 놓았는데도 정작 그리 잘 활용하지 않은 게 아쉽지만, 그 당시에 루엘라 파슨스와 쌍벽을 이루었던 그 악명 높은 할리우드 기레기 마녀 헤다 호퍼를 미렌 여사님이 쏠쏠하게 연기하는 걸 보는 건 재미있긴 하지요.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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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1823년에 미국 사우스다코타 주의 미개척지 지역을 탐험 도중 그리즐리 곰과 마주쳐서 거의 죽을 뻔한 것도 부족해서 극한의 생존투쟁을 해야 했던 휴 글래스의 실화를 토대로 한 마이클 푼크의 소설에 부분적으로 바탕을 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신작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는 개고생이란 말도 부족할 지경의 암담한 생존투쟁 과정 속으로 관객들을 밀어 넣습니다. 2시간 반 정도 되는 상영 시간 동안 내내 이를 지켜보는 건 그리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지만, 이냐리투와 그의 배우들과 스텝진들이 그 추운 야외 로케이션 장소들에서 엄청 고생하면서 만든 결과물엔 무시할 수 없는 생생함과 강렬함으로 넘칩니다.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츠키가 [그래비티]와 [버드맨]에 이어 또 한 번 우리를 시각적으로 압도하는 가운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어마어마한 오스카 시즌 연기로 영화를 이끌어 가고, 자칫하면 엄청 평범해질 수 있었던 악역을 나름대로 잘 연기한 톰 하디도 든든합니다. [헤이트풀8]처럼 좋아하기 힘든 웨스턴 영화이지만, 매우 인상적인 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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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쇼트]

 [빅 쇼트]는 국내에서 [빅숏]으로 번역 출간된 마이클 루이스의 논픽션 책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각색 과정에서 중요 인물들 이름이 대부분 변경된 걸 보면 극화 과정에서 어느 정도 픽션 요소들을 버무려 넣은 것 같은데, 일단 기본 줄거리는 변함없습니다. 2005년에 여러 금융 거래인들이 미국 주택 시장 밑에서 쌓여가고만 있었던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함을 통해 2007-8년 동안 벌어질 대규모 금융 위기의 징조를 미리 감지하게 되었는데, 동시에 그들은 이를 통해 세기의 한탕 거래를 할 기회를 잡게 됩니다. 이들 각각이 이 기회에 달려드는 동안 영화는 미국 금융업계의 요지경을 경쾌하게 그려가는데, 그러면서도 탐욕과 어리석음이 야기한 대규모 금융 위기의 엄청난 사회적/경제적 파장을 간과하지 않기 때문에 영화 속의 웃음들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앵커맨]의 감독인 애덤 맥케이가 이리저리 전개되는 이야기를 코미디와 드라마 사이에서 노련하게 균형을 잡는 동안, 크리스천 베일, 스티브 카렐, 라이언 고슬링, 그리고 브래드 피트를 위시한 영화 속 출연진은 다채로우면서도 고른 앙상블 연기를 선사하고, 이를 즐기다 보면 상영 시간 2시간이 후딱 갑니다. [인사이드 잡]과 [마진 콜]을 재미있게 보셨다면 이 영화도 많이 재미있게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1/2)


 P.S.

 맥케이는 전작인 [앵커맨: 더 레전드 컨티뉴]를 만드는 조건으로 본 영화를 만드는 걸 허락받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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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의 전기를 원작으로 한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잡스 일생의 세 중요 시점들에 집중하면서 일종의 3막 무대 뒤 드라마를 전시합니다. 제1막은 1984년에 잡스가 매킨토시 컴퓨터를 공개하기 직전을 다루고 있는 가운데, 제2막은 애플에서 쫓겨난 잡스가 1988년에 자신의 새 회사의 컴퓨터를 공개하기 직전을 다루고 있고, 제3막은 다시 애플로 돌아온 잡스가 1998년에 iMac G3 컴퓨터를 공개하기 직전을 다루고 있지요. 감독 대니 보일이 이들 각각에 뚜렷하게 구별되는 분위기를 불어넣으면서 영화를 매끄럽게 굴려가는 동안, 각본가 아론 소킨은 [소셜 네트워크]에서처럼 실화와 픽션을 적절히 섞으면서 분주하면서도 열띤 순간들을 제공하고, 출연 배우들은 다 하나 같이 나무랄 데 없는 연기를 선사합니다. [잡스]의 애쉬튼 커쳐에 비하면 스티븐 잡스를 많이 닮지 않았지만, 마이클 파스벤더는 훨씬 더 좋은 연기로 이 단점을 보완하고, 그 앞에서 전혀 꿀리지 않는 케이트 윈슬렛, 세스 로건, 제프 다니엘스, 그리고 마이클 스털바그 등의 조연 배우들도 보기 좋습니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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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스범스]

  R.L. 스타인의 청소년용 호러 시리즈를 바탕으로 한 [구스범스]는 익숙한 유형의 판타지 장르물입니다. 동네 고등학교 교감으로 부임하게 된 어머니와 함께 미국 델라웨어 주 매디슨으로 이사 오게 된 우리의 십대 주인공 잭은 이웃에 사는 작가의 딸 한나와 친해지게 되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그녀의 아버지는 이를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일을 계기로 잭은 학교 친구 챔프와 함께 그 작가의 집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 보는데, 알고 보니 그는 다름 아닌 R.L. 스타인입니다. 스타인의 서재를 둘러다보는 도중 잭과 챔프는 엉겁결에 스타인의 원고들 안에 갇혀왔던 수많은 호러 창작물들을 풀려나오게 하고, 당연히 잭, 챔프, 스타인, 그리고 한나는 난장판이 된 마을 안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면서 상황을 해결하려고 하지요. 이런 메타픽션적 설정을 통해 영화는 원작 시리즈의 다양한 호러 캐릭터들을 화면 안에 던져 넣는데, 그 결과물은 모범적인 기성품입니다. 딱히 새로운 건 아니어도, 기대한 만큼의 재미와 스릴을 잘 제공하니 괜히 툴툴거릴 필요는 없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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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모티베이션]

 이스라엘 영화 [제로 모티베이션]의 두 주인공들인 조하와 다피는 어느 사막 지역 한 가운데에 자리 잡은 군 기지에서 복무 중인 여군들입니다. 이들 복무 기간이 언제 끝나는지는 몰라도 매일 인사부 사무실에서 다른 동료들과 같이 시간을 하염없이 때우면서 간간히 장교들 회의 커피 대접하는 건 정말 따분하기 그지없는 일인데, 조하는 그냥 이 따분함을 나름대로 삐딱하게 받아들이는 반면 다피는 도시 근처 기지로 전출되고 싶어 죽을 지경이지요. 실제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군 경험을 했다는 감독 탈야 라비는 이들과 다른 주변 캐릭터들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의외의 순간들을 만들어내는데, 이 순간들로부터 나오는 느긋한 재미도 상당하지만 여성 캐릭터들 관점을 통해 보여 지는 군대 내 생활을 뼈있게 전달하는 면에서도 점수를 줄 만합니다. 전반적으로 볼 때,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는 수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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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초상]

 [아버지의 초상]의 주인공 티에리는 직장을 잃은 후 2년 째 실업 상태에 놓인 중년 가장입니다. 그나마 은행 저축과 실업 수당 덕분에 가족과 함께 그럭저럭 살아왔으니 다행이지만, 여전히 취업의 가능성은 적을뿐더러 조만간 상황이 더 암담해질 수 있으니 그는 가능한 한 빨리 취직해야 합니다. 결국에 그는 취직에 성공하지만 그의 새 직장은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니었고, 영화의 후반부는 그가 새 직장에서 겪는 고민에 초점을 맞춥니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처럼 핸드헬드 카메라를 통해 주인공을 따라가고 지켜보는 동안 본 영화는 우직하게 드라마를 구축하는데, 이는 작년에 깐느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뱅상 랭돈의 과시 없는 좋은 연기에 의해 잘 지탱됩니다. 자연스럽게 영화 속 비전문배우들과 잘 어울리면서도 이야기의 중심을 조용히 잡아가는 걸 보다보면 카메라가 그를 거의 안 보여줄 때도 존재감이 느껴지지요.  (***)


 P.S. 영화의 원제 [Le Loi du marche]는 번역하면 ‘시장법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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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후]

  두 젊은 게이 주인공들의 짧은 인연을 그린 2011년 영화 [Weekend]로 주목받은 감독 앤드류 헤이그의 신작 [45년 후]는 정반대로 오랜 세월 동안 부부로 지내온 한 노년 스트레이트 커플에 대한 드라마입니다. 인생의 황혼기를 느긋하기 즐기고 있는 가운데 곧 결혼 45주년을 맞을 케이트와 제프는 어느 날 스위스에서 날아온 한 편지를 받게 되는데, 편지에 따르면 50년 전에 알프스 산맥에서 사고로 당한 제프의 옛 애인의 시체가 최근에서야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알게 된 후 제프가 그 때 그 시절을 계속 돌아다 보이는 동안 그와 아내 간의 관계는 서서히 삐걱거리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케이트는 불안하고 혼란해집니다. 영화가 이들이 겪는 노년의 위기를 별다른 과장 없이 담담하게 관찰하는 동안, 샬롯 램플링과 톰 코트니는 그들 각자의 연륜과 함께 조용하면서도 흡인력 있는 이중주 연기로 영화를 이끌어 가는데, 본 영화로 처음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게 된 램플링이나 그녀와 함께 작년 초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코트니에게 있어서 영화는 분명 그들 말년 경력의 정점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보든 간에, 헤이그와 그의 두 주연배우들이 단아하고 깔끔한 결말을 이끌어냈다는 건 변함없고 이에 동반된 어느 노래 한 곡은 그 장면과 함께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습니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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