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15 23:04
현암사의 나쓰메 소세키 전집 중 6권 '갱부'를 읽었어요.
'갱부'에 대한 사전 정보는 없었기 때문에 이 작가가 광산을 배경으로 갱부 얘기를? 이런 소설도 썼다니 뜻밖이네, 라고 여겼고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했습니다. 이전까지 읽었던 소세키의 주인공들은 도시에 사는 고학력자였거든요.
이 소설은 광산의 작업 환경이나 그로 인한 갱부들의 고통을 문제삼거나 고발하는 작품이 아니었어요. 심지어 어떤 갱부의 개인적인 얘기도 아닙니다. 주인공이 '갱부'가 될 뻔하다가 만 이야기였습니다. 이 소설에서 실제로 채굴 현장 체험은 하룻동안의 오리엔테이션이 전부입니다.
3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이며 내용은 단순합니다. 열아홉 살 주인공은 삼각 관계로 창피를 당하게 될 상황이 되자 죽어버리거나 자멸 상태가 되고 싶어 가출하는데 길을 걷는 중 어쩌다 만난 알선업자를 따라 광산까지 가게 됩니다. 갱부가 되면 여차하면 죽을 수도 있겠고 어두운 땅 속에서 사람들과 멀리하며 살 수 있으니 '자멸'의 상태에 가깝다는 생각으로 따라갑니다. 돈도 없고 뭐 될대로 되라는 마음이었으니까요. 처음에는요. 소설은 브로커를 따라 광산까지 가는 과정, 광산에서 다른 갱부들 틈에서 숙식하며 열악한 상황을 겪는 장면, 그 다음 날 탄광 속에서 하루를 보내며 고생 중에 어떤 사람과 만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물의 마음이 차츰 침착해지며 정리되는 마무리 부분이 있고요.
죽고 싶어하던 사람이 유사 죽음 체험을 통해 살아가기로 생각을 바꾸는 이야기라 할 수 있어요. 생각을 바꾸게 되는 데는 갱 속의 지옥같은 열악함 때문만이 아니고 그 괴로운 경험으로 인하여 조성된 마음 상태에서 만난 특별한 갱부의 역할이 매우 큽니다. 문학이나 영화에서 상징적으로 꽤 쓰이는 '굴'이라는, 삶도 죽음도 아닌 장소를 통과하는 중에 은인인지 현인인지를 만나며 삶에 대한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입니다. 일종의 성장 소설입니다. 읽다가 보면 푹 빠지게 되고 몇몇 장면은 작가의 역량을 확인하며 기껍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갱 내부를 헤메던 중에 그 특별한 갱부를 만난다는 설정은 작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소세키 소설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소설 마지막 문장이 이러합니다. '내가 갱부에 대해 경험한 것은 이것뿐이다. 그리고 모든 게 사실이다. 소설이 되지도 못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소설이 되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왜 이런 말을? 당연히 겸양에서 하는 소리가 아니겠죠. 소설 속에 자살 명소로 유명했다는 게곤 폭포가 몇 번 언급됩니다. 소설 초반부터 언급되더니 갱 내에서 사다리에 매달려 힘이 빠지자 주인공은 여기서 죽는 건 개죽음이니 밝은 세상에 나가서, 게곤 폭포로 가서 죽어야 한다고 힘을 내기도 합니다. 소세키의 제자였던 고등학생 후지무라 미사오가 게곤 폭포에서 글을 남기고 자살한 후로 모방자살이 많았다고 하네요. 해설을 쓴 장정일 작가에 의하면 이 작품 '갱부'는 후지무라 미사오가 자살로 외친 인생의 허무에 대한 일종의 대답이라고 합니다.
절망 끝에 다다른 탄광의 갱 속에서 만난 갱부로부터 예사롭지 않은 가르침을 듣는다는 설정은 '현실'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소설'이라면 무리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작가는 포기할 수 없는 이야기를 제자 비롯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나 봅니다. 쓸 당시에는 작가에게 절실했는지 모르겠지만 세월이 흐른 다음 읽는 독자의 눈에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어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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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신기하네요?? 나쓰메 소세키는 한량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피지컬한 노동현장으로 주인공을 보내버리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