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어체로 씁니다.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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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방안에서 뭔가를 쓰고 있는 케이코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이것은 여자 복서의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지만,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케이코란 사람과 그의 인생을 함축한 프롤로그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방은 케이코의 방이다. 관객은 케이코가 자신만의 공간에서 기록하고 나누는 언어를 엿본다. 그리고 영화는 거울 속에 비친 케이코를 보여준다. 이렇게 언어를 남기는 케이코란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는 듯이. (이 장면이 이후에 나오는 편지를 쓰는 장면인지 아니면 일상적인 일기를 적는 장면인지는 불확실하다)

영화는 방에서 복싱 도장으로 공간을 옮긴다. 필기된 텍스트만이 고요하게 존재하는 그의 세계에서 밖으로 나오면 온갖 소음들이 섞이기 시작한다. 카메라가 이 공간을 잡자마자 낡은 기구들의 쇳소리가 시끄럽게 울려퍼진다. 그 소리는 참고 듣기에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이 영화는 이런 소음들을 강조하면서 전철이 지나가는 소리나 다른 일상 속의 소리들을 신경질적으로 들려준다. 케이코가 도장에 들어와 탈의를 하는 동안 카메라에는 그의 청각장애를 알리는 자막이 나온다. 소음이 고막을 긁고 지나갈 때마다 자연스레 케이코의 세계를 상상하게 된다. 아마 케이코는 다른 사람들만큼 이 체육관의 쇳소리가 불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자신만의 고요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가 체육관에서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은 크게 세가지다. 하나는 백보드에 직접 글씨를 써서 대화하는 문자소통이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은 보거나 보여주는 것으로 소통을 하는 것이 제일 간결하고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뭔가를 쓸 때 나는 작은 마찰음을 제외한다면 이것은 음성소통과는 확실히 다른 소통방식이다. 두번째로 케이코는 누군가가 말할 때 그 입술을 읽어서 의미를 유추한다. 케이코는 말을 하거나 듣지 못하지만 상대가 특정한 소리를 내기 위해 만드는 입모양을 읽어내서 소통한다. 서로 다른 종류의 언어교환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이 소통은 불완전하지만 케이코가 음성언어가 주가 되는 세계에 적응한 결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상대가 어떤 음성을 내는지 입술로 추측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어려운 일이지만 코로나 시대에는 이것이 훨씬 더 어려워졌다.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있는 사람의 입술을 독해할 방법이 없다. 영화는 마스크를 쓴 편의점 직원이 케이코에게 포인트 카드를 만드는 걸 설명하지만 케이코가 대뜸 계산을 하고 가버리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것은 케이코의 청각장애로 생긴 개인적인 불편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소통의 어려움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케이코를 통해 코로나 시대를 다시 곱씹는다. 마스크로 가려지는만큼 타인을 더 이상 제대로 볼 수도 읽을 수도 없게 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코로나 시대는 무음의 세계에 무시야를 더한다. 이 시대에 우리는 각각 얼마나 멀어져버렸는가.

마지막으로 케이코는 복싱 스파링으로 소통한다. 콤비네이션의 정해진 수순대로 원,투, 원, 투, 피하고, 훅, 피하고, 어퍼의 동작을 케이코와 코치는 반복한다. 약속에 따라 정확한 몸짓으로 자신의 의도를 상대에게 전달하는 이 행위야말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아닐까. 케이코의 이 복싱 콤비네이션은 상대를 쓰러트리기 위한 '자기주장'이다. 그러나 코치와 케이코 두 사람이 글러브와 미트로 정해진 신체적 신호에 반응한다는 점에서 이 스파링은 두 사람이 훨씬 더 큰 몸짓으로 강하게 펼쳐보이는 수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이 미트 스파링을 하면서 케이코는 계속 코치나 관장에게 정확한 동작을 하라고 "듣고" 그것을 다시 펼쳐보이는 "말하기"를 한다. 육체적 소통과 언어적 소통이 계속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이 체육관은 케이코에게 가장 격렬한 소통의 장인것처럼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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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케이코의 이 소통을 카메라에 동일하게 담지 않는다. 같은 수화라 할지라도 영화는 케이코의 소통을 세 종류로 나눠서 담는다. 하나는 케이코와 다른 사람이 나누는 수화를 자막으로 처리하는 방법이다. 이 때 관객은 다른 국가의 언어를 자막으로 이해하듯이 케이코의 대화를 자막으로 읽는다. 또 하나는 아예 자막이 붙지 않는 케이코와 다른 청각장애인들의 대화 장면이다. 영화 후반부에 케이코가 친구들과 만나서 수화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아예 자막이 표기되지 않아서 관객은 케이코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알 수가 없다. 영화가 케이코의 모든 것을 외부에서 설명하지 않는(혹은 못한다는) 점에서 영화가 캐릭터에게 거리를 지키는만큼 관객도 케이코에게 어느 정도까지만 다가가게 된다. 우리는 객석에서 케이코라는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청인이 청각장애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한계인지도 모른다. 청인이 청각장애인의 무음의 세계를 알 수 없듯이.

케이코의 수화를 영화가 표현하는 마지막 방식은 케이코가 수화로 말을 한 직후에 영화가 암전된 화면 가운데로 자막을 세로로 크게 띄우는 것이다. 이 방식은 오직 케이코가 자신의 남동생과 수화로 대화할 때만 나온다. 이것을 영화와 관객의 소통으로 생각한다면 케이코가 동생에게 하는 말만큼은 영화가 아주 중요하게, 꼭 집중시키고자 하는 것 같다. 혹은 케이코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대상이 동생이기에 그에게 하는 말은 이렇게 확실하게 화면에 띄워지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케이코와 동생이 이야기할 때마다 영화가 백보드 노릇을 하며 케이코의 말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암전된 화면 위로 띄워진 이 자막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케이코의 진심이다.

암전된 화면 위의 자막이 뜰 때마다 영화는 자막의 호흡이 생긴다. 이 자막을 통해 청인인 관객은 청각장애인인 케이코와 백보드로 대화하는 방식을 그대로 체험한다. 설령 케이코의 동생이 수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수화를 주언어로 삼은 청각장애인의 언어는 아닐 것이다. 소리가 들리는 세계에서, 능통한 '외국어'로 수화를 하는 동생의 입장이 되어 관객은 케이코의 마음이 자막으로 드러나는 것을 확인한다. 그렇지만 케이코의 이 솔직한 마음이 동생과 있을 때만 자막으로 처리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동생을 제외한 이 세계와 케이코 사이의 벽이 두텁다는 뜻이 아닐까. 이 영화가 정말로 주인공 위주의 영화였다면 케이코의 호흡을 따라 자막은 내내 암전처리된 화면 위로 나왔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케이코의 호흡이 자막으로서 동생과 있는 순간에만 나오는 이 불균형은 케이코가 청인들의 세계에서 주로 청인들의 언어에 맞춰 소통해야하는 불균형 그 자체일 것이다.

영화가 자막으로 케이코의 마음을 전달하는 이 '필담'의 소통은 어떤 사람의 언어가 얼마나 다른 것인지를 상기시킨다. 우리는 대화를 나눌 때 귀로는 언어를 들으면서 눈은 상대를 바라본다. 그러나 필담을 나눌 때에는 말 자체에 초점을 맞추면서 상대방으로부터 눈을 돌린다. 즉 아이컨택트를 하지 못한다. 그리고 텍스트컨택트를 한다. 나 혹은 상대가 하고 싶은 말이 어떤 것인지 그 말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가 언어가 다른 사람을 영화로 접할 때 실천하는 소통과도 무척 닮아있진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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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케이코의 복싱을 소통의 측면에서 생각해보게 된다. 이 때만큼은 텍스트로 눈을 돌릴 필요가 없다. 상대의 눈을 보고, 상대의 몸을 보고 반응할 뿐이다. 상대의 전신을 읽어내는 이 소통만큼 타인을, 혹은 세계를 농밀하게 경험하는 순간이 또 있을까. 첫번째 복싱 경기에서 케이코는 꽤나 두들겨맞는다. 그러나 어찌됐든 이긴다. 그는 생각만큼 즐거워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경기 후의 통증이 따라다닌다. 어머니는 이제 프로가 되었으니 할 만큼 하지 않았냐며 그에게 복싱을 그만둘 것을 넌지시 권한다. 그가 스스로 택한 세상과의 소통은 이렇게나 힘들고 다른 사람들도 이해해주지 않는 것이다.

복싱은 본래 고독한 승부라고 하지만 케이코의 복싱은 훨씬 더 위태롭다. 그에게는 세컨드의 지시가 전달되지 않는다. 자신이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 객관적인 분석과 함께 싸우지 못한다. 링 위에서 케이코는 혼자다. 그에게는 누군가의 도움이 닿지 않는다. 이렇게 고립된 채로 복싱을 하는 케이코의 모습은 그의 삶 전체를 떠올리게 만든다. 무음의 세계에서 그는 혼자만의 어떤 싸움을 해왔던 것일까. 그는 첫번째 경기는 이기지만 두번째 경기에서는 카운터를 맞고 녹다운된다. 어떤 순간 세계는 너무나 강대하고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여태까지의 노력도 물거품으로 만든다.

만약 이 영화가 스포츠 장르였다면 케이코는 다시 한번 불구의 도전정신을 불태웠을 것이다. 그러나 케이코는 스파링 도중 자꾸 뒤로 물러난다고 지적하는 코치에게 말한다. 맞는 게 아프다고. 아픈 게 싫다고. 영화는 가장 원초적인 고통을 건드린다. 맞는 것쯤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서로 때리고 맞는 복싱을 하면서도 그 아픔이 싫어서 도망치고 싶어질 수 있다고 영화는 말한다. 도전의식은 그냥 지속되지 않는다. 고통은 그냥 극복되지 않고 더 이상 견디기 힘든 것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이것을 소통의 측면에서 다시 한번 바라보면 타인을 마주하고 겪어내는 것은 얼마나 아프고 힘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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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코는 그만두겠다는 편지를 쓴다.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을 예정인 체육관에서는 관장이 케이코의 녹화경기를 잔뜩 몰입해서 보고 있었다. 그걸 보고 케이코는 그 편지를 다시 거둬간다. 자신이 포기해도, 그와 무관하게 계속 응원하는 다른 사람이 있다. 비록 소리가 닿지 않아도 계속해서 자신을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다. 포기하겠다고 써놓은 그 언어는 자신에게 닿지 않고 있던 그 시선의 언어를 만나고서 되돌려진다. 이후 뇌혈관 문제로 쓰러진 관장은 병상에서 케이코의 일기를 보며 재활의 의지를 다진다. 관장은 케이코가 어떻게 복싱을 준비했고 하루하루 어떻게 느꼈는지 일기장을 읽는다. 실시간의 음성언어로 전해지지는 않으나 서로를 향한 응원은 서로에게 가닿는다.

이것은 케이코의 이야기이지만 영화는 종종 케이코가 등장하지 않는 씬에서 관장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케이코가 복싱에서 멀어지는 것처럼 관장도 복싱에서 멀어진다. 관장은 코로나 때문에 체육관 운영을 접고, 그 자신도 건강이 나빠져서 병원에 입원한다. 각자 자신의 삶 속에서 큰 위기와 마주하며 싸우는 것을 보면 이 영화는 케이코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 두 사람의 싸움을 담은 것처럼도 보인다. 우리의 인생이란 고독한 결투이지만, 그 결투를 누군가 똑같이 하고 있다는 이 "동고"의 개념은 이상한 위로를 던진다. 관장도 싸우고 있고 케이코도 싸우고 있다.

체육관은 문을 닫았고 케이코를 가르쳐주던 코치들은 이제 다른 곳으로 떠났다. 포기가 자연스러운 이 상황에서 케이코는 다시 런닝을 시작한다. 그 런닝코스에서, 케이코는 자신을 넉다운시켰던 상대방을 우연히 마주한다. 작업복을 입고 있는 그는 케이코에게 한껏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자신을 이겼지만 그 역시도 그의 싸움을 관철하는 한 명의 외로운 사람이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다 저마다 치열하게 싸우면서 무섭고 힘든 것을 참아내고 있다. 이후 영화는 엔딩 크레딧을 올리면서 케이코 역을 맡은 키시이 유키노의 이름을 암전된 화면 위 자막으로 처리한다. 케이코가 동생에게 수화를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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