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준과 한국의 복수

2023.07.14 01:31

여은성 조회 수:680


 1.왕년에 잘나갔던 유승준이 자꾸만 돌아오려고 하고 있어요. 무슨 연어도 아니고. 애초에 그가 연어라고 해도 그가 돌아갈 곳은 이곳이 아닌데 말이죠.


 어쨌든 그는 왜 돌아오려고 하는 걸까? 아니 애초에 이렇게까지 돌아오고 싶어할 거였으면 왜 떠난 거였을까요? 그가 돌아오려는 시도를 할 때마다 온갖 조롱과 욕설, 비아냥이 뭉텅이로 던져지는데도 말이죠. 



 2.뭐 정답은 이거죠. 우리 나라가 너무 좋은 곳이 되어버렸다는 거예요. 유승준이 그냥 한국에 있었다면 뭘 얻을 수 있었을까요? 일단 계속 활동했다면 못해도 중위권~중하위권 정도에서 놀았을 거라고 여겨져요. 누구 말마따나 김종국 급이었을 수도 있고. 그런데 그가 김종국보다 유리한 점이 있죠. 그간의 타임라인을 보면 중간중간에 부스트가 있었어요. 온갖 복고 열풍에 공중파의 최고 예능 프로그램까지 나서서 과거 가수들을 재조명하는 붐이 형성되었죠. 


 그리고 그걸 제일 잘 받아먹을 수 있는 사람은 유승준이었고요. 일단 오랜만에 등장해서 그가 지겹게 하던 원패턴 댄스 한번 조져주면 다들 환호하고, 중간중간 우수에 찬 표정으로 바른생활 사나이 서사 한번 돌려주면 재떡상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난립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붐을 타고 멘토나 댄스 트레이너, 제작자로 충분히 바람을 탈 수 있었을 거고요. 게다가 유튜브와 브이로그 붐이 일 때 편승해서 운동 유튜브, 댄스 유튜브 좀 찍어줬으면 그걸로도 떼돈을 벌었을 걸요.



 3.그리고 위상이란 게 그렇거든요. 본인은 가만히 있어도 본인이 몸담은 씬이 뜨면 본인도 같이 급이 올라가요. 방송에서 볼 일 없었던 트로트 원로들이 트로트 붐이 일자 마치 엄청난 멘토인 것처럼 포장되고 방송에 초대받아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세요. 


 유승준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지금의 K팝 붐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 씬의 초석이었던 사람으로서 가치가 점점 상승했을 거거든요. 설령 연예계를 은퇴하고 딴 거 하고 있었어도 억지로 불려나왔을걸요.


 문제는 유승준에겐 이런 미래를 보는 수정구가 없었다는 거죠. 이 정도로 한국이 대단한 곳이 될 줄 알았었다면, 그는 그냥 눈 딱감고 동사무소에서 2년 근무했을 거예요. 그리고 복귀해서 빛나는 미래를 향해 나아갔겠죠. 



 4.휴.



 5.하지만 이런 미래를 누가 예상했겠어요? 유승준이 '이 우물은 다시는 마실 일 없는 우물이야'라며 한국을 떠났을 때만 해도 조악한 드라마 몇 편을 한류로 포장하며 있지도 않은 한류 기사를 쓰던 시기였으니까요.


 그러나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아이돌이면 아이돌, 배우면 배우, 드라마면 드라마, 영화면 영화, 예능이면 예능...거의 모든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한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배우들은 왕년의 홍콩 배우들 저리가라 하는 인기고 에미상을 타는 한국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있고 아카데미상을 타는 영화를 만드는 나라가 우리 나라예요. 


 심지어 가수 쪽은 아예 아이돌 양성의 메카가 되어버린 형국이죠. 어느 한 분야라도, 대한민국이 컨텐츠 업계에서 라이벌 없이 단독질주하는 분야가 있다는 건 유승준이 이곳을 떠날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예요. 사실 '성지'라는 말로도 부족하죠. 브레이킹 배드의 표현을 빌자면 이곳은 '코카 콜라가 유일하게 만들어지는' 곳이니까요.



 6.어쨌든 그래요. 아무리 조롱과 비아냥이 퍼부어져도 유승준은 계속해서 한국에 돌아오려고 시도를 하고 있죠. 20년동안 말이예요. 그가 바보도 아니고, 그만한 욕을 먹더라도 돌아오기만 하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하지만 글쎄요. 아직도 많은 한국인들은 그 때의 상처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에겐 우리나라가 유승준에게 그런 식으로 외면당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상처와 모욕이 될 테니까...어쩔 수 없는 일이죠.



 7.어쨌든 그래요. 우물을 외면하고 떠났던 자가, 욕을 먹으면서까지 다시 돌아오고 싶어하는 곳이 되었다는 것...이것이야말로 가장 멋지고 우아한 복수 아닐까 싶어요.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도 해낸 거니까요.


 마치 예전의 로마처럼요. 로마가 물리력으로는 뒤떨어지는 날이 와도 바이킹이나 다른 오랑캐들이 스스로 로마인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 문화의 힘이잖아요. 한국인이길 포기했던 유승준이 스스로 한국인이 되고 싶어하는 날이 와버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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