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검찰과 정치검찰

2020.05.19 15:25

양자고양이 조회 수:811

윤석열 총장의 취임사가 참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 안나는데 "예전에 권력의 시녀로 행동했던 검찰의 이미지를 벗고 이제는 시민을 위해 일하는 검찰이 되자"는 뭐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시민을 위해 일하는 검찰에 방점이 찍힌 게 아니라 권력의 시녀로 행동했던 검찰을 벗어던지자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취임사 자체는 굉장히 멋졌습니다.


한명숙 총리 사건이나 채널A기자의 유시민 음해 계획을 보면 군사독재 시절의 패턴과 비슷한 점들이 있죠.

재판의 증거를 검찰 조서와 진술에 의존하고 법정에서 진술을 뒤집더라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전에 공안 사건들, 특히 정치적 이유로 만들어낸 사건들이 고문에 의한 자백이 유일한 증거가 되다 보니까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해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수법들이 최근에도 검찰 조사에는 여전히 많이 쓰이는 것 같습니다. 예전처럼 고문은 안 하지만 연속으로 10시간 넘게 여러날을 이어서 조사 하고 온 가족을 다 부르고 특히 가족에 대한 압박은 어떤 고문보다도 파괴력이 있죠.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검찰은 군사독재 시절 권력의 가장 충성스러운 협력자였으나 그 이후에 세상이 바뀌면서 댓가를 치르지 않고 면죄부를 받은 조직이죠.

흔히들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이 친일잔재 청산을 못한 것에 기인한다고 믿는 것처럼

민주화된 사회에서 여전히 공안검사스러운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바로 그것때문이 아닐까요?


경찰조직만 해도 나름대로 이미지를 쇄신하려고 엄청나게 노력했죠. 

언젠가 남친님이 제가 한국 뉴스 보고 있을때 경찰서 문에 포돌이 캐릭터가 붙어있는 걸 보고 '대체 저게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경찰 마스코트라고 하니 깜짝 놀라며 '경찰이 저렇게 재미있고 웃겨도 되는 거냐?'고 했습니다.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나름의 노력이죠. 특히 대민업무 담당하는 대한민국 경찰 엄청나게 친절하죠. 주취폭행등에도 말 못하고 시위대가 두들겨패도 맞기만 합니다.

물론 아직도 일부 권위적인 경찰, 비리 경찰, 일 제대로 안하는 경찰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대한민국 경찰들은 친절하고 도움을 주는 편입니다.  경찰이 조금만 잘못해도 짭새니 뭐니 하며 엄청난 비난이 쏟아집니다. 실제로 짭새라는 단어 자체가 군사독재 시절 사복입고 반정부 활동 감시하던 것에서 생겨났으니까요.


안기부도 이름을 바꿔가며 이미지를 바꾸려고 꽤 노력했죠. 실제로 이 사람들은 시민들과 직접적인 접촉은 별로 없고 활동도 베일에 쌓여있지만 너무 악명을 떨친 나머지 이미지 쇄신없이 바뀐 세상의 국민들을 감당하기는 어려웠죠.  


그런데 군사정권 유지에 가장 적극적으로 공헌했던 검찰은 그런 게 필요하지 않았어요. 세상이 바뀌자 재빨리 자리를 바꿔 앉았습니다. 반정부 인사, 데모 주동자들을 조사하는대신 군사정권하에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고문했던 악질 경찰들을 기소해서 재판에 넘겼습니다. 그렇게 아무도 책임을 안지고 이미지 쇄신도 하지 않고 변함없이 사회의 엘리트 계층으로 존경을 받으며  주어진 권력을 누렸죠.


사실 법원도 일조한 게 많은데 판사들의 이미지는 좀 다른 것 같아요. 판사들은 군사독재 시절에도 개별적 독립적 판결의 주체로써 약간은 그 지위를 누렸던것 같고 가끔은 학생운동 하던 이들을 서슬 퍼런 군사정권하에서도 무죄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도 있었고요. 3심까지 항소하는 제도도 있고 검사처럼 조직 전체가 '검사동일체'같은 이상한 논리에 묶여 있지도 않았으니까요. 지금은 공판중심주의라서 검찰조서와 법정 진술내용이 다르면 법정진술에 무게를 더 실어주는 주의인데 그래도 판사들은 워낙 다양하다보니 판결에 있어서는 정말 복불복이죠. 문제는 검찰이 작정하고 악의적으로 피고인을 괴롭히기로 마음먹으면 증거가 없어도 만들어내고 위조하기도 하고 심지어 아무것도 없어도 끝까지 항고해서 괴롭히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끝까지 가서 무죄판결을 받은 피고인은 '정의가 실현되어 기쁘다' 이런식으로 신문에는 인터뷰를 하지만 그 시간동안 삶은 피폐해지고 가족관계는 망가지고 무엇으로도 보상이 안됩니다. 더욱 나쁜 경우는 그렇게 유죄 판결이 나는 경우예요. 검사들은 정치적인 목적으로도 그런 일을 하지만 단순히 자신의 오류,실수를 덮기 위해 일부러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기도 하죠. 진짜 검사들이 신도 아니고 검사무오류설같은 건 좀 내다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인데 실수할 수도 있지 그걸 갖고 뭐라 안 하는데 적어도 실수를 알아차렸다면 그 때는 바로잡아야죠. 엉뚱한 사람 범죄자로 만들어 인생 망가뜨리지 말고.


유시민 작가 음해건은... 수사 안 할 것 같군요. 이걸 빌미로 MBC를 엮어서 같이 기소하려고 했나본데 아무래도 같은 언론사인데 채널A는 봐주고 MBC는 터는 게 모양새가 안좋겠죠. 그걸 보면 검찰도 이제는 여론을 좀 신경쓰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네요.  


갑자기 강경화 장관과 박능후 장관 형사사건 조사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대처 제대로 못한 죄로 고소당했는데 다음날 당장 수사에 들어가더니 후속보도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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