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빛)

2016.09.07 20:03

여은성 조회 수:732


 1.어떤 사람은 군대라는 것을 대수롭지 않은 듯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죠. 


 하지만 어쨌든 대체로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미리 짜기라도 한 것처럼 '다녀와보니 별 것 아니다.'라고 말했어요. 군대라는 곳에 가야 하는 나를 보며 웃는얼굴로 말이죠. 대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는데 그 웃음의 의미가 뭐였는진 잘 모르겠어요. 그들은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보며 웃는 일 같은 건 원래 없었거든요. 


 대학교를 몇년간 다니면서 그들이 나를 보며 웃었던 건 그 순간 한번뿐이었어요.



 2.제 글을 읽어온 분들에겐 약간 의외의 얘기겠지만 저는 환경적 압력에 꽤 강한 편이예요. 여기서 강하다는건 남들보다 강하다는 거죠.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보다 말이죠. 별로 발휘하고 싶지 않아서 발휘되지 않긴 하지만...상황을 대하는 지구력이 없는 것만 빼면, 순간적인 내구력과 돌파력은 꽤나 있는 편이라고 자평해요. 


 그러나 군대만큼은 도저히 견뎌낼 수가 없다는 걸 보충대에 가서 하룻밤 자고 일어나는 순간 깨달았어요. 


 군대복무를 겪고 나서도 살아있다면 아마도 나는 원형에서 매우 멀어져 있을 거란 거요. 이런 하루를 730번 겪고 나면 내가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어떤 빛이 꺼져 버릴 거란 걸 바로 느낄 수 있었어요. 


 

 3.그 빛은 아마도...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거거나 나에게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빛은 저녁엔 꼭 김밥천국 스페셜돈까스를 먹어보고 싶어져 점심을 굶어서 배가 고플 때...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해서 늘 구석에 있다가 어느날 나쁜 일이 벌어지면 제일 먼저 의심받던 날...그런 슬픈 순간들을 버틸 수 있게 해줬어요. 


 십수년에 걸쳐 그 빛은 흰색에서 붉은색으로 검은색으로 색을 바꾸기도 하고 때로는 밝기를 거의 잃고 매우 희미하게도 되었지만 어쨌든 그 빛이 아직 꺼지지는 않았다는 걸 상기할 때마다 마음이 나아졌어요. 


 연필을 깎아내듯이 나를 조금 깎아내는 것 같은 하루를 겪으면 이렇게 조금씩 깎여나가다가 결국은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나를 상상해보곤 했어요. 그렇게 긴 세월에 걸쳐 깎여나가다가 어차피 사라질 거라는 상상을 하고 나면 '5초의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내가 만든 말이예요. 내가 내밀기만 하면 나머지는 동맥의 압력이나 중력 같은 것들이 알아서 해 주는,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5초의 용기 말이죠.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 빛이 나는 아직 여기 있다고 내게 신호를 보내오곤 했어요. 그럼 좀 더 기다려 봐야겠다고 주억거리며 잠들었어요. 


 비록 그게 오늘은 아니지만 그 빛이 언젠가는 나를 천국으로 데려다 줄 거라고 믿고 그 시간을 기다리기로 하면서요.



 4.휴.

  


 5.즐겨 쓰는 말 중 하나는 '호기심이 늘 승리하지.'예요. 대상의 실체가 별것 아닌 것이더라도 호기심이 들면 그걸 해결할 때까지 손해를 감수하는 편이거든요.


 한때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나 희망, 고양감 같은 것들로 삶의 무게를 견뎠지만 20살이 넘자 그런 감정들은 없어졌어요. 20살이 지나자 남은 건 호기심뿐이었어요. 정말로 내게 괜찮은 운명이 마련되어 있는지...내 안에 있다고 믿는 빛이 발현될 날이 올지, 그것이 발현되면 마음 속이 아닌 현실에서 내게 왕관을 씌워 줄만한 것인지...뭐 그런 것들이요. 결국 어떻게 운명지어졌는지 알려면 살아있어야 하는 거니까요. 



 6.그동안 합리적인 척하는 글들을 쓰더니 왜 이런 운명론적인 소리를 하나 싶겠지만...이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모든게 우연이잖아요. 사람들의 자신이 하는 노력이 대단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지만 세상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노력한 사람에게 복권 당첨을 시켜주지 않거든요. 주는 건 오직 그들이 파는 복권을 사볼 기회뿐이죠. 자신이 긁은 복권이 어쩌다 한번에 됐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노력을 하면 한번에 될 거라는 착각에 빠져 사는 사람이 꽤 많아요.


 뭐 이건 경쟁 레벨이 높아질수록 뼈저리게 느낄 일이예요. 어렸을 때 천재 소리를 안 들어본 사람이 없는 프로스포츠도 그렇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해서 최고의 자신의 모습에 도달해도 마음먹은 대로 되진 않거든요. 간절하게 꼭 한번 해내고 싶은 순간에도 스트라이크 한번을 못 잡아내거나 유효슈팅 한 번을 못하거나 그러는 거죠. 


 왜냐면 다른 인간 또한 나만큼 대단하거나 나만큼 하찮으니까요. 어느 쪽으로 생각하며 살건 자유이긴 한데 사실 같은 생각이죠.



 7.주식 또한 그래요. 정확히 이 주식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른 큰손들이 이 주식을 어디까지 올릴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는 없어요. 주식이 오를지 안 오를지 맞추는 건 셜록 홈즈가 범인을 검거하는 것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게 어려운 일이예요. 왜냐면 소설 속의 셜록 홈즈에겐 충분한 증거들이 제공되잖아요. 현실에서는 개인투자자들에게 필요한 증거가 제공되지 않죠.


 뭐 그래서 내가 산 주식이 몇 번 올랐다고 해서 큰소리치고 다니는 건 웃긴 일이라는 거죠. 주식이 올랐다는 건 이런 거예요. 무너질지, 무너지지 않을지 모르는 다리를 건넜는데 이번엔 우연히 무너지지 않았던 거죠.


 하긴 그래서 계란을 한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이 나온 거겠지만요. 하지만 가끔 파괴적인 기분과 확신이 들 때는 위에 말한 5초짜리 용기를 내서 가진 계란을 거의 다 들고 다리를 건너보곤 해요. 물론 이 5초짜리 용기는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며 내는 5초 용기긴 하지만요. 


 휴.


 좋아하는 사람에게 보낼 카톡내용을 다 써놓고 전송 버튼에 한없이 가까이 손가락을 갔다댔다가 말았다가 하는 걸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눌러버리는 것처럼 이것 또한 가격과 수량은 다 적어놓고 엔터 버튼을 쓰다듬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눌러버리는 거죠. 안그러면 용기를 낼 수가 없거든요. 용기를 내서 카톡내용을 쓰거나 가격과 수량을 쓰다 보면 용기는 사라져 버려요. 일단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는 상황까지 스스로를 몰아넣은 다음에 몇 초짜리 용기를 내서 되돌릴 수 없는 버튼을 눌러버리는 거죠. 물론 그 상황까지 스스로를 몰아넣어도 버튼 하나를 누를 용기가 없어서 그만두기도 하지만요.

 


 8.자동기술법...흔히 의식의 흐름이라고 불리는 글쓰기를 싫어해요. 주제가 사라져 버리곤 하거든요.


 분명 이 글은 며칠 전 한국 군대에 대한 가열찬 비판을 하려고 시작한 글이었어요. 소제목도 군대에 관한 거였고요. 그런데 갑자기 마음에 품은 빛 얘기가 나왔어요. 어제밤엔 기분이 나쁜 편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듀게에 저장되어 있던 센티멘탈한 빛 얘기를 간만에 순도 100%, 희석액 따윈 섞지 않은 원액 농도의 센티멘탈로 이어가려 했는데 졸려서 자버리고 일어나서 쓰다보니 이번엔 우연 얘기가 나와버렸죠. 결국 그냥 막써버린 글이 되어버렸어요.



 9.어렸을 때의 나와 만나면 너를 누군가가 의심할 때 이렇게 대답하라고 말해줄 거예요. 실제로, 요즘은 이렇게 말하거든요.

 

 '내가 그랬는지 아니면 그러지 않았는지 너 같은 병신은 영원히 알아낼 수 없겠지. 존나 가엾구나.'

 

 어차피 어떻게 대답해도 의심받는 건 똑같거든요. 그러니까 저렇게라도 말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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