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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니아들 사이에서 90년대 독립영화 성장물 장르의 컬트 히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 중 하나죠. 저도 제목은 많이 들어봤고 워낙 청춘/성장물을 좋아해서 언젠가는 봐야겠다고 생각은 해왔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부담스러운(...) 포스터와 그다지 확 땡기지는 않는 스틸샷들 때문에 계속 미뤄왔었습니다.



최근에 드디어 감상을 했는데 이거 정말 쎄고 암울한 영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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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장영화들을 보면 주인공에게 나름대로 고민과 시련이 주어지고 작품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결국 어떤 성장통을 겪고 마지막엔 희망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엔딩이 거의 대부분이죠. 그런데 이 작품의 주인공인 미국 뉴저지에 사는 던에게는 도무지 이걸 긍정적으로든 아니든 극복해낼 수 있는 시나리오가 보이지 않습니다. 위에 사물함 낙서들만 봐도 아시겠지만 학교에서는 거의 왕따인데 밑의 사진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집에서도 거의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보통 학교에서 시련을 겪는다면 최소한 집에서 따뜻한 부모님이나 형제 자매들에게 위로를 받는 식으로 밸런스 조절을 시켜주는 편인데 말이죠. 



'지랄발광 17세', '판타스틱 소녀백서'의 주인공들의 성격이 아무리 지랄맞아도 최소한 옆에 착 붙어다니는 믿음직한 절친 캐릭 한 명은 있고 학교에서 인기없는 그런 설정인 것 치고는 나름 이성 캐릭터들하고 연애 플래그도 잘 서는 편이잖아요? 그렇다고 이들이 겪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깃털같이 가볍다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관객 입장에서 그래도 어딘가 안심이 되는 구석은 남겨둔 상태에서 너무 조마조마하게 걱정하지 않으며 영화를 보게되죠. 


그런데 이 영화의 던은 정말 사방이 꽉 막혀 있습니다. 절친... 포지션에 가까운 캐릭터가 하나 나오기는 하는데 얘도 왕따라서 하도 친구가 없으니 본인도 싫지만 어쩔 수 없이 그냥 같이 어울리는 정도이고 중간에 나름의 로맨스 비슷한 관계들이 나오긴 하는데 보시면 알겠지만 처음부터 제대로 된 연애의 가망이 없어 보이는 상대들입니다. 학교의 불리들은 정말 가혹하고 가족들에게서도 위안은 커녕 안그래도 힘든 삶을 더 힘들게 만들 뿐인 수준이에요. '에이스 그레이드'의 주인공도 던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행복한 금수저 소녀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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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만 보면 참 풋풋한 청소년 로맨스 같은데 말이죠...)



이러면 정말 암울하고 보면서 스트레스만 받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게 되실텐데 진짜 골때리는 건 이런 설정과 스토리 전개인데도 엄청 웃기고 재밌습니다? 억지로 웃기려는 드립성 대사나 맥락없는 슬랩스틱이 아니라 정말 누군가가 겪는 인생의 비극이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레 희극으로 보여질 수 있다는 상황들을 너무 훌륭한 완성도로 연출해냈습니다. 그래서 각본까지 혼자 다 쓴 토드 솔론즈라는 이 작품의 감독이 더 사악하게 느껴집니다. ㅋㅋㅋ 약간 '호신술의 모든 것', '듀얼: 나를 죽여라'의 라일리 스턴즈가 생각이 났어요.



작중 주인공의 상황이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로 비현실적이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암울하기만 할 수가 있나 싶었는데 IMDb나 레터박스 등에서 현지 유저들 평을 읽어보니 당시에 이 작품에 엄청나게 공감하고 오히려 자기가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걸 보니 훌륭한 작품이 맞는 것 같아요.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좋은 영화지 또 달리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ㅎㅎ 아마 보신 분들도 많겠지만 아직 안보셨고 궁금하신 분들은 왓챠에 있고 다른 국내 VOD로도 싸게 볼 수 있으니 꼭 감상해보시길 바랍니다. 진짜 웃기고 재밌어요. 웃다가 주인공한테 미안해져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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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당시 11~12세였고 첫 영화 데뷔였던 주연 헤더 마타라조는 이 연기로 미국 독립영화계의 오스카라고 할 수 있는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 신인상을 받고 나름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에 주류영화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주류 스타의 외모를 타고나지는 못했기 때문인지 데뷔작 정도로 개인 역량을 보여줄만한 작품은 없었던 것 같고 앤 해서웨이의 초기 출세작인 '프린세스 다이어리' 1, 2편에서 친구 역할로 나왔던 게 가장 유명한 출연작 같아요. '스크림 3'에도 출연했었고 2022년작 '스크림'에 다시 얼굴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또 한가지 재밌는 비화로 헤더 마타라조는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인데 이 영화에서 작중 주인공을 괴롭히는 치어리더들이 던을 레즈년(Lesbo)라고 부르곤 하는데 아직 어린 나이라 이 단어 뜻을 몰라서 레즈비언을 찾아봤다가 자기의 성 정체성이 완전 여기에 해당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허허... 



마지막으로 전혀 시리즈물 이런 것과는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독립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2016년에 직접 'Weiner-Dog'이라는 속편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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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한창 미국 독립영화계의 스타로 떠오르고 있었고 지금은 다들 아시다시피 감독으로 거장의 길을 막 걷고 계시는 그레타 거윅입니다. 헤더 마타라조는 당시에도 꾸준히 활동은 하고 있었지만 대중들에게 많이 잊혀졌기 때문인지 교체를 당했는데 감독에게 연락을 전혀 못받았다고 하네요. 이 작품 때문에 자신의 커리어가 시작됐으니 항상 고맙게 생각하지만 이 일은 많이 섭섭했다고 합니다. 이 속편은 전작에 비해 미지근한 반응으로 묻혔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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