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있음] 인어공주

2023.06.13 11:23

잔인한오후 조회 수:698

한 달에 적어도 한 번 정도 주말 영화를 보는 편인 저에게, 영화관은 올 해 들어 상당히 부산했습니다. 아무래도 범죄도시를 보러온 사람들이 다수였고, 인어공주는 3주차인데 일요일 전체 중 5시 딱 한 타임 잡혀있더군요. 다른 영화관에 무작정 갔다가 9시 딱 한 타임 잡혀있는걸 놓쳤다가 확인하고 온 것이긴 합니다. 다른 영화관은 더빙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되었어도 안 봤을지도 모르죠. 생각보다 관객이 많았는데, 대부분 어린아이와 부모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영화관에서 실사 디즈니 영화를 거의 본 적이 없어요. [뮬란]이나 [라이온킹]은 안 봤고 [알라딘]은 애인 때문에 봤고요. (사실 애인도 뮤지컬 영화를 아예 안 보는데 모종의 이유 때문에...)


영화를 보기 시작하는데, 내용을 미리 아는게 하나도 없구나라는 자각이 들더군요. 왜냐면, 보기 전에 적어도 몇 천줄의 관련 글과 사진을 봤을 텐데도, 알고 있는건 조롱받는 몇 장면과 실사화가 너무 현실적이라는 지적, 너무 어둡다는 이야기 정도였거든요. 그런 공갈빵 같은 이야기들로 배가 헛으로 불러 보니까 기묘한 기분이었습니다. 내용 비슷하게 들은건 딱 하나, 상어가 나와 아이들이 놀랬다는 그런 지적이었는데...


옆자리 아이들은 상어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다만 우르슬라가 나올 때마다 자리를 옮겨 엄마 위에 껌딱지처럼 찰싹 붙더군요. 그리고 부모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는데 들려온 것은 인어가 진짜 있느냐, 왜 저 공주는 말을 안 하느냐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인어가 진짜 있다고 답변해주시더군요.)


저는 디즈니 영화의 리메이크 본을 감식하기엔 자격이 모자랄지도 모릅니다. 어렸을 적 만화영화들을 비디오로 빌려봤지만, 딱히 기억이 잘 남아있질 않고, 일요일에 하는 디즈니 만화동산은 교회 가느라 볼 수가 없었거든요. (보는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그리고 한동안 교회에서는 디즈니가 뉴에이지와 악마 코드들로 가득하다고 배척하는 분위기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우르슬라는 그저 악역일 뿐인데도 그렇게 미웠는지?) 대신 아무생각 없이 새롭게 봤다고는 자부할 수 있겠군요. 단적으로는 언더 더 씨 노래가 그런, 외부로 나아가지 말고 편한 환경에 머무르라는 가사인지도 몰랐네요. (세바스찬 이야기에 너무 설득되서 원작에서도 마찬가지일 우리 주인공의 호기심에 이입이 안 되더군요. 유산계층의 자식, 심지어 막둥이로 태어나면 좋은 환경 이런거 다 버리고 거친 곳으로 가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인지. 물 속에서도 충분히 햇볕이 들고 2차원 공간에 붙어사는 것보단 3차원 이동을 자유자재로 하는게 더 자유스러워 보이는데...) 


영화는 전체적으로 평이했습니다. [알라딘] 때를 생각해보게 되는데, 이 왕국이란 곳들은 그다지 대국처럼은 보이지 않고, 크면 구 단위, 적으면 리 단위 정도의 공간인가 싶을 정도로 조촐했어요. 인어공주는 전 세계 바다를 다스리는 왕의 자식이니 너무 한갓진 나라의 사람에게 마음이 빠진게 아닌가 싶기도 하는 생각도 들고요. (뭐. 왕자야 자기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라 사랑에 빠졌지만, 공주는 반려동물을 구하기 위해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고 반했으니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딱히 왕자고 뭐고 보다는 인성 때문이니까.) 다른 것보다 디즈니는 왜 실사화를 이렇게도 꾸역꾸역 해나가고 있는가 궁금해지더군요. 노래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들었던건 새가 부르는 랩이었습니다. 옛 영화를 실사화하다 보니 아마 과거 있었던 넘버들을 재구성 하거나 새롭게 써 넣어야 할텐데 그런 번혁과 유지에 대한 갈등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 같더군요. 새롭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과거스럽지도 않고. 다른 것보다, 원 영화에서도 그랬겠지만 목소리를 빼앗긴 뮤지컬 주인공이라니 이런 끔찍한 설정이 어디 있는가 했습니다. (뭍으로 올라서는 머릿 속으로 노래를 부르는 고육지책을 사용하더군요. 원작도 그랬던가.)


인종적인 설정도 기묘했습니다. 흑인 여성 왕의 백인 남성 왕자와 백인 남성 왕의 흑인 여성 공주가 만나 행복해지는 이야기. 전부터 생각하는 것인데 흑백 조합에서, 백인 남자 흑인 여자 조합은 간간히 보이지만, 백인 여자 흑인 남자 조합은 여전히 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애초에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대부분 백백, 흑흑 커플만 등장할 뿐이지만요. (다른 성애로 넘어가도 이 부분을 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더군요.) 이런 오셀로 같은 설정도 그냥 그 자체를 언급하지 않는 세계가 온다면 그도 나쁘지 않겠지만. 


인어공주 원작 소설의 갈등은, 결국 진정한 사랑을 얻지 못하고 거품이 되어버린다는 것에 있으니, 여기서도 그걸 어떻게 결정할 지 궁금해서 보는데, 해 지기 직전에 키스를 하지 못하고 본 모습이 드러난 후 갈등이 초고조로 달할 때까지는 좋았습니다. 인종 조차 아닌 종을 뛰어넘는 사랑이 되는 것인지 불완전한 결말을 짓는 것인지 했는데. (분위기 급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갑작스런 우르슬라의 급 사망에 이어 삼지창에 영혼이 결속되어 있는지 살아 돌아온 왕에게 다리를 부여받고(??) 인어와 인간 대통합의 축복을 받으며(???) 엄마에게 허락받은 왕자와 아주 허름한 웨딩 보트(???? 아무리 갈아타는 배라지만)를 타고 새로운 바다로 나아가는 결말에서는 약간 벙찌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귀엽던 반려 곰치 둘의 급 사망... 우르슬라도 왕자의 눈이나 다리 하나는 가져갔어야 되는거 아닙니까. 후크 손도 괜찮겠군요.)


특히 인어공주의 다리를 만들어주려고 삼지창에서 은빛 물 마법이 스윽 날아가고 난 후, 물 위에 동동 떠서 상체만 나와 있는 인어 왕의 느린 클로즈업은 90년대 영화를 방불케 했습니다. 이런 이상하고도 처참한 결말은 어떤 이유로 결정된 것인지. 캐스팅 이후 엄청나게 많은 비난의 결과 새로운 것도 못 해보고 완전히 경직된 상태로 뜯어고친 것인지.


영화 자체로만 놓고 보면 많은 돈을 들여서 만들었다기엔 (언더 더 씨 씬 뺴고는) 그런 부티나는 장면은 크게 없었던, 힘 쎄게 들인 평작처럼 나왔다고 생각이 들고요. 영화 외적으로 이런 난리가 난 상황에서 보니 에리얼의 어머니를 죽임 당했지만 '인간 전체가 아니라 사람 한 명'이 그랬을 뿐이라며 인간들에 대한 호불호를 쉽게 결정하지 않는 장면이나, 억지처럼 보이지만 종족 대통합의 결론 같은 것들이 훨씬 아이러니컬하고 어떤 시대적 의미를 역으로 부여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노래를 잘 불러서 캐스팅 된 것 같았는데 더 많이 노래를 넣어줬었으면. 스피치니스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P. S. 초창에 여러 명의 인어 공주들이 등장하는데요. 다양한 인종(물고기니까 무늬, 비늘 이라고 해야 할 지;)이 우르르 나옵니다. 어떻게 막둥이 싫어하시는 분들은 이 분들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아무래도 있을텐데 그런 이야기는 하나도 없더군요. 그리고 보니, 조개 브래지어는 완전히 비늘로 바뀐 것 같더군요. 왕은 조가비 같은걸로 가려서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모르겠군요.


P. S. 2. 주인공 얼굴상은 개구진 편인듯 합니다. 말 잘 안듣고 편하게 자란 느낌이죠. 어머니를 잃긴 했지만. 왕정이 끝난지 언제인데 언제까지 공주 왕자 이야기가 소구력을 가질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바다 속의 공학이 인간보다 더 발전하지 못 했다는 것도 신경 쓰이는 편인데, 삼지창이나 영상 마법 등을 보면 훨씬 더 테크니컬하게 고도화 될 수 있는데 다른 도구들은 없더군요.


P. S. 3. 대부분 어린이 관객(과 동행한 부모)들이라서 혼자보러 왔는데 약간 부끄러웠습니다. 스탭롤 보면서 노래를 들으며 곱씹고 있는데 청소하시는 분이 '이거 쿠키 없어요!' 하셔서 요즘 분위기는 이렇구나 싶었습니다. (영화와 영화 간격을 아주 좁혀서 청소 시간이 거의 없기도 하다는걸 알아서 더 씁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81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822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331
123687 미션 임파서블: 데드레코닝 파트 1 감상!(스포 약간!) [2] 상수 2023.07.08 402
123686 스마트폰 오래 쓰는 법 catgotmy 2023.07.08 265
123685 인자무적 [1] 돌도끼 2023.07.08 218
123684 넷플 추천 Wham! [8] theforce 2023.07.08 464
123683 이런저런 일상...(오픈월드) 여은성 2023.07.08 226
123682 [영화바낭] 저도 가끔은 유료 vod를 봅니다. 타이 웨스트의 '펄' 잡담 [9] 로이배티 2023.07.07 395
123681 프레임드 #483 [6] Lunagazer 2023.07.07 108
123680 [VOD바낭] 이블데드 라이즈 - 간만에 호러팬들 만족시킬 피칠갑 장르호러! [10] 폴라포 2023.07.07 384
123679 자카 - 몇 가지를 바로잡겠다 daviddain 2023.07.07 143
123678 황비홍 소림권 [4] 돌도끼 2023.07.07 257
123677 더운 여름은 장마 덕에 한달 밖에 안되는군요 [1] 가끔영화 2023.07.07 257
123676 7월 말에 열린다는 포천 우드스탁 페스티벌 과연 어찌 될까요... [2] 모르나가 2023.07.07 336
123675 공회전만 하는 출산율 논의 [19] Sonny 2023.07.07 735
123674 강풀원작 디즈니플러스 무빙 커밍순 예고편 상수 2023.07.07 209
123673 [넷플릭스] 셀러브리티, Flixpatrol 전세계 2위 등극!! [2] S.S.S. 2023.07.06 387
123672 듀나인 - 경주 여행 맛집, 볼거리 추천 부탁드립니다 [2] 상수 2023.07.06 224
123671 리버풀 ㅡ 음바페 daviddain 2023.07.06 125
123670 [영화바낭] 굿바이 인디아나 존스,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잡담입니다 [15] 로이배티 2023.07.06 537
123669 인스타그램은 트위터의 꿈을 꾸는가? [1] 상수 2023.07.06 282
123668 프레임드 #482 [2] Lunagazer 2023.07.06 7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