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02 11:30
(본격 일하기 싫어서 쓰는 글..)
여중-여고-공대를 나왔으며, 뭔가 멋드러지게 글을 잘 쓰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학문적 소양이 짧아 다른 분들이 쓰시는 글을 보며 '그래 내 말이 이말이다!!!'라고 울부짖는 글못쓰는 공대인(...)이기도 합니다.
그간 세다. 여자답지가 않다. 참하지 못하다.. 하는 비판적 평가와 함께 쓸쓸한 기분으로 30년 넘게 살아왔는데.
최근 메갈리아 사태를 보면서 이렇게 쎈 여성들이 많았다니 신난다!!! 하는 기분도 들고 뭐 그렇습니다.
인터넷에서 남자들에 의해 정의되는 저의 정체성은 꼴페미년정도인 것 같은데,
부끄럽지만 저는 (그놈의 귀차니즘과 방관자적 성격탓에..) 여성운동, 시위 등에 참여해보지도 못했고, 아래 성적대 여성주의(?) 그런 것도 한번 못했던 것 같네요.
메갈리안도 한번인가 밖에 못들어가봤고요.
듀나에서도 눈팅만 했었는데.. 요새 일하기 싫은 기운과 맞물려 뻘글과 댓글에 동참;
어릴때부터 과학자가 꿈이었고, 수학, 과학을 좋아했는데 왠지 그것은 남자들을 위한 것인 것만 같았어요.
우주관측 같은거 저도 하고 싶었는데 우주소년단은 여자는 안뽑더라고요. 과학상자도 남자애들만 바글바글...
초등학교때 여자는 피구, 남자는 축구시키는 것도 마음에 안들었어요.
은연중에 과학자, 대통령 그런 멋있는거는 으레 남자가 하는거야 하는 그 '분위기' 그게 싫었어요.
중학교때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녔는데, 그건 저의 의지라기보다는 엄마의 취향이었습니다.
그런데 넌 왜이렇게 여자답지 못하냐, 니가 남자애냐.. 그런 소리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들었거든요. 주유소 아저씨라든가 도서관 아저씨..-_-
어린마음에 반발심이 생기더라고요. 여자는 머리 짧게 자르면 안되나. 뭐야~
고등학교때는 교훈이 '참한 여성이 되자'였는데. 제가 3학년 되던 해에 교훈이 '창조하는 미래인, 도전하는 세계인'으로 바뀌었어요.
남녀 공학으로 바뀌었거든요.
아, 고등학교때 등교길에 성기를 내놓고 돌아다니는 남자를 처음 봤는데, 소문으로만 듣던 바바리맨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성격이 세니까 그런 사람들 만나면 꺼지라고 너 작다고 준비된 농담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심장이 벌렁거리고 무섭더라고요.
고 3때 친구들이 대학진학을 결정하는데, 인서울과 지방국립대, 교대 사이에서 고민하는 친구들 중 많은 친구들이 지방대를 선택했어요.
그 친구들과 그 친구들의 오빠는 다른 선택을 권유받았고, 다른 수준의 지원을 받았고요.
대학교때는 새터를 갔는데, 남자 선배들이 '총여 무서워서 농담도 못하겠네~' 하는 말을 꽤 여러번 들었던 것 같습니다.
밤에 여자선배가 새내기들을 모아놓고, 혹시 엠티중에 불편한 농담이나 성희롱 있으면 자기한테 말하라고 했는데, 그 때 총여가 총여학생회라는 것을 알게되었죠.
역시 대학교는 다르구나.. 약간 감동하면서 돌아왔습니다.
주말에 다른 학교에 다니는 사촌이랑 대학교 얘기하며 수다를 떠는데
사촌이 그러더라고요. 자기네는 엠티가서 여자들을 눕혀놓고 남자들이 그 위에서 푸쉬업하는 게임을 했다고요. 남자 선배가 자기 술먹고 누워있는데 가슴을 만지고 키스했대요. 그 학교에는 없는, 남자 선배들은 불편해하는 총여의 존재가 고마웠습니다.
1학년 2학기때 컴퓨터가 고장났는데, 룸메이트 였던 친구랑 고장난 컴퓨터 이야기를 하다가, 그 친구가 아는 오빠가 잘 고친다며 소개를 해줬습니다.
그날 원룸에 고쳐준다고 그 분이 오셔서 처음 봤는데. 자고가면 안되냐고요.
무슨 말 하시는 거냐고 화내고 나와버렸는데(내집인데 내가 나옴....), 지금 생각하니 싸대기라도 날렸어야 되는건데.
모르는 남자를 집에 들인 제 자신을 자책하면서 하루종일 울었습니다.
공대 남학우들은 여학우를 여자로 안보고 맨날 라면이나 사달라고 하고, 짐도 안들어주고 그랬는데..
역시 공대 애들이 순수하고 여자를 차별하지 않는다-_-라고 좋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공대생들이 덜 정치적이고 순수한 편이라고 나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불편한 일들은 인터넷으로만 접했지, 주변에 거의 남자 후배들만 있어서 더이상 제게 불편한 일들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또 경험하게 됐네요.
동기들끼리 연수를 받던 중이었는데, 같은 또래들끼리 엠티를 갔거든요.
한 남자동기가 페티쉬 얘기하자고요. 자기는 여자가 붙는 옷을 입었을때 정면에서 바람이 불면 흥분된다. 고등학교때 첫 경험. 어제 애무를 하고 왔다. 온갖 얘기들을 재밌다고 하는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냥 방에 들어가 잤습니다.
근데 웃긴건, 제가 대학교때 여성학 수업도 듣고, 그런 상황이 되면 정색빨고 얘기하든지 뭐라고 한마디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쎈 여자고, 꼴팸년이니까요. 근데 항상 그런 상황이 닥치면 '내가 지금 기분 더럽게 나쁜데, 왜 다들 아무렇지도 않지? 내가 비정상인가? 내가 너무 예민한가?" 하는 생각을 하느라고 한마디도 못하는 한심한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런 일을 한번 겪고 나야, 그제서야 그때는 왜 그렇게 못했을까, 앞으로는 정색해야지. 이렇게 말해야지. 그런 생각이 들고 당하는 그 순간에는 멍해져요.
회사에 가서는 일상이었죠. 공공기관이었고 여성비율도 40%이상인 회사였는데, 확실히 성희롱은 권력관계를 기반으로 하더라고요.
신입 여직원이 결혼하게됐는데, 회의시간에 결혼 준비 얘기하면서 말로만 듣던 클리셰 체험!
'웨딩드레스는 많이 파져야 그게 하객들에 대한 예의다' 결혼 후에는 '신혼이라 피곤하겠다~낄낄'
한번은 싹싹한 인턴 여직원이 들어왔는데 다들 그 직원이 '얼마나 애교있는지'에 대해 얘기하고, '내가 열살만 젊었으면 너랑 사귀는건데' '오빠라고 한번만 불러봐'를 시전하셨죠. 다들 좋으신 분들이었는데 말이에요.
회사에 되게 잘 꾸미고 다니는 결혼하신 여직원이 있었는데, 술자리에서 그 분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남자직원들이 '쟤랑은 내가 맘만 먹으면 잘수있다' 얘기하더라고요. 저랑 친하게 지내는 과장님은, 제가 그런거 질색하는거 알고 있었는데도 공공연하게 인턴 뽑거나 하게되면 '여자애들은 피곤하다. 남자 없어?' 하셨고요.
얼마전에는 버스에서 자다가 어떤 남자분이 자기 거시기를 하도 저한테 비비셔서-_- 깼네요.
그때도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한마디도 못했어요. '내가 지금 당한게 맞나?...세상에' 하는 동안 그 분은 유유히 사라지셨거든요.
뭐 이 뿐이겠습니까. 저는 성추행, 폭행 안당한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결혼과 육아는 엄두도 안납니다.
제가 예민한가요. 뭐 그럴수도 있겠죠. 저는 나름 보호받는 환경에서 자라왔다고 생각하고, 공학관련 직업군 특성상 차별도 덜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전 페미니스트가 되었습니다. 스트레스 받았고, 불편하지만 말하지 못했고, 힘들었어요.
김여사, 김치녀 소리 듣기싫어서 악착같이 데이트 통장쓰고 호의로 받은 것도 꼭 되갚습니다.
피곤하고, 가끔은 억울할때도 있어요. 저는 맥주 한두잔 밖에 안먹었는데 반띵해서 십만원씩 술값 내고 할 때요.
그냥 남자분들처럼 그런 고민 없이 살고 싶어요.
이런 성희롱 상황에서는 어떻게 말해야하지 고민하지 않는 사회에서요. 애 낳아도 눈치보지 않고 축하받을 수 있는 사회에서요.
불편하면 꼴페미, 불편러 조롱 걱정 않고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 인간으로서의 배려와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사회요.
제가 겪은게 대한민국을 살아가면서 너무도 특별하고 재수없어서 겪은 일인가요?
젊은 세대는 중장년층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그리고 취업전선에서도 여성들과 똑같은 조건하에서 힘든 경쟁을 하고 있지요. 당연히 진학이나 취업에 있어서 남녀 차별은, 가정 내에서건 사회제도에서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라고요...?
요즘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사리분별력이 있으며, 기성세대보다는 더욱 도덕적이라고요?
카카오톡 채팅방에서의 성희롱, 동일 스펙의 남자여자가 있을때 남자들이 더 쉽게 선택받는 것은 80-90년대 일이 아닙니다.
대체 뭐가 자꾸 차별이냐고 하셔서요. 이렇게 피곤하게 근심걱정하며 살아야하는게 차별이에요.
2016.08.02 11:53
2016.08.02 12:45
공감해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다.
2016.08.02 11:53
보통 이런이야기를 하면 저걸 소위 소수의 미친놈들의 짓거리로 치부하는게 1차적인 방어죠.
문제는 저 미친놈들이 생각보다 소수가 아니고, 그 순간부터는 미친놈들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인데 그런 이야기를 하면 요새 트렌드는 너 프로불편러.내지 너 메갈.이거죠.
2016.08.02 12:48
전 학교 교훈 사건을 통해 남녀 차별이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게, 정말 궁금한게 이런 현실을 부정하시는 분들은 인지를 못했다면 이해하겠는데, 자꾸 그런거 없다고 하시니까요.
어디 다른 세상에서 살아오신건지. 그곳에 저도 가고 싶습니다.
2016.08.02 13:31
살면서 성추행을 수차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무인도에서 산 사람일 거예요.말을 잘 안해서 그렇지 어린시절 가까운 친척에게 성추행 당해본 사람 참 많아요. 저 포함해서요. 친구가 사촌 오빠 집에서 자고 있는데 친구의 동생 손이 오빠 팬티 속에 스르륵 들어가더래요. 무서워서 자는 척했었다고 부모님께 말을 해야 하는건지 저한테 묻더군요. 그때가 중학생이었어요. 그 사람들 지금 평범하게 직장 다니고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살아요. 소수의 미친놈이라.. 글쎄요. 너무 멀쩡해 보이는데. ㅎㅎ
2016.08.02 18:19
2016.08.02 13:43
괜히 유난 떤다는 소리 듣기도 싫고 해서 그냥 웃으면서 넘기고, 싫지만 이 악물고 참고. 저만 그랬겠나요. 다들 비슷비슷할 거예요.
그래서인지 이런 글을 쓰는 것 자체엔 많은 용기가 따른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2016.08.02 18:22
2016.08.02 14:15
2016.08.02 18:27
2016.08.02 14:32
전 어려서부터 겉보기는 얌전하지만 은근 딴생각이 많은 아이여서 한번도 여자아이다운게 뭔지 생각하거나 그런 성역할을 희망하며 자라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여성스럽다는 말은 많이 듣고 있지만 저는 그런 거에 얽매이지 않는 편이고 가정 내에선 많이 배우진 못했지만 부모님 두 분이 다 강압적인 편이 아니었어요. 아빠가 딸바보라서 편했고 부모님 두 분이 기본적으로 하고픈거 하라고 무한 신뢰와 자유를 주신 편이어서 진로나 여자 나이 등으로 고민해본 적은 주변을 둘러봐도 제가 유난히 없습니다. 제가 그런 면에서는 많은 관용을 허락받은 환경에서 자랐다는 건 제 주변을 보며 체감할 수 있더군요. 흔한 성추행에선 저도 자유롭지 못했고 가정 내에서 여자아이들은 왜 얌전하고 야무지길 기대받는지 못마땅해하며 자랐지만 그렇다고 제가 남자아이 같지는 않아서 아쉬웠고 그냥 저는 한 인간으로 잘 발전하고 싶었어요. 다만 또래 여자아이들보다 매우 늦게 취업했고 그래서 일단 불리했고 사회에서 절대로 동등하지 않다는 걸 많이 깨달았습니다. 각종 분야를 필기로 뚫어봤자 면접에서 너무나 문이 좁다는거 많이 느꼈어요.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돌아서 결국은 안정된 직장에 들어왔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걸 잃었고 그렇게까지 힘들었어야 하는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어서 이 사회가 별로 신뢰할만하지 못하다는 걸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여성학을 교양강의로 들은 적은 있지만 남녀차별은 별로 체감되지 않았었는데, 여자로 경제적 자립이 어려운 나라에서는 절대로 성적 평등을 논할 수 없다는 걸 저절로 알게 되더군요.
2016.08.02 18:50
2016.08.02 16:39
2016.08.02 18:50
2016.08.02 17:47
2016.08.02 18:51
2016.08.02 23:56
"싸대기라도 날렸어야 되는건데"에 꽂혀서 생각났는데, 준비된 농담도 막상 안나오듯이 물리적인 행동도 갑자기는 잘 안되더라구요. 남성들은 어릴 때 장난으로라도 치고받고 하는 경험을 종종 하며 자라지만, 여성들이야 그럴 일도 살면서 없잖아요. 위기감에 내 딴에는 마음먹고 평생 처음으로 싸대기를 날려본 적이 있는데, 제대로 맞혀지지도 않고, 저의 거미 다리같은 팔뚝으로 때려봤자 상대 남성은 아무 타격도 없더라는;; 다행히 별 일은 없었는데, 상대가 진짜 질나쁜 사람이었더라면 괜히 더 자극만 해서 큰일이 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이후 진짜 격투기라도 배워야 하나 여러가지 고민을 했었는데, 물리적으로 내가 정말 약한 존재라는걸 실감한 순간의 공포감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이 날 정도입니다.
2016.08.03 10:42
2016.08.02 23:57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 글에서까지 찌질거리는 인간이 없다는 것이 정말 다행입니다. 그나마 듀게가 상대적으로 나은 곳이라는 증거라 봅니다.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마음껏 찌질거려 놓고 이 글에서는 입 싹 닦는 저들의 치졸함도 느껴집니다. 그래도 한 분은 댓글을 다셨네요.
2016.08.03 09:03
2016.08.03 10:37
그러게 말입니다. 차별은 없다고 단언 선언하던 아이디들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좋은 글, 경험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맞아요, 불편할 때 당당하게, 분위기는 안 망치면서, 하지만 그쪽은 뜨끔하게 꼬리내리도록 한마디 쏘아주는 내공이 필요하죠.
그런거 잘 하는 언니들 되게 부러웠는데.. 지금이라도 같이 연습해요.
2016.08.03 10:46
2016.08.03 23:27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 DJUNA | 2023.04.01 | 25243 |
공지 |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 엔시블 | 2019.12.31 | 43799 |
공지 |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 DJUNA | 2013.01.31 | 352302 |
진솔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남자로 태어나서 주변에 친한 여자분들이 전혀 없었던 탓인지, 젊은 시절에는 여자분들이 인생에서 어떤 차별과 아픔을 겪게 되는지 전혀 모르고 살았었네요. 인터넷에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경험을 전혀 상관없는 타자인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인 듯 싶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