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예전처럼 연말이라 싫은 느낌은 아닙니다. 그냥 추운 게 싫어요. 


 제가 이십대 초반일 때도 딱 지금처럼 반바지 패션이 유행이었는데 지금처럼 기모스타킹이니 레깅스니 하는 게 있던 것도 아니고, 롱부츠도 당시엔 상당히 고가라서 신는 아이들이 썩 많진 않았어요. 지금이야 뭐 만 원 짜리도 구하려면 있지요. 

 그때는 질이 별로 좋지 않은 불투명(이라지만 반투명) 스타킹에 짧은 바지로 어떻게 나돌아다녔을까 생각하니 참 나이 먹은 게 실감이 납니다.  

 아무튼 과거보다 추위도 잘 타고 추운 게 더 싫고 그렇다는 얘기.


 예전에 겨울이 싫은 건 추위도 추위지만 해가 바뀌는 게 싫어서였죠.

 대학 졸업전에 취업이 됐지만 그만 두고 불안정한 생활도 꽤 오래 했고, 겨우 자리잡았다가 뒤늦게 다시 수험생활 시작하고, 이런 시간이 꽤 길었어요. 서른을 향해 달려가면서 하나 하나 자산을 처분하는 듯한 섬뜩한 느낌. 해가 바뀔 때마다 '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하는 호랑이한테 결국엔 팔도 다리도 떼주고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하는 공포가 밀려왔지요. 

 친구랑 모 방송국 시험을 치고 나오던 경희대 앞 풍경이 눈에 선해요. 친구도 저도 첫추위에 손이 곱아 있었고, 이제 우리 뭐 하지, 하면서 손을 비볐었어요. 과외로 들어오는 수입도 있었고, 친구도 저도 당장 돈을 벌러 나서야할 형편은 아니었지만 말 그대로 그때는 겨울이 '공포'였습니다. 친구와 저는 각자 다른 길로 갔고 이제는 연락도 되지 않지만 그 친구 역시 그 겨울의 공포를 기억하리라 생각합니다. 

 

 입장은 바뀌었는데 그때의 불안과 공포는 일정부분 몸이 오래오래 기억하는 것 같아요. 


 딴 소리.

 겨울이 단지 '추워서' 싫어지게 된 이유는 아주 단순해요.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온 가을과 겨울 묘사가 좋습니다. 이 시리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음에도 그 점만은 고마워요. 어, 참 가을이랑 겨울도 이런 게 참 좋지 하면서 끄덕끄덕. 여름 묘사는 어쩐지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영국의 봄이 별로인 건가? (영국의 봄 여름 묘사는 비밀의 화원이 좋지요.)

 어쩌면 겨울에서 불안과 공포를 떼낼 때가 온 차에 우연히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은 건지도 모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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