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장에서 나온지도 벌써 일 년은 넘었고 이 년이 되어가네요. 거기서 참 다양한 일을 했지만, 재직 당시에는 직장에서의 일을 글로 쓰기는 어렵더군요. 직업 윤리도 있고, 그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이야기한다는 것도 있고. 약간 신기한 점은 직장을 다닐 때는 시간이 떡처럼 뭉뚱그려져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곱씹어보니 꽤 오랜 기간을 한 직장에 있었더군요. 아무래도 계절 감각을 느낄 수 없는 풀타임 직업이기 때문이겠죠. 학생시절에는 방학이 시간을 분절시키고, 학년이 단계가 오르는 것 같은 감각을 주니까요.


나와서 보니, 잡다한 일들을 많이 하는 직장이었습니다. 개 중  하나는 이런 것이었는데요, 기부금 단체로 지정되어 있어 기부금영수증을 연말에 끊어주고, 관련 공지를 만들어 홈페이지에 기재하고, 3월 쯔음에는 국세청에 그 내역들을 정리해서 보내는 잡무였지요. 기부금 단체는 6년에 한 번씩 갱신해야 하는데, 그 기간에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아 탈락할 경우 몇 년간 다시 등록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웬걸, 회사에서 그걸 기억할 사람 없이 들고 나서 기부금단체에서 누락되어 있는 상황을 알게 되었죠. 전년도의 기부금영수증을 국세청에 신고를 하는데, 기부금단체 검색에서 나오질 않는 겁니다.


부랴부랴 확인해보니 매 6년마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고, 아무런 통보없이 자동 탈락되었던 것입니다. 기부금단체 관리는 기부금단체의 성격에 따라 담당 부처가 나눠지는데, 예를 들자면 예술계 기부금단체라면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부처가 담당할 겁니다. 약간 특수한 분과 소속이었던 이 부처는 기부금단체 관리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고, 저희에게 별 말도 안할 뿐더러 이 재신청 과정에 대해서도 별로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확인하여 1년 내에 재등록이 될 경우 올 해의 기부금영수증까지 소급하여 다시 끊어줄 수 있다는걸 확인하고, 전-직장이 어떤 변칙적 행위를 해서 박탈 당한 것이 아니라는 소명을 하고, 서류를 준비해서 제출하였습니다. 분기마다 신청을 받는데 부처가 서류를 받아놓고 제출하지 않은 건으로 한 번, 누락된 서류를 요청하지 않은 건으로 한 번 해서 연도가 다 지나갈 마지막 쯔음 일단 수리는 된 것을 확인하고 퇴직했죠.


집에서 놀고 있을 때 잠깐 생각이 나길래 확인해보니, 이땡땡땡년도 몇 분기부터 6년 간  다시 기부금단체로 기능하며, 영수증을 끊고 매 해 관련 내역을 홈페이지에 게재하도록 된 것을 보고 웬지 마음이 놓이면서도, 내가 그렇게까지 알아서 되도록 할 일이었나 생각이 들더군요. 생각 날 때마다 그 부처 담당자에게 전화해 닥달하며 서류를 제출하도록 하고, 그 서류를 미비하지 않게 받았는지 소관 부처에 또 연락을 했던 기억이 아련하네요. (퇴직한지도 꽤 되서 위의 일들의 기간이나 진행 시점 등이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여튼 세상을 바꾸는 자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편견이 있습니다. 세상이 바뀐다는건 우리의 시각과 행위의 논지에 묘한 영향을 줘서 이전과는 다른 삶을 만든다는 것이고, 그것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혹은 그 둘 다 일 수도 있는 일입니다. 저는 어느 정도는 그런 일들에 우호적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강한 명분에 이끌려 다른 나머지들을 간과하는 경우들을 싫어합니다. 예를 들어 어떠한 의견 표명에는 어느 정도의 행동하는 사람들이 필요하고, 그 사람 수를 모으기 위해서 정렬이 아닌 동원일 경우, 그리고 그 거절할 수 없는 동원의 일원이 되어야만 할 경우를 여러 번 겪게 될 경우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집니다. 친구들과도 이야기했지만 그런 업에 종사하면서 열정 페이와 부정 페이 사이에서 공정 페이를 얻는건 하늘의 별 따기이고, 그렇게 필터링 되어가며 어느 정도 과격한 사람들만 남게 되는 상황들은 씁쓸한 마음을 들게 합니다. (과격하다는게 잘못 되었다는게 아닙니다. 다만 냉정한 사람들과의 비율 문제도 있고, 저는 우리 편 나쁜놈(혹은 나쁘지만 우리 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쪽이라서..)


저는 제 자신을 판단했을 때, 후원도 자발적인 자리 채우기도 시위도 심지어는 어떤 카톡방에도 밴드에도 페이스북 모임에도 자리를 채워주지 않고, 국민 청원도 하지 않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 속하고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그게 어떤 방면이든) 그리 이득이 될 것이 없음에도 해 나가는 것을 우호적으로 보는 편입니다. 그리고 열정을 다해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부럽게 바라보기도 하구요. (아무래도 의심이 너무 많아서 무언가를 믿고 지지하는게 너무 어려운지도 모릅니다.) 길거리에서 받는 서명 정도가 현재까지의 제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이군요. (그도 10만을 모아서 제출하고 해야 어떤 의미와 흐름을 만들어 내니.)


그래서 이런 부분에서는 일정량 이상 익스큐즈(한국어로는 양보로 번역되더군요, 양해? 못 본척 넘어가기? 내로남불? 뭐라 바꿔야할 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많이 양보하지는 않습니다. 기부금 단체의 세무 신고가 갈수록 깐깐해지고, 홈텍스에서 웬만한 기부금 단체는 검색해서 올려놓은 내역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도 매 년 그 신고 내역서를 작성해서 올렸는데 사실 중구난방 주먹구구였습니다. 대략 5년 정도의 예상 기부금액을 예측하고 각 년도의 기부금액을 단체의 (보통 두리뭉실하게 다섯에서 열 가량 정관에 써져 있는) 목표별로 얼마씩 쓸지를 그려야 합니다. 그리고 받았던 기부금을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그 목표에 걸맞게 구분하여 내야 하구요. 깐깐하게는 기부금이 들어오는 통장이 아예 따로 관리되어야 하며 그 통장에서 나가는 계정을 정리하여 목표로 나누어 이전 3년 치를 신고하여야 합니다. (매 년 꾸준히 했다면야 당해년도치만 꼼꼼히 하면 되지만...)


전 행정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을 조금 혐오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대의나 명분을 위해 그럴싸한 일을 하는데 잡다하고 별 것 아닌 것은 필요 없다는 듯 두리뭉실 넘어가는 행위 같은걸 싫어하거든요. 행정이 작고 무의미해보여도 기록이 남는 것이고, 내실이 잡혀야 헛으로 쓰는 돈이 남지 않는데... 이런 부분을 소홀히 할 수록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어떤 모임에서 살림이나 행정하는 사람들을 대충 두고 대충하는 행위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대충 일들을 하게 요구 받아 봤고, 나중에서 이걸 어떻게 처리하나 하며 그나마 자유로운 인건비로 몰아서 넣고 다른 걸로 쪼개고 그런 일들을 해왔으니까요. 꼭 때가 되어서야 몽땅 뽑아서 작은 상자에 살아있는 거대한 것을 밀어넣듯 일을 끝내고.


그러니까 저는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 있으면 세상은 살아지는대로 굴러갈테고, 그렇다고 어떤 동기를 끓는 점 위까지 올려서 하기에는 상황이 안 되고,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완전히 지지해주기에는 각자 한 둘 씩 꺼림직한 면이 있고. 이번 상황에서 저는 그러한 뜨거운 사람들 사이에 둘러끼어 행정 처리를 했을 실무자를 상상하게 됩니다. 어떤 마음이었을지, 이렇게 하면 FM으로 하면 맞지는 않는데 하는 일이 일이니만큼 굴러가도록은 해야겠고, 자신의 직업 윤리와 사회 윤리 포지션을 제대로 잡기도 힘들고. 재단 계통과 기부금 단체 계통을 갈수록 빡세게 잡을 요량으로 보이니 앞으로도 교통정리가 더 필요해질텐데, 심지어는 이야기들을 읽어보면 이런 일들은 그리 크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지도 않고, 참 복잡한 심경입니다.


P.S. 두 주체의 철학적 대결이라면 험한 말을 꺼내는 편이 보기 안 좋습니다. 건실한 대화를 통한 좋은 결과로 이끌어져 갔으면 하네요.


P.S.2.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힘을 실어주고 싶은데 회의론적인 관점에서 밀어주고 싶은 쪽이 보이질 않네요.


P.S.3. 어떠한 속성으로 공감대를 형성하여 누구와 '연대'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게 되요. 연대란 말도 동원과 엮여 구식 사고처럼도 보이겠지만. 정말 다 싫으면서도 누군가와 함께하고도 싶고 참 복잡하군요. 개인주의자들은 어떤 식으로 연대하게 될까요?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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