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도 더워졌는데 멘탈 치사량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는 걸 피하려고 여러 정치/사회뉴스도 억지로 외면하면서 사는 요즘인지라 이런 리얼리즘 헬조선 독립영화도 가급적 스킵하려고 하고 있지만 김선영 배우가 처음으로 원톱 주연을 맡아서 아시아 영화제 여우주연상도 받았다는 얘기가 들리니 어쩔 수가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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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산업재해로 남편을 잃고 혼자 아들을 키워야하는 신세가 된 주인공 혜정이 진상규명을 위해 다른 피해자 가족들과 함께 농성을 벌이다가 결국 현실과 타협하여 기업 측의 합의금을 받고 신축 아파트(드림팰리스)에 분양을 받고 이사를 오는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농성과정은 스킵하고 진행되니 그래도 조금은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너무나도 리얼한 헬조선 스타일의 '부동산', '아파트'와 관련되어 일어날 법한 골치아픈 일들이 작중 내내 혜정에게 연달아 닥쳐오게 되는 것이죠.



이 간단한 시놉시스만 보셔도 벌써 얼마나 암울할지 예상이 되실텐데 그냥 막무가내로 주인공을 불행 속에 밀어넣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선택지 자체가 좁은 '을'에 해당하는 인물이 조금만 덜 힘들게 살려고 선택했던 행동들이 점점 스노우볼이 되어 이래저래 변화구로 굴러들어오는 과정을 굉장히 설득력있게 잘 풀어내고 있습니다.


주인공 혜정은 물론이고 다양한 조연급 등장인물들 역시 각자 나름의 이유로 이기적이면서 현실적이고 어느정도 수준에서 각각 공감이 가도록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각 캐릭터들에게 깊게 이입하다가 욕도 하다가 보니 재미있게 보면 안될 것 같은 소재를 다룬 영화인데도 중간 중간 웃음도 나오고 의외로 즐겁게 보는 맛(?)이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은 비슷한 처지의 을과 을끼리 연대하다가도 싸우면서 지지고 볶고 자멸해가는 사이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갑의 위치에 있는 인간들은 영화 밖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며 원래도 그랬다고는 하지만 점점 극단적으로 사회적인 구조와 제도의 문제점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고 있는 현실이 생각나서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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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배우의 어깨 위에 많은 것을 기대고 있는 영화인데 '응답하라 1988'로 이름을 알린 뒤 꾸준히 씬스틸러, 명품조연으로만 알려져왔던(맞는 말이지만) 김선영은 이제 이런 기회를 더 많이 받아서 문소리 같은 한국 최고의 여배우들과 같은 위치에서 언급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단한 존재감과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지도 때문인지 포스터 등의 홍보자료에서 투톱 주연처럼 나왔지만 사실은 가장 비중있는 조연 정도의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이윤지는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놀라웠던 부분입니다. 아는 출연작이 데뷔했던 '논스톱 4'일 정도로 저는 관심이 없었는데 이런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였다는 걸 처음 깨달았어요. 앞으로 차기작에 관심이 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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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출연진들도 각자 제몫을 하며 주연배우를 받쳐주고 있습니다. 드림팰리스 아파트의 입주민 대표를 연기하신 분도 씬스틸러로 꼽을만했고 김태훈이 연기하는 아파트 분양사 본부장은 이 작품에 직접 등장하는 캐릭터 중 그나마 빌런에 가깝지만 결국 생각해보면 그 역시 거대한 시스템의 하수인일 뿐이라는 걸 잘 표현해주고 있네요.



저번달 개봉작이라 막 VOD로 풀렸는데 가격이 좀 쎕니다. 여러모로 암울하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내용이지만 나름 중간 중간 상황을 잘 살리는 블랙 코미디 같은 요소들도 잘 들어가있고 충분히 영화적으로 즐길만한 부분들이 상당한 또 하나의 웰메이드 국내 독립영화이니 너무 겁먹지마시고(?) 감상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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