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점보햄버거)

2016.01.25 22:59

여은성 조회 수:2708


 1.인간은...늘 만일을 대비해야 해요. 이 사실을 잊지 않는 저는 돌아올 때마다 반드시 마트에 들르죠. 아무리 배가 불러도요. 그리고 한밤중에 먹고 싶어질 가능성이 있으면서 배달로 시킬 수 없는 음식들 리스트를 뽑아서 사가는거죠. 인간은...야식을 먹어야만 할 때는 먹어야만 하는 거니까요.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는 거죠. 오늘만큼은 야식을 먹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느껴지는 날엔 야식을 먹어야 하는 거예요. '오늘만큼은'이 너무 자주여서 문제긴 하지만요.


 하하, 하지만 이런 생각조차가 사치예요. 중요한 건 다이어트를 하느냐 야식을 먹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야식을 먹고 싶을 때 야식을 먹을 돈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니까요. 늘 그렇듯이 돈이 있다는 걸 당연히 여겨서는 안되는거예요. 돈이 있다는 걸 당연히 여기는 순간 발밑이 무너져내리는 거죠. 저는 그런 바보들을 수없이 봐와서 그런 실수는 하지 않아요. 이건 영화에서라면 B급 악역이나 취할 법한 자세지만 이곳, 현실에서는 이런 삶의 자세가 나를 승리자로 만들어 주는 거죠.



 2.흠...장광설이 길었네요. 어쨌든...오늘은 마트를 나가려다가 빵이 쌓여져 있는 선반이 눈에 띄었어요. 그리고 그걸 봐버렸어요.


 점보햄버거........................!


 점보햄버거는 십년도 전, 재수학원을 다닐 때 정말로 돈이 없던 날에 사먹던 햄버거예요. 그땐 900원이었나 그랬을 거예요. 점보햄버거를 한입 베무는 순간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싸구려 햄버거 맛이 입안을 맴돌던 기억이 났어요. 여기서 말하는 싸구려는 나쁜 게 아니예요. 그냥...합리적인 싸구려의 맛인 거죠. 열악한 재료의 맛을 어떻게든 커버해 보려고 소스와 양념이 가득 뿌려진 그 맛이요. 잡내나는 고기 패티나 말라비틀어진 샐러드의 맛을 느끼지 말고 먹으라고 구석구석 정성들여서 버무려 놓은 소스맛이 입안을 감돌 때마다 다음과 같은 상상을 하곤 했어요.


 

 3.점보햄버거가 만들어지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한 할머니가 열심히 점보햄버거를 만드는 거예요. 할머니는 싸구려 재료를 커버해 주는 소스와 양념을 아끼지 않고 듬뿍듬뿍 써요. 가끔씩 못된 공장장이 지나가면서 할머니에게 이딴식으로 재료를 많이 써서 단가를 못 맞추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고 으름장을 놔요. 새파랗게 젊은 못된녀석이 말이죠.


 할머니는 그 자리에선 알았다고 하지만, 그 공장장이 사라지면 다시 소스를 듬뿍듬뿍 치는 거죠. 저 바깥 어디에선가 900원짜리 버거로 점심식사를 때워야 하는 소년을 위해서요. 그런 상상을 하며 점보햄버거를 먹으면 더 맛있게 느껴지곤 했어요.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점보햄버거였지만 그 상상을 하며 먹으면 심지어 따뜻하게 느껴지기조차 했어요.


 어떤 날은 점보햄버거를 너무 급하게 먹어서 목이 막혔는데 음료수를 사먹을 돈이 없었어요. 너무 슬펐어요. 그리고 어떤 날은 점보햄버거를 먹으러 슈퍼에 갔는데...선반에 점보햄버거가 없을 때도 있었어요. 십몇년 전이었지만 그때도 900원으로 먹을 수 있는 그럴듯한 건 정말 없었어요. 그런 날도 너무 슬펐어요.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유통기한 3일짜리 점보햄버거를 쌓아놓고 먹어보고 싶었어요.



 4.휴.



 5.그리고...오늘, 아까전에 점보햄버거가 쌓여진 선반을 보며 이걸 집을까 말까 좀 고민했어요. 한 세개인가 있었는데, 하나만 집는다는 선택지는 없었어요. 이걸 사간다면 여기 있는 걸 다 가져가거나 아니면 아예 안사거나 둘 중 하나였어요. 


 그렇게 있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내가 사람들이 나가야 할 마트 문을 막고 가만히 서있다는 거요. 그리고 녹기 전에 가져가야 할 찰떡아이스도 녹아내리고 있다는 거요.


 

 6.어쨌든 오늘은 점보햄버거를 안 사 왔어요. 다음에 마트에 가면 사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는 중이예요.


 만약 점보햄버거가 내 기억 속에 있는 그 점보햄버거와 맛이 다르다면 내 소중한 추억 하나가 날아가버리는 거거든요. 더 맛있든 더 맛없든 말이죠. 



 7.글을 쓰다가 깨달은 사실인데 점보햄버거를 쌓아놓고 먹기 위해 돈을 많이 벌 필요는 없는 거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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