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에 있어줘

2015.12.26 00:46

Bigcat 조회 수:5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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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Black Brunswicker - 부분도, 존 에버렛 밀레이, 1860, 레이디 레버 아트 갤러리

 

 

1859년 11월 18일 편지에서 존 에버렛 밀레이는 아내 에피에게 새로 떠오른 작품의 착상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 주제가 정말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워털루 전투에서 그들 기마대는 정말 멋진 투혼을 보여주었지요. 그들은 모두 독일의 손꼽히는 집안 출신의 신사들이었고 전장에서는 누구보다도 용맹한 자들이었소. 그들의 무훈은 정말 기억될만 합니다...."

 

밀레이가 이즈음 착상한 주제는 나폴레옹 전쟁이었습니다. 물론 그는 흙먼지 날리는 전장에서 말과 군인들이 검을 휘두르는 어마무시하고 웅장한 전투화를 그릴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습니다. 그가 언제나 집중했던 주제는 거대한 역사속에서 진짜로 존재하는 인간의 한 모습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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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레이가 언급한 '워털루 전투'는 그의 시대에서도 45년전에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1815년) 물론 역사적으로 엄청 큰 사건이기도 했죠. 유럽의 구체제를 위협하던 강력한 정복자가 바로 그 힘을 잃고 사라져간 날이기도 했으니까요. 나폴레옹의 결정적 몰락이 된 그 때의 전투를 소재로 정말 많은 역사화들이 제작되기도 했구요. 그런데 왜 하필 밀레이는 이미 역사속으로 사라진 나폴레옹 전쟁의 이야기를 그리려고 했던 것일까요?

 

사실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 밀레이의 시대에서도( 1850년대) 나폴레옹의 이야기는 끝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의 조카 나폴레옹 3세가(1808~1873) 바다 건너 프랑스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 그냥 실권을 장악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제정을 부활시키고 황제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밀레이가 20대를 보내던 시절인 1850년대는 전 유럽이 나폴레옹의 부활...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는 끊임없이 영국을 위협하던 그 옛날의 바다 건너 적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 시절 프랑스는 영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크림반도와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에서 활발한 군사작전을 벌이고 있었죠. ( 영불연합군의 청의 수도 북경 점령 사건, 조선과의 병인양요 그리고 베트남을 비롯한 인도차이나 반도의 식민화...-_-;;) 거기다 1859년에는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고 오스트리아를 격파하여 이탈리아 북부를 지배하던 합스부르크 세력을 몰아내고 그 댓가로 사보이와 니스등의 주요 도시들도 챙긴 참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일련의 군사적 행보가 당시 밀레이의 주목을 끌었던 것 같습니다. 반세기의 시간이 흘렀어도 나폴레옹 3세의 행보는 그의 삼촌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죠. 그런데 밀레이는 워털루 전투에서도 전선을 이끌었던 웰링턴 공작이라든가 프랑스의 네 원수같은 역사적 인물들 보다는 이름없는 평범한 남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역사화를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말이죠. 그런데 그렇다면 대체 어떤 평범한 인물들을?

 

 바로 이 지점에서 밀레이의 주제 의식이 드러납니다. 그는 위대한 승리로 기억되는 '워털루 전투'에서도 실은 패배한 전투인 카르트 브래스 전투를 떠올렸고 - 그런데 영국군의 패배는 아닙니다. 워털루 전투 직전에는 이 밖에도 수차례의 군소 전투들이 있습니다. 워낙 큰 전쟁이었거든요 - 당시 영국과 동맹을 맺고 있었던 독일의 한 기마부대가 그 전장에서 용맹히 싸우다가 스러져갔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바로 그 전투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합니다. 워털루 전투하면 모두들 승리의 기억만 떠올리는 가운데서 비록 예비전이긴 하지만, 나폴레옹 군에게 유럽 동맹군들이 패배한 전투를 소재로 택했다는 점에서 밀레이의 독특한 시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선택함에 있어서 단순함 보다는 아이러니가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듯 합니다. 여튼 그는 전쟁을 소재로 역사화를 그릴 셈이었지만 위대한 무훈 이야기 보다는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를 묘사할 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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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면속의 남자는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연인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그는 독일 연방 브라운슈바이크 대공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부하 장교로, 대공이 만든 기병대 브룬스비크( 독일명 브라운슈바이크)의 소속 군인이기도 합니다. (별명으로 '검은 군단'으로 불리기도 했죠) 그런데 그의 연인은 그에게 전쟁터에 나가지 말라며 그를 말리고 있습니다. 이른바 남성의 의무와 여성의 사랑이 부딪히는 순간이죠.

 사실 이 시절만 해도 여성들이 남자들이 전쟁터에 나가는 걸 말리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다들 무훈을 빌어주며 이별을 고하곤 했었죠. 그랬는데, 이 그림에서 여주인공의 태도는 사뭇 비장합니다. 전신으로 연인을 막으며 한 손으로 문을 닫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애인 역시 문을 열고 있죠. 이 팽팽한 구도는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남자가 떠나는 전장이 승리가 아니라 패배의 전장이라는 걸 보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고 - 게다가 그가 무사히 살아 돌아올지도 확신이 서지 않는 상황이니까요 - 화면속의 연인들의 대치가 큰 긴장감을 자아내는 바람에 여인의 아름다운 흰 드레스는 마치 상복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게다가 한 가지 재밌는 점은, 방 왼쪽벽에 걸린 화면 가장자리의 그림입니다. 너무 유명해서 이 그림 모르시는 분은 없으실 겁니다. 바로 1801년에 그려진 다비드의 나폴레옹 초상화 말입니다. '세인트 베르나르의 알프스를 건너는 나폴레옹'  누구인지 이 방의 주인은 나폴레옹의 숭배자인가 봅니다. 그런데, 대체 이 방의 주인은 누구인 걸까요?

  이 지점에서 밀레이 특유의 아이러니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녀가 그토록 연인에게 전장에 나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건 물론 애인에 대한 사랑도 크겠지만 실은 그녀가 숭배하는 영웅과 사랑하는 사람이 싸우는 것을 원치 않는 심정도 있기 때문입니다. ( 나폴레옹을 숭배하는 독일 귀족 여성이라니...만일 이 사람이 프랑스인 이었다면 대혁명기에 혁명가로 활동을 했었을 수도...) 이토록 낭만적인 갈등의 상황이라니!

 

 언듯 봐서는 평범한 연인들의 작별 장면을 그린듯 하면서도 뭔가 감상자의 뒤통수를 치는, 밀레이 특유의 반전의 감이 생생히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은 밀레이의 장담대로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로열 아카데미 전시 후 5월의 런던에서 열린 전시에서도 대중들에게 좋은 평을 얻은 후 당시 손꼽히는 미술상 어니스트 갬버트가 상당히 높은 가격으로 이 작품을 구입했습니다. (덕분에 젊은 시절 밀레이의 작품 중 상당히 고가에 팔린 작품 품목에 올랐지요)

 

 밀레이는 이 그림에서 긴장감을 살리기 위해 여인의 드레스를 남자의 검은 군복에 대비되는 흰색으로 선택하였습니다. 새틴 드레스의 광택도 그 특유의 사실주의 기법으로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였지요. 거기에 그는 모델로 유명인사를 참여시켰는데, 그 주인공은 올해 21살이 된, 찰스 디킨즈의 딸 케이트 디킨즈였습니다. (반면 남자의 모델은 무명의 남성 모델) 당시의 관례도 있고 실제로 그림을 그리는 동안 사람을 서로 이렇게 세워둘 수도 없어서 밀레이는 실물 크기의 인형 두 개를 제작해 모델들에게 인형을 안고 포즈를 취하라고 주문했답니다. ( 그래서 실제로 모델 두 사람은 아예 만난 적도 없다구요;;)

 

여튼 밀레이의 그림들은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은근 재밌는 사연들이 많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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