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보는 기생충 이야기(펌글)

2017.03.01 10:15

Bigcat 조회 수:3257

Bartolome Esteban MurilloThe Young Beggar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에스테반 무리요 “The Young Beggar” 1645-1650년 루브르 박물관




소화기 내과 전문의 박광혁



 의사 생활을 한지가 20년이 되었다. 3년 전 내과/검진센터로 경기도의 작은 신도시에 개원하였다. 개원 후 처음에는 많이 힘들고 생활에 여유가 없다가 드디어 작년부터 병원이 다소 안정되어 이제는 내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평소 좋아하던 그림 공부를 위해 시간 날 때면 틈틈이 주말을 이용해 평소 좋아하던 그림도 그려 보고 여러 전시회장 및 미술관을 다니곤 했다. 하지만 그 옛날 20년 전 배낭여행으로 다녀왔던 프랑스 여행 특히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퐁피두센터가 떠올라 작년 여름 드디어 병원을 잠시 후배에게 맡기고 8월 2일부터 10박 12일 긴 유럽여행 휴가를 다녀오게 되었다.


  먼저 3일 내내 루브르 박물관에서 그림 감상을 하였다. 루브르 박물관은 원래 왕궁이었던 건물이 루이 14세가 베르사이유로 가면서 왕궁의 기능이 멈추었다가 이후에 나폴레옹 시대에 박물관으로 개장하였다. 말 그대로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정말 크고 장대하였다. 소장품만 무려 40만 여점에 이른다.



 많은 명작들이 있지만 사람들이 그다지 관심을 주지 않는 이 그림이 나는 눈에 먼저 들어 왔다. 왼쪽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소년을 비추고 있다. 낡고 찢어진 옷, 더러운 맨발, 누추한 움막 같은 곳에 먹다 남은 음식이 바닥에 흩어져있고 이제 막 구걸을 마치고 온 소년은 거처로 돌아와 쉬고 있는 것 같다. 소년은 웃통을 벗어젖힌 채 두 손을 모으고 무엇 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 바로 이를 잡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세부적이고 현실적인 묘사로 비참한 현실을 따뜻한 인간미가 넘치도록 묘사하고 있다. 소년에게 집중된 빛은 움막 좁은 공간에서 연극의 스포트라이트처럼 강조하고 있다.



  에스테반 무리요는 이른바 '아동장르'를 창시하여 장르화에 새로운 사조를 이룩함으로써 서민과 시골 아이들의 일상생활을 카라바조주의 기법으로 표현하여 40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들의 눈에 익숙한 장면들, 우리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멋진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관련 이미지

georges de la tour from 1640 titled woman catching a flea,

조르주 들 라 투르 “벼룩 잡는 여인” 1638년





 또 다른 기생충을 그린 명화로 들 라 트루의 그림이 있다. 고요하게 촛불이 켜 있는 장면에는 깊은 사색이나 독서하는 장면이 어울릴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벼룩을 잡는 모양이다. 벼룩 잡기에 열심인 여인은 앞섶이 모두 열린 것도 모르는 모양으로 집중을 하고 있다. 신중하게 벼룩을 잡고 있는 모습은 폭소를 자아 내지만 자세히 다시 보니 이 여인은 임신 중이다.



‘기생충 잡기’라는 일상의 사사로운 그림을 그린 화가로는 주세페 마리아 크레스피가 유명하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는 이 주제의 그림이 두 작품 있다.





주세페 마리아 크레스피 “Searching for Fleas(벼룩잡기)” 1720년대 우피치 미술관



 18세기에 접어들면서 바로크의 장엄했던 미술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작품의 크기도 작아지고 작품이 담고 있는 내용도 서사적인 영웅들의 위대한 행위들 대신 주변의 사사로운 이야기를 담은 화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를 대표 하는 크레스피는 1655년 18세기 볼로냐 출신이며 그는 ‘카메라 옵스쿠라’를 통해 다양한 빛이 대상과 관계하는 방식을 연구해 화폭에 담아 전례 없이 독특한 화풍을 선보였다.







주세페 마리아 크레스피 “Searching for Fleas(벼룩잡기)” 1707-1710년 우피치 미술관



 크레스피의 이 그림은 가려움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여인이 급기야 일어나 옷섶을 헤치고 여기저기 긁어 대는 모습을 유머스럽게 그리고 있다. 톡톡 튀는 벼룩은 꾸물대는 이처럼 잡기가 쉽지 않아 불쌍한 이 여인은 무작정 긁어 대고 있다. 이 그림에서 당시의 집 구조가 매우 열약한 것은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침대에 애완견이 함께 잠을 잔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머리맡에는 역병이나 마귀를 쫓는 마늘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을 보여준다.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다.










  .....하지만 난 이런 기생충을 그린 그림을 보면 대략 10년 전에 했던 대장내시경 검사가 머릿속에 자꾸 연상되고 그 가냘픈 여인이 생각난다. 지금도 건강히 잘 지내야 할 텐데. 그 환자는 22세 여성으로 북에서 중국을 거쳐 귀순한 탈북자였다. 그녀는 중국에서 있을 때 배가 너무 고파서 쓰레기통에서 이것저것 먹었다고 한다. 귀순 후 살이 빠지고 하복부 통증이 지속되는 고통에 시달리다가 내가 있는 병원에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하였다.

 


 검사 결과 대장내시경 상행결장 부위에 고래회충(anisarciasis)이 많이 있었으며 이러한 기생충들이 장을 자극하여 환자에게 지속적인 통증을 유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치료는 이 환자에게서 모든 기생충을 제거하는 것으로 대장 내시경 검사시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일단 보이는 모든 기생충들을 제거하였다. 그래도 혹시 몰라 기생충 약물을 1주일 복용하게 하였고 2달 후에 추적 내시경 검사를 시행하여 완치소견을 보였다. 그 후 환자는 통증도 없고 체중도 정상적으로 많이 증가하였다. 그녀의 사례는 배가 너무도 고파 위생적으로 더러운 환경의 음식을 먹은 후에 기생충 감염에 걸린 경우이다. 21세기를 살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있을 수 있다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환자는 증상이 호전되고 완치된 후에 나에게 매우 고마워했지만 기생충 감염으로 생긴 본인의 병을 매우 부끄러워 했고 그 때문에 많이 우는 모습을 보였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내가 의과대학을 다닐 때에는 기생충학교실이라는 과목이 본과 1학년(일반대학으로는 3학년)에 개설되어 있었다. 기생충의 중요성이 현재는 거의 없기 때문에 먼 옛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당시에 기생충학 시험 준비로 그 많았던 기생충을 다 외우고 치료법 및 감염경로를 밤새 외었던 기억이 있다.



 먼 옛날, 기생충학을 전공하는 교수님들이 주축이 되어 기생충박멸협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당시 한국은 기생충 왕국이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을 때여서 이 협회는 정부의 지원 아래 초등학생들에게 대변검사를 통해 기생충검사를 하고 정기적으로 구충제를 먹이는 등 많은 활동을 펼쳤다. 기생충박멸협회의 맹활약(?)으로 드디어 기생충이 박멸되고 나니 협회도 할 일이 없어져 자연스레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그 후에 생긴 것이 지금의 건강관리협회이다.




 .....우리 병원은 건강검진을 주로 하는 내과의원이다. 국가 암검진에서는 대변검사가 있는데 여기서는 대장내시경을 직접 하는 것이 아니고 변을 통해서 잠혈을 보는 검사이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 중 상당수는 이 분변 검사가 기생충 여부를 확인 하는 줄 알고 있다.) 1970~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변검사를 하는 주된 이유는 기생충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요즘에는 건강검진에서는 대변에 잠혈(潛血)이 있는지 보기 위해 검사한다. 잠복해 있는 위장관 출혈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논란이 있지만 대장내시경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대장내시경을 받게 하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가 아닐 수 없다. 그 때문에 대변 잠혈 검사 후, 대변에 피가 비치는 사람을 대상으로 대장내시경을 권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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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학의 관점에서 미술 읽기를 시도하는 흥미로운 글이 있어서 가져와 봤습니다. 17세기 바로크 회화하면 절대왕정을 찬양하는 장엄함과 웅장함(루이 14세)... 아니면 카라바지오로 대표되는 어떤 극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들만(신체절단과 선혈이 낭자하는...) 생각해 왔는데, 이렇게 당대 풍속화에도 이런 극적인 효과들이 활용되었다니 참 신기하네요. 거리의 부랑아 소년이나 여염집 아낙네들이 혼자 쉬는 모습까지 이렇게 극적인 효과들을 동원하여 표현했다니...놀랍습니다.(아니, 이 잡는 모습이 뭐 대단하다고... 콘트라포스트에 카메라 옵스큐라까지 별 기법을 다 동원...@.@...솔직히 지금 엄청 놀라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지 않았다면 저 그림들이 이잡는 모습인 줄은 정말 몰랐을 겁니다!)


 저 그림 주문한 양반들이 좀 취향이 별나신 분들인지, 아니면 이 화가들이 혼자 간직해서 보려고 그린건지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군요.(이 시절의 화가 베르메르도 혼자 간직하려고 그린 실험적인 그림이 많은 편인데, 이 풍속화들도 그런 것인지 살짝 의문이 듭니다.)



그나저나 이 그림들 만큼이나 꽤나 강렬한 기생충 사진들이 있는데, 요걸 올리지 못해 안타깝습니다...(만약에 올리려면 혐짤 표시라도 해야할 듯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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