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once upon a time in america

2015.04.19 19:46

bete 조회 수:744

그 유명하고 유명하다는 one upon a time in america를 봤습니다. 

꽃피는 봄날 주말에 딱히 할 일이 없다는 것도 이 긴 영화를 본 이유가 됐어요. 


갱스터 영화이고 남자의 영화같네요. 

영화는 항상 누들스를 중심으로 흘러가니까요. 

여자 분들이 보면 불편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여기 나오는 여자들은 항상 당하고 상처받고 이용당해요. 

아름다운 음악과 영상미의 포장을 벗겨내고 보면

이 영화의 알맹이는 비정하고 냉혹한 음지의 세계, 깡패들의 세계니까요. 


세르지오 레오네가 인생의 막바지에서 되돌아본 

남자의 욕망, 성공, 좌절을 담은 영화같아요. 

돈,권력, 사랑을 차지하기 위한 욕망에 사로잡혀

밑바닥에서부터 온갖 더러운 짓도 마다하지 않으며

아둥바둥 살고 외면적인 성공을 이룬 듯 하나

결국 추락하고 마는 인생. 

아메리칸 드림을 그린 것이기도 하지만

저는 좀 더 보편적인 욕망을 다룬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해요. 


제게 인상 깊었던 장면은 영화 초반에서

누들스 일당의 꼬맹이가 페기랑 관계를 가지려고 화대(?)로 사 가지고 간 케이크를

페기가 목욕하는 시간을 못 참고 다 먹어버린 부분이었어요. 

맞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영화의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것 같았네요.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욕망에 휩싸인 사람들은 

당장을 못 참고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잠시 쾌락을 얻겠지만

그 후에는 두고두고 후회를 하게 되죠. 

어리석지만 그게 우리 인간이고, 세르지오 레오네는 그 어리석은 인간들을 따뜻하게 바라봅니다. 


영화의 중심이 누들스라면 그 양편에는 데보라와 맥스가 있어요.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데보라한테 가야 해요.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마다 누들스는 맥스를 선택합니다. 

엄마가 부르니 가야 하는 것처럼요. 

맥스를 따르는 것이 당장은 이익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표면적일 뿐입니다. 

결국 누들스는 데보라를 강간하여 진정한 사랑도 잃고

종국에는 자기 인생도 잃어버립니다. 

뒤돌아보면 맥스한테 철저히 이용당한 것이지요. 


영화 마지막에 베일리 장관이 되어 나타난 맥스는 

극적으로 성공했으나 또한 극적으로 바닥으로 추락하기 직전입니다. 

맥스는 누들스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지만 누들스는 거절합니다. 

인생 막바지에 가서야 맥스를 따르지 않고 옳은 결정을 한 거죠. 

그리고 맥스는 사라지고 누들스의 눈 앞에는

1930년대의 젊은 남녀들이 떠들썩하게 앞을 지나가고 없어지는 환영이 나타납니다. 

욕망에 사로잡혀 무모하고 어리석게 치고받고 살았던 지난 인생에 작별을 고한 겁니다. 

이제 쓸쓸하게 과거를 회상하며 인생의 황혼을 준비하겠죠. 

실패한 삶입니다. 하지만 세르지오 레오네는 연민을 가지고 따뜻하게 그들을 바라봐요. 

우리 모두는 결국 어리석은 존재이고

우리 삶이란 게 결국 아둥바둥하다가 회한을 남기고 끝마치는 것일테니까요. 


데보라와 맥스는 현실감이 있는 인물은 아닙니다. 

뉴욕 뒷구석 유대인 빈민가에서 시작해서 할리우드 스타나 장관이 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까요. 

그 부분이 좀 아쉽기는 한데 일부러 상징적인 효과를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4시간이 넘지만 그래도 미완성의 느낌이 납니다. 

맥스와 나머지 누들스의 두 친구가 죽는 사건은 영화의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일텐데

내용이 통째로 빠진 것 같습니다. 

이브의 이야기도 살을 붙일만 한데 별로 내용이 없구요. 


그래도 중간중간 화질 나쁜 부분들이 종종 나오는 걸 보니

남은 필름 중에서 최대한 건져보려고 노력한 티는 나는 것 같더라구요. 


주말 하루는 잘 보냈어요. 

저는 누들스에 비하면 너무나 평온하고 정돈된 삶을 살고 있어요. 

누들스의 삶이 바람직한 삶은 아닙니다. 

하지만 욕망을 분출하는 삶은 금기시되지만 한 반쯤은 상상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죠. 

그렇게 보자면 세르비오 레오네가 인생 막바지에 

남성 판타지를 하나 쓰고 갔다고 볼 수도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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