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토피아.

2016.02.27 21:13

잔인한오후 조회 수:2076

주토피아 재미있습니다. 꼭 보세요.

보고나서 한 줄 영업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감정이 동하는 영화더군요.


다른 이야기를 좀 하자면, 원래 주토피아를 이 주 수요일날 볼까 했는데 귀향을 보자는 분이 있어서 뒤로 미뤄지고.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자 마자 영화관으로 바로 갔는데, 상영관이 없더군요. 울며 겨자먹기로 데드풀을 보려는데 그것도 관이 IMAX 밖에 없고. 결국 오늘 주토피아를 보면서 데드풀 IMAX를 보느니 차라리 주토피아를 한 번 더 보는게 나았겠다 싶었습니다. 더빙판이랑 자막판 두 개를 말이죠.


(아래부터 내용 있음)


뭐라 이야기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스트레오 타입 캐릭터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게 맘에 드는 것이니, 굳이 설명을 해서 바이트 낭비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고. 일단, 매우 영리한 영화라 마음에 들었어요. 벽난로 위의 총이 언젠가 쓰이는 것처럼, 나오는 모든 소재는 나중에 전부 쓰입니다. 이런 기술이야 어디에나 쓰이는 것이긴 하지만 정보를 제공하는 시점이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배치되는 것들이 좋더군요. 나쁘게 말하면 편의적이라고 쏘아붙일 수도 있겠지만.


음, 부모가 말리는 첫 장면부터 눈물이 나더라구요. 부모가 말리는데 아무런 변화의 기색 없이 또렷한 홉스의 태도가 말이죠. 한국에서 그런 상황은 언제 일어날까요. 인종 문제가 아니라 (요즘은 대세가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예대로 진학하겠다거나, 돈이 안되는 특정한 직업을 하겠다고 하면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겠죠. 후. (근데 또 뇌의 다른 쪽에서는 동생들이 276명이면 저 세계의 투표권은 어떻게 되어 있는건가 싶더군요. 아무래도 미국이랑 비슷하게 연방제 같은 것인지)


도시로 들어서는 장면은, 마치 [갤럭시 오브 가디언즈]의 첫 독창 장면을 IMAX 3D로 보고 '아, 이걸로 그냥 나가도 돈이 아깝지 않겠다'라고 느꼈던 기분과 흡사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더군요. 사실, 어째서 사하라 바로 옆에 툰드라를 설치해서 기후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들도록 만들어 놓았을까 하는 의문점이 있었지만. 대비 효과를 강하게 주기 위해서였던 거겠죠. 메트로폴리탄으로 올라서는, 이촌향도의 모습은 전세계적인 공통기억이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세계의 도시화 진행속도와 함께, 국가 단위의 정체성 '국민'보다 도심 단위의 정체성으로 묶여가는 현대 시대 같은 것도 떠올려봤죠. 세계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각각의 다른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매우 흡사한 삶을 살기에 좀 더 통합적이고 가깝게 생각할 수 있다는 그런 것이요. (영화에서도 그렇지만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지만)


그 후에는, 문제가 닥쳐오고 그 문제를 해결하지요. 그리고 보통 끝나는 시점에서 한 번 더 뒤집어서 다시 한 번 문제를 해결합니다. 저는 그 뒤집는 부분이 좋더라구요. 보통 단순화시키느라 약자는 선하고 강자는 악하게 그려지기 마련이죠. 그러나 강/약자와 선/악은 별도이죠. 다수/소수와 선/악처럼 말이에요. 개인적으로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될지 모르겠더군요. 인종적으로 재치환하면 기득권층에 대한 의무방어전처럼 보일 수도 있거든요. 우리 쪽도 괴로움이 있다는걸 잊지 말아줬으면 해, 같은 느낌으로요. 저는 좀 더 의도를 선하게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내린 거구요. 어쨌든 좋았습니다.


두 번의 배드엔딩 기회도 있었죠. 마지막이야 가방이 저 쪽으로 넘어가기 전부터 반전이 결정되어 있는 모습이었지만, 다리 밑의 장면이 정말 좋았습니다. 우리의 주인공이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다수자가 소수자를 억압하는 사회로 진입하든가, 아니면 소수권력이 다수를 제압하는 사회가 계속되던가 답은 미묘하기 그지 없습니다.  약한 강도로 홉스에게 2번 상처가 생기는데 그거 왜 그렇게 아파보이는 건가요.


다리밑 이야기를 하자면, 그렇게 감정 폭발하는 상대방을 뒤에 두고 어떻게 부드럽게 화해할 것인가 정말 궁금하지 않던가요. 보통 말이에요. 돌아 서서 두드리면서 토닥토닥 해주면서 조금은 어색한 그런 상황을 그리게 되잖아요. 어후, 풀리기 전까지 고통스러워서 정말 참기 힘들었습니다. 와일드가 참 멘탈이 좋다고 밖에 생각을 못하겠더라구요. (어쩌면 아직도 성역할이 서려있다고 투덜거릴 수도 있겠지만.. 뭐 피차 약한 면 다 드러내긴 했지만서도..)


두 주인공도 귀여워 죽겠더라구요. 무언가를 인지할 때마다 냄새부터 맡는 토끼 묘사라던가. 능청스러움을 끝까지 놓지지 않는 여우라던가. 와일드 같은 캐릭터는 다른 매체에서 자주 있으면서도 묘사가 가끔 어긋나서 아슬아슬하게 그 현실성이 위협받는데, 제게는 딱 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럴싸했어요. 그런 쿨하고 쉬크함을 동경했었던 적도 있었지만 오래 전에 포기했지요. 그런 사람들은 좀 타고 나야 (그래도 각고의 노력 끝에) 가능하다고 봐요.


그냥 뭐, 버디-물 경험이 전무한 제게 뭐든지 새롭게 보여서 재미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좋았습니다. '토끼가 다른 토끼에게 귀여워라고 하는 것은 괜찮지만, 다른 동물이 토끼에게 귀엽다고 하는 것은 조금..' 같은 농담도 재미있었구요. 그리고 마지막에 디즈니가 참지 못하고 노래를 집어넣은 것도 웃겼어요. 아니 중간에 그렇게 비꽜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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