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기...(경기와 축배)

2020.05.09 21:22

안유미 조회 수:519


 1.몇년전에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면 이런 말을 하곤 했어요.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이제는 좀 팔고 싶다고요. 당시 기준으로 나는 그걸 15년가량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15년간이나 무언가를 가지고 있으면 지겨워지는 법이고요. 


 그리고 그걸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긴장과 두려움...답답함 같은 감정이 느껴지곤 했어요 그때는. 카이지에 빗대 말하자면 이제 이 도박의 끝을 보고 싶은 그런 기분이 된 거죠. 결과가 조금 안좋게 나와도 좋으니 이 게임판에서 그만 일어나고 싶다...이 긴장감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마음이요. 사실 그때쯤 듀게 일기에도 그런 소리를 많이 했었죠. 그 얘기를 여기저기 하고 다녔고 일기에도 줄창 썼으니까 그걸 들었거나 본 사람은 기억하고 있겠죠.



 2.그리고 이제 2020년이 됐지만 나는 그걸 아직도 팔고 있지 않은 상태예요. 2016년에 비해 약 50%정도 오른 상태고요. 2016년엔 아무리 늦어도 2018년쯤엔 팔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이렇게 쓰면 누군가는 이럴지도 모르죠.


 '뭣? 그토록 팔고 싶던 상태에서 50%가 또 올랐다고? 그럼 당장 팔아야겠네!'


 ...라고요. 하지만 정말...사람 욕심이 끝이 없다는 말이 맞는 건지, 절대 팔고 싶지가 않아져 버렸어요. 어쨌든 지금 당장으로선 말이죠. 몇 년 전엔 그렇게 일어나고 싶었던 자리였는데, 지금은 50%을 더 쳐줄 테니 일어나라고 해도 일어나기가 싫어진 거죠.



 3.사실 욕심이라기보다는 호기심이라고 하는 게 옳을 거예요. 잠재력에 대한 호기심 말이죠. 내가 일기에 맨날 쓰는 '잠재력이 곧 행복이다'라는 말처럼요. 이제 와서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믿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돈문제보다 더 중요한 게 있거든요. '그것'이 대체 어느 가격까지 올라가는지...그 끝이 어디까지인지 잠재력의 끝을 보고 싶어진 거예요.


 굳이 말하면 욕심은 욕심이 맞겠지만 '돈 욕심'이 아닌거죠. 분류한다면 '잠재력 욕심'인 거겠죠.  



 4.휴.



 5.요즘 일기에 너무 자주 쓰는 말 같지만 정말 그래요. 잠재력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잠재력만을 가지고 있는 시기에는 '내가 100만큼 가진 잠재력을 100만큼 현실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가지고 노력하겠죠. 하지만 그것은 행복한 불안감인 거예요.


 하지만 잠재력을 실현하는 시기가 되면 더욱 더 불안해지고 그 불안감은 기대감이 섞인 불안감이 아닌, 피폐함에 가깝게 되거든요. 자신의 손에 쥐어진 것들을 보며 '내가 고작 이 정도인가? 그럴 리가 없어. 이따위 건 내가 가진 잠재력 중에 절반도 못 해낸 거야.'같은 생각이 드니까요. 



 6.잠재력...사전에 써있는 말 그대로 아직 드러나지 않은 힘이예요. 그러나 인간의 잠재력이란 건 시기가 지나가버리면 발굴하려고 해봤자 이미 사라진 경우가 많죠. 


 왜냐면 인간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건 농사를 짓는 것과 같거든요. 겨울에 내년 농사를 잘 준비하고, 봄이 오면 잘 갈고닦아놓은 논밭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는 뙤약볕과 장마를 이겨내고, 가을에는 드디어 농산물을 수확하는 거죠. 논밭을 잘 관리하는 걸 봄이 되어서야 허겁지겁 하면 안 되고, 씨앗을 뿌리는 시기를 놓치면 안 되고, 물과 비료로 영양분을 주입하는 시기를 놓쳐봐야 소용 없어요. 수확을 해야만 하는 시기는 정해져 있고 수확의 시기가 끝나면 다시 겨울이 오니까요. 


 

 7.인간의 문제는, 자기 자신이라는 자원을 가지고 농사를 지을 기회가 인생에 딱 한번뿐이라는 거예요. 20대도 딱 한번만 있고 30대도 딱 한번, 40대도 딱 한번씩만 겪을 수 있으니까요. 각 시기별로 기회가 주어지는데 그 기회를 한번 놓치면 되돌리기가 참 힘든 거죠. 


 어린 친구들이 '어른들은 맨날 입만 열면 아파트 얘기만 해.'라고 투덜거리곤 하지만 그들은 어른을 이해하지 못하니까요. 어른들은 그들의 성장기가 끝났다는 걸 알아도 성장기의 기분을 느끼고 싶어하거든요. 그래서 부동산이나 주식, 아파트에 관한 얘기를 하게 되는 거예요. 


 어쨌든 그래요. 나이를 먹으면 잠재력이나 희망을 자기자신이 아니라 다른 것에 의탁하면서 찾아야 하기 때문에 주식이나 부동산 얘기를 주로 하게 되는 거죠.

 


 8.한 2016~7년에는 아마 의욕이 넘쳤던 것 같기도 해요. 그걸 팔아서 신나게 살아 보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어요. 위에 쓴 '그것'을 돈과 바꾸면 나는 내가 가진 가장 큰 호기심을 잃어버리게 되는 거니까요. 물론 나는 돈을 좋아해요. 하지만 돈을 쓰고 싶은 의욕 때문에 무언가를 팔아 버리면 거기서 가격이 메이드되어 버리고, 그러면 그 게임은 끝나는 거예요. 그냥 메이드된 가격으로 팔았다...라는 레코드만 남고, 게임은 끝나 버리는 거죠. 거래를 스포츠에 비유한다면요.


 스포츠에 비유하면 선수로서의 성향이 바뀌었다고 해도 되겠죠. 어떤 선수는 게임이 잘 풀리기 시작하면 딴 데 정신이 팔리기 시작해요. 이 게임을 어서 적당히 잘 끝내고, 뒷풀이하면서 축배를 들 생각을 경기중에 슬슬 품게 되는 거죠. 끝나고 어디가서 술을 마실지 어떤 여자를 만날지...염불보다 잿밥에 정신이 팔려버리는 거예요. 2016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요. 그때 나는 이 경기를 최고의 경기로 끝내는 것보다는, 경기가 끝나고 축배를 어서 들고 싶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거였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예요. 인생에서 중요한건 경기 뒤의 축배가 아니라 경기 그 자체라고 알게 됐거든요. 경기 뒤의 뒷풀이 자리의 즐거움에 정신이 팔려서 정작 본게임을 소홀히 하는 인생을 너무 오래 살아온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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