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반인"에 대한 고찰

2023.07.18 13:11

Sonny 조회 수:981

제가 요새 제일 흥미롭게 보는 단어가 "갓반인"이라는 단어입니다. 일반인에 갓을 접두어로 조합한 단어인데, 이 단어는 화자 본인이 일반인이 아니라는 자조가 깔려있죠. 어떤 식으로든 본인은 마이너리티에 속할 수 밖에 없어서 일반인들과 뭔가 다르다고 쓴웃음을 지을 때 주로 쓰는 단어입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본인이 아주 매니악한 애니메이션을 본다고 할 때 "갓반인들은 신카이 마코토 영화 보지 내가 보는 0000같은 건 안봄..." 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 단어의 쓰임새는 실로 무궁무진해서 '갓반인들은 트위터 같은 거 안하고 인스타함', '갓반인들은 극장 안가고 집에서 넷플릭스 봄...', '갓반인들은 책 읽는 대신에 유튜브 요약본 봄...' 같은 문장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아무튼 갓반인들은 너무 깊은 생각을 하거나 존재론적인 고뇌에 휩쌓이거나 정치적 투쟁에 열을 올리지 않고 "정병"과도 거리가 먼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동적으로 "갓반인"이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도 답이 나오죠. 


제 경험상, 안티 갓반인을 제일 잘 증명하는 것은 바로 "오타쿠"란 존재들일 것입니다. 다수의 입장에서 볼 때 딱히 이쁘거나 재미있는 것도 아닌데 어떤 사람들은 거기에 엄청나게 몰입해있습니다. 그리고 굿즈를 사거나 캐릭터의 생일 파티를 하는 등 "돈이 안되는" 짓거리를 합니다. (주의사항! [슬램덩크]같은 메이저한 작품에 과몰입하는 것은 갓반인의 영역일지도 모릅니다!) 비자본주의적이면서, 일반적인 호감이나 애정에 비해 아주 지독하고 열렬한 집착을 보이는 것이 바로 오타쿠입니다. 그러니 자기가 객관적으로 볼 때에도 그 오타쿠스러움이 이상하니 그 반대편에 있는 "갓반인"들을 호출해서 자조하는거죠. 


어차피 자조용으로 발명된 단어이니 그 의미를 정확히 짚는 게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볼 때 "갓반인"에게는 두가지의 큰 기준이 있습니다. 마이너리티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니만큼 갓반인들에게는 "다수"의 도덕적 가치관과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제일 크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원래 사람들이 다 그렇지 않나?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요. 노조, 퀴퍼, 전장연 같은 마이너티리 투쟁 단체들을 이야기하면 갓반인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불호를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남들에게 뭔가 불편을 끼치고(?) 평상시에는 볼 일이 없는 소수자들이니까요. 그리고 돈 벌거나 쓰는데 피곤만 끼치니까요. 갓반인들은 본인의 낯설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상하고 기분나쁘다고 바로 단정지어버리죠. 어차피 자주 볼 사람들도 아닌데 뭐 상관있겠습니까? 


문제는 어느 정도의 마이너리티성을 갖고 있더라하더라도 갓반인들은 타인을 대할 때 자본주의적인 계급론이 바로 작동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약자에 대한 시혜적 태도까지는 가능합니다. 그러나 유사한 끼리끼리의 영역에서 벗어난 사람들, 수도권의 4년제 대학을 졸업하지 않거나 연봉이 평균 얼마 이하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곧바로 경시하는 태도가 튀어나오고 맙니다. 왜냐하면 갓반인들에게 그건 "이상한" 사람들이고 "실패자"라고밖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당연히도, 갓반인들을 감히 탓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평등을 떠들고 기득권에 대한 저항을 이야기하면서도 본인들이 그 이상한 루저"들한테 상대적 기득권이라는 건 절대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한번도 탈선하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마이너리티를 이해하리라 기대하지 않습니다)


얼마전에 레즈비언 부부로서 임신 발표를 했던 규지니어스님의 소식이 화제였죠. 당연하게도 타인들의 불필요하고 부조리한 오지랖에 잔뜩 시달렸던 게 눈에 보였습니다. 누군가 규지니어스님을 옹호하고자 그런 논리를 내세우더군요. 어차피 그 부부 연봉이 걱정해주는 대다수 사람보다 높을텐데 뭐하러 걱정하냐고요. 자본주의적 계급론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것이죠. 누군가는 이 트윗을 역겹다고 했고 인용당한 분은 뭐가 역겹다는 건지 이해를 못했습니다. 아마 그런 게 갓반인과 안갓반인의 차이일 것입니다. 레즈비언 부부를 옹호하기 위해 거리낌없이 "돈많은" 중산층의 계급을 가지고 오면서 타인의 가난으로 그 비난을 묵살하려고 하는 것이 왜 역겹다고 욕을 먹는지 그 분은 모를 것입니다. 


결론은 무엇이냐? 갓반인들과는 논쟁할 수 없습니다. 본인의 마이너리티가 뭐라도 지적을 받기 전에 최대한 열심히 감추십시오. 일반인 코스프레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6518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070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4348
124004 그 국민의 수준에 딱 맞는 정치가 [22] 머루다래 2010.06.03 6608
124003 웹툰 뭐 보세요? [25] BONNY 2010.06.08 6607
124002 초등학교 저학년 26개월정도 미국유학어떻게 생각하세요? [28] preetyball 2014.09.28 6606
124001 손석희의 시선집중 실망입니다.. T.T [14] 도야지 2011.09.05 6606
124000 포미닛의 현아가 대체 왜 '패왕색'인지 [19] One in a million 2011.07.06 6606
123999 참 난감하네요... 지하철 여중생과 할머니 [48] stru2 2010.10.03 6606
123998 백수남편..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18] Eun 2010.10.06 6604
123997 기독교를 싫어하는 줄이야 알지만 [175] 산호초2010 2010.06.23 6604
123996 수영 팁 접영 드릴 1개 a/s 및 평영과 배영. [3] 무도 2013.04.29 6601
123995 ㅁㅂㅅㅌ님 저격기사네요 [40] sargent 2012.08.01 6600
123994 강간살인범 집에서 발견된 78개의 여성시계 [20] clancy 2012.03.29 6600
123993 외대, 이문동에 사시는 분들께. 맛집추천 부탁합니다. [29] chobo 2014.07.16 6599
123992 [유머] 이케아의 채용 면접 [3] 01410 2011.04.13 6599
123991 김장훈이 불안하네요 [7] adebisi 2012.10.06 6598
123990 [바낭]속 터져 죽는 줄 알았습니다. 아오 답답해 [23] 아마데우스 2013.09.28 6598
123989 여러분의 성욕이 얼마나 강하신가요 [20] 도야지 2010.10.08 6598
123988 [듀나iN] 카톡의 (알 수 없음)에 대하여 조심스레 듀게에 문의해 봅니다. [15] 물방울무늬 2012.12.06 6597
123987 라면 먹고 갈래? 에 가장 적합한 라면은? [28] 자본주의의돼지 2012.08.07 6597
123986 미래에 대한 불안감 [56] 김해원 2014.04.12 6596
123985 스칼렛 조한슨의 미래는???? [22] 감동 2012.05.06 659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