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오랜만에 노량진에 갔다왔어요. 가려고 간 건 아니고 신림역 버스정류장에 하릴없이 서 있는데 온 버스가 마침 노량진행이길래, 한번 가 봤어요.


 한데 막상 버스를 타 보니...현금이 없는거예요. 노량진에 갈 때는 오락실이나 만화방...싼 식당들을 이용하기 위해 현금이 필요한데 말이죠.



 2.어쨌든 노량진에 도착했어요. 와본 김에 뭘할까 하다가 부동산 매물이나 구경해볼까 하고 부동산을 찾아 봤어요. 딱히 부동산은 없었어요. 그나마 지하에 있는 부동산 하나는 휴무였고요. 노량진이라면 조그마한 부동산 매매가 꽤 활발할텐데 부동산이 왜 안보일까 궁금했어요. 실물 매매가 아닌, 월세방이나 전세방을 구하는 건 이곳에서 앱 같은 걸로 거의 해결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어쨌든 그냥 이 곳에서 '빌라 건물이 있을 것 같은'곳을 찾아 한번 걸어 봤어요.



 3.역시 빌라 건물이 모여있을 것 같은 곳에 빌라 건물 몇개가 있었어요. 필로티식으로 지어진 건 거의 없었고 가장 최근에 지은 듯한 건물도 그냥 1층부터 지어올린 건물이었어요. 이유가 뭘까...아무래도 노량진에서 자취하는 사람들은 자가용이 별로 없기 때문일까라고 주억거렸어요. 그리고 투룸이나 쓰리룸이 아닌, 원룸 건물들 투성이였어요.


 이리저리 둘러본 결과, 노량진의 빌라를 사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았어요. 일단 원룸건물은 관리가 힘들거든요. 같은 면적 대비 방이 너무 많으면 관리도 힘들고, 빌트인 시설이나 보일러가 나갈 때마다 꼬박꼬박 돈을 발라줘야 하니까요. 빌라 건물을 살거면 좀 크게 빠진 투룸 건물이 좋아요. 쓰리룸은 큰 가족 단위로 들어오게 되면 그 또한 관리가 힘들 수도 있으니까...적당히 임대도 잘 나가고 관리가 상대적으로 쉬운 투룸이 제일 낫다는 게 내 지론이죠. 



 4.휴.



 5.전에 듀게일기에 쓴 것처럼 노량진에 모처럼 간 김에 허수아비 돈까스를 먹고 싶어서 가봤어요. 그런데 앞까지 갔지만 결국 들어가지 못했어요. 둘도 아니고 혼자 먹으러 간 건데...혼자 먹으러 가서 카드로 계산하면 너무 미안해서요. 한 2천원만 더 비쌌으면 그냥 들어가서 먹는 건데 너무 싸서 카드로 계산하기가 미안했어요. 그래서 배가 고팠지만 그냥 참고 다시 노량진 거리를 걸었어요.



 6.노량진 거리에는 어린 사람들...어리고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거리를 걷고 있었어요. 그런데 나는 그렇지가 않아서 좀 슬펐어요.


 사실 거길 걷고 있는 사람들이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게 반드시 부러운 건 아니예요. 그들의 목적이라고 해 봐야, 내게는 오래 전에 통과했거나 해결한 지점에 불과한 것들이 대부분일 테니까요. 그리고 목적이 반드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그래도 목적이 아예 없는 삶은 우울한 거죠.



 7.노량진 거리를 걸으며 앞으로 나는 뭘 하며 살아야 하나...라고 생각해 봤어요. 첫번째는 이런 곳의 무언가를 사서 그냥저냥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거겠죠. 두번째는 이런 곳에서 뭔가 커피숖 같은 장사...적당히 망해도 괜찮은 장사를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세번째는 그냥 부평초처럼 떠돌며 여행이나 다니는 삶.


 하지만 세가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요. 이제는 알거든요. 내가 어떤 안온한 길을 선택하든간에, 내가 결국 얻게 되는 건 노인이 되어버린 나일 뿐이란 거요. 하루하루 즐겁게 살든,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든...나는 살아있으면 결국 노인뿐인 내가 되어버릴 거고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걸 말이죠.


 

 8.어쨌든 예전엔 그랬어요.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삶을 꿈꿨죠.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고 자고 싶은 잠을 마음껏 자고 하고 싶은 게임을 마음껏 하는 거 말이죠. 그러나 겪어 보니 하루하루 즐겁게 산다는 건 매우 피상적인 개념일 뿐이예요. 전에 썼듯이 인생의 즐거움이란 건 결국 스케줄과 스케줄...의무와 의무 사이에 있는 작은 틈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즐거운 거거든요. 


 그게 데이트든, 비디오 게임이든, 유흥이든...사막을 건너던 와중에 잠시 들르는 오아시스에서 겪는 것이기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거예요. 하지만 일주일 내내, 한달 내내, 일년 내내 오아시스에서 계속 산다면? 그건 즐거움이 아니라 또다른 일상일 뿐이죠. 오아시스는 잠시 머무는 곳이기 때문에 오아시스인 거지 눌러앉아 사는 곳이 아니니까요.


 전에 술집에 대한 일기에서 썼었죠. 술집 룸에서 죽치고 있다가 홀에 나가, 술집에 놀러온 남자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고요. '아, 이 자식들은 여기 올 때 정말로 놀 작정을 하고 오는 거구나.'라는 생각이요. 왜냐면 걔네들은 술집에 어쩌다가 한 번 오니까요. 그 당시의 나는 거의 매일 갔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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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그래요. 온갖 힘...모든 수단을 모아서 열심히 살 수밖에요. 나를 힘들게 만들고 초조하게 만들 만한 무언가를 계속 시도해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정말 지쳤을 때 어쩌다 한 번씩 오아시스에 가는 삶...그런 삶을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하지만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네요. 친구의 말마따나 이 세상은 99% 인맥이거든요. 내가 나의 힘-자본의 힘이 아닌-으로 할 수 있을만한 게 별로 없다는 걸 최근에 느끼고 있어요. 


 생각해 보면 나는 '사회인'은 절대 아니긴 해요. 나를 긍정적으로 봐 주고 다른 사람에게 나를 연결, 소개해 줄 만한 사람은 이 사회에 아무도 없거든요.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열심히 살고 싶다'라는 말 또한 매우 공허한 말인 거예요. 


 왜냐면 경력도 경험도 없기 때문에...누군가에게 소개받는 일은 커녕 막일도 못 하거든요. 편의점 야간 알바나 뭔가 노동을 하려고 해도 그런 걸 해본 경험이 있어야만 시켜 줄거니까요. 


 전에는 뭐 '나는 언터처블이야! 자기자본 100%로 먹고 살고 남에게 손은 안 벌린다고.'라고 잘난 척 쓰긴 했지만 사실 다른 사람들 간에 긍정적으로 연결될 길이 없으니...자기자본으로 먹고 사는 건 선택사항도 아닌 거예요. 내 몸을 움직여서 뭔가 아웃풋을 내보려고 해도 그럴 기회가 잘 없으니까요. 


 생각해 보면 일기에 종종 '돈이 최고야!'라고 쓰는 건 내 경우엔 정말 100% 맞는 말이긴 해요. 위에 썼듯이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려고 해도 이 나이엔 아무도 일을 가르쳐가며 나를 써먹으려 하지 않을 거니까요. 사회인이 될 수 있는 기회조차 모조리 차단되어버린 나이이기 때문에...돈이 최고라는 말은 어쩌면 내게 정말 들어맞는 말일 수도 있죠. 


 그러니까 열심히 살고 싶다는 말도 꽤나 공허한 말이예요. 써놓고 보면. 열심히 살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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