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일들

2018.12.26 10:29

어디로갈까 조회 수:1680

좀전에 어머니와 통화했는데, 어제 어디선가 받아온 운세풀이라며 또박또박한 음성으로 읽어주셨어요.
그 해석을 듣노라니 어이없어서 웃음이 터져나왔으나 곧 웃음을 거두게 되었죠. 
남의 인생사를 알아내고 풀이하며 곤고하게 살아가는 어떤 인생의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에요.
저는 강력하게 제 인생의 안과 곁에 있는데, 지구 한구석에는 나 - 그로선 얼굴도 모르는 타인- 의 인생수치(생년월일)를 받아들고 
그럴듯한 말들을 해내야 하는 한 외로운 인생이 있다는 게 강렬하게 인지됐달까요.

하지만 이 글을 쓰게 된 건 어제 저녁 산책에서 돌아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울렸던 전화벨과 통화내용 때문이에요. 
상대는 동료 dpf (독일인)이었어요. 
"뭐해?" " 아무것도..." 

대답을 듣지 못했다는 듯 그가 다시 물었죠. "무슨 생각하고 있었어?"  
"(이런 대답이라도 들어야겠다면) 와인. 한 잔 마시고 싶은데 떨어졌네."
"오? 물 떨어졌다는 것보다 더 나쁜 소식이다. 근처 마트에 가서 아무거라도 사와" 
" 싫어. 이 시간에 현관문을 나서는 건, 사표를 쓰는 것보다 세 배쯤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야." 
" 그렇구나.... 안녕."
돌연히 끊기는 전화는 때로 텅 비어 있는 세상을 비추죠.

한 시간 후, 다시 전화벨이 울렸어요. dpf이었죠.
"담~ 소포가 도착했습니다. 내려와 찾아가~" 
어안벙벙해서 내려가보니,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없는 현관 입구에 포장용 종이 박스 하나가 덜렁 놓여 있었어요.
밤 10시 넘어서 도착하는 소포란 기적이거나 농담이죠. 좌뇌 2시 방향에서 무언가 '툭' 끊어지는 소리가 났던가.....

상자에는 다섯 종류의 와인 여섯 병이 들어 있었어요.  그 중엔 이미 개봉해서 반쯤 마셔버린 와인도 하나 끼어 있더군요.
반 병짜리 와인을 확인하는 순간, 왜 포레스트 검프의 말이 떠올랐을까요 ? "Stupid is as stupid does." 

곧 그에게 전화했지만 휴대폰은 꺼져 있었어요. 다시 한 시간 후, 겨우 연결이 됐어요. 
'고맙다'는 인사는 그를 서운하게 만드는 말일 터라 심드렁한 어조로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죠.
"다섯 병은 우정이고 반 병은 사랑이니?" 
"다섯 병은 선물이고 반 병은 동냥이야." 
" ......알았어.ㅋㅋ 안녕." 
돌연히 끊는 전화에는 때로 한눈에 읽힐 수 없는 방대한 마음이 있죠.

목동과 이태원을 잇는 긴긴 밤길도 아니고, 관계란 숙제인가 축제인가 라는 의문도 아니고, 텅 비어 있을 그의 집 와인랙도 아니고, 
왜 검프의 저 유명한 나레이션이 가장 먼저 생각났을까요. "Stupid is as stupid does." 

새는 단순히 하늘을 나는 것이 아니라, 허공을 뚫으며 길을 만들고 있는 거라던 어느 시인의 통찰을 기억합니다. 관계 또한 그런 거겠죠.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71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815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322
123703 듀나원기옥 - 뉴진스 새 음반 보고 옛 파워퍼프걸 노래 찾기 [5] 상수 2023.07.10 308
123702 시대별 가수 [7] catgotmy 2023.07.10 350
123701 마틴 스코세이지 신작 -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메인 예고편 [6] 상수 2023.07.10 538
123700 뉴진스의 New Jeans와 슈퍼 샤이를 듣고 [6] Sonny 2023.07.09 1055
123699 애플TV는 자막조절이 안되네요 [4] 산호초2010 2023.07.09 358
123698 여름철, 하드 [3] 왜냐하면 2023.07.09 230
123697 [영화바낭] 듣보 B급 장르물 두 편, '테이크 나이트', '영혼의 사투' 잡담입니다 [4] 로이배티 2023.07.09 266
123696 프레임드 #485 [6] Lunagazer 2023.07.09 89
123695 음바페 인터뷰로 시끄럽군요 daviddain 2023.07.09 439
123694 갓 오브 블랙필드 라인하르트012 2023.07.09 212
123693 [영화바낭] 기대 이상의 튼튼한 귀환(?), '이블 데드 라이즈' 잡담입니다 [10] 로이배티 2023.07.09 444
123692 챗봇한테 유인촌을 물어보니 [2] 가끔영화 2023.07.08 442
123691 NewJeans 뉴진스 Super Shy MV 상수 2023.07.08 187
123690 프레임드 #484 [2] Lunagazer 2023.07.08 107
123689 히트 (1995) catgotmy 2023.07.08 160
123688 미임파 보고.. 라인하르트012 2023.07.08 305
123687 미션 임파서블: 데드레코닝 파트 1 감상!(스포 약간!) [2] 상수 2023.07.08 402
123686 스마트폰 오래 쓰는 법 catgotmy 2023.07.08 265
123685 인자무적 [1] 돌도끼 2023.07.08 218
123684 넷플 추천 Wham! [8] theforce 2023.07.08 46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