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연필)

2016.09.13 06:41

여은성 조회 수:704


 1.요즘은 사는 것과 죽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해보곤 해요. 



 2.여기서 말하는 산다는 건 생존은 아니예요. 목숨을 이어나가기 위해 하루에 열시간씩 투자하라면 아마 죽을 거예요. 하지만 삶을 누리고 있다는 기분을 하루에 몇시간이나마 느끼려면 빌어먹을 돈을 써야 해요. 빌어먹을 돈도 쓰고, 발상도 해내야 하죠. 다른 날과 다른 하루를 살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떠올려야 하니까요.


 한데 나는 늘 하던 것만 해왔거든요. 그리고 발상이라고 해봐야 안해 본 일을 떠올릴 순 없어요. 한번이라도 해본 일이어야 발상해낼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그 무언가를 떠올리는 걸 다른 사람에게 맡기곤 해요. 이른바 '발상 셔틀'같은 거죠. 


 말은 좀 꼬아서 했지만 결국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기 위해 애쓴다는 뜻이예요. 그리고 그 다른 사람이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일에 묻어가면 오늘 하루는 다른 하루와 다를 수 있는 거죠.



 3.아까 지진이 나고...톡방에서 누군가 '죽기 전에 할일이 많아서 죽는 건 곤란하다'풍의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 나갈 준비를 하던 참이었는데 그 말을 보고 좀 씁쓸했어요. 


 사실 나가서 노는 건 정말로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거든요. 그냥 오늘 하루를 때우긴 때워야 하니까 나가는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돌아오면 아무것도 아닌 시간을 다시 때워야 하죠. 언젠가 말했듯이 이젠 시도할 만한 새로운 게 없어요. 그냥 죽는 건 비가역적인 일이니까 일단 홀딩하고 있는 거죠. 



 4.휴.



 5.어떤 사람에게 결혼하면 어떨 것 같냐고 했는데 그건 가짜로 물어본 건 아니었어요. 물론 진짜로 물어본 것도 아니었지만...그냥 물어본 거라고 해 두죠. 어떤 사람은 그러면 어쨌든 어머님을 뵈러 가야 할 텐데 '내가 그럴듯하게 연기할 수 있는 직업이 뭐가 있을까?' 라고 되물어왔어요. 하긴 그야 '헤헤 안녕하세요. 저는 청담동에서 물장사를 하고 있답니다.' 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갑자기 너무 현실적인 대화로 진행되어서 놀랐지만 일단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 봤어요.


 일단 고깃집 사장은 어느 정도까지는 그럴듯하게 꾸며낼 수 있겠지만 역시 언젠가는 들킬 것 같다는 이유로 각하였어요. 그렇게 고깃집 사장에서 어디의 사장, 어디의 사장, 어디의 사장...같은 식으로 확실하게 연기해낼 수 있는 사장을 계속 고르길래 '그냥 커피숖 알바라고 하면 될 거 아니냐'고 하자 어떤 사람은 그건 정말로 싫다고 정색했어요.


 ...자꾸 어떤사람이라고 하니 이상하네요. Q라고 하죠 그냥.



 6.Q의 말은 '사이즈를 줄여서 말하긴 싫다.'가 요지였어요. 직업 자체를 속이는 건 괜찮지만 그 직업은 반드시 지금 하는 일과 비슷한 규모의 매상을 올리는 일이어야만 한다고요. 그런 말을 한동안 하다가 어차피 결혼하지 않을 건데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고 낄낄거리고 대화를 끝냈어요.


 사실 그녀가 왜 그런 땡깡을 부리는지는 몰라요. 안물어봤으니까요. 짐작만 가능하죠. Q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걸 허영심이라고 하겠죠. Q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업적이 폄하되고 싶지 않아서 물러서지 않는 거라고 좋게 봐 줄 거고요.


 업적이라고 하면 우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이 세상은 힘들잖아요. 우리 모두는 우리를 몽당연필처럼 깎아내버리는 고단한 하루를 수천번쯤 겪었어요. 도움 받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충분히 업적이라고 해도 될 거예요. 


 휴.


 나도 간신히 살아남긴 했지만 그야말로 몽당연필이 되어버려서 나라는 연필로는 이제 아무것도 써낼 수 없게 된 건가 싶기도 해요. 그런 몽당연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굴러다니는 것뿐이죠.   



 7.'발상 셔틀'보다는 '하고싶은 일 셔틀'이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