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3 21:16
1. 다섯 살 무렵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왔죠. 서교동에 있는 아담한 작은 주택이었습니다.
베이비붐 세대인지라 동네에는 또래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동네의 모든 또래가 친구였던 시절이었죠.
그 집은 약간 개조를 하긴 했지만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저 좁은 골목에서 어떻게 그 많던 애들이 축구랑 야구랑 다방구랑 닭싸움이랑을 했을까 싶습니다.
"어릴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엔 다정한 옛친구 나를 보며 달려오는데..." 동물원의 그 노래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떠올려지던 골목길이죠.
2. 한 골목 건너에 당시 유명한 배우가 살고 있었습니다. 달동네 드라마가 히트할 때 거기에 나온 배우였죠.
그 딸이랑 같은 유치원에 다녔습니다. 별것도 아닌데 이런 기억 하나 있으면 왠지 뿌듯합니다.
드라마 속의 달동네 아저씨 모습과는 달리 항상 양복에 라이방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습니다.
그 딸도 나중에 꽤 유명한 배우가 됐죠.
3. 지금은 없어졌지만 서교시장이라고 있었습니다. 서교동에서 성산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었는데 그 주변은 워낙 많이 변해서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지금도 지나다니다 보면 여기가 그때 어디였는지 퍼즐을 맞추는 듯 합니다.
아마도 지금 대우미래사랑이 있는 자리 같은데 그때는 시장 앞에 넓은 공터였었죠. 어렸을 때는 동네에 그런 광장같은 공터들이 꽤 많았습니다.
겨울이면 그곳이 스케이트장으로 변했습니다. 겨울이 무척이나 춥던 시절이었고 스케이트는 겨울 최고의 인기 레져 스포츠였죠.
4. 변호사였던 아빠는 서울로 온 지 5년만에 넓은 잔디밭이 있는 2층 양옥집을 샀죠.
홍대가 뜨면서 지금은 그 조용하던 주택가 골목도 출판사, 카페 거리가 됐고 그 집도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이쁜 카페가 들어왔더라면 거기 앉아서 '옛날에 여기가 우리집이었어' 하고
별거 없는 허세를 떨 수 있었을텐데 별로 멋대가리 없는 오피스 건물이 들어섰군요.
5. 80년대까지도 주거지의 가장 큰 비중은 단독주택이었습니다. 샐러리맨들도 작지만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에 살던 시절이었죠.
그리고 응팔에도 나오지만 그 단독주택 지하나 방 한칸을 세를 줘서 두가구가 한 집에 사는 경우도 꽤 많았습니다.
80년대 중 후반부터 단독주택을 다가구주택으로 바꾸는 집들이 생기기 시작했죠.
6. 지금은 서교 푸르지오 아파트가 있던 곳에는 제가 국민학교 다닐 때도 아파트가 있었습니다.
서교아파트라고 좀 허름한 아파트였죠. 당시에는 참 보기드문 아파트였습니다.
7. 지금 상수동은 국민학교때까지는 길 사이를 두고 상수동과 하수동으로 나뉘어있었죠.
하수동이라는 이름이 안좋다고 상수동으로 합쳐졌습니다. 실제로도 당시 하수동은 좀 낙후된 곳이었죠.
8. 나이가 들수록 옛날이 그리워지긴 합니다. 만화가게, 구멍가게, 골목길, 살던 집, 모든게 그립지만 그래도 역시나 가장 그리운건 사람들이죠.
엄마, 아빠 그리고 어릴적 친구들.
2015.12.13 21:22
2015.12.13 21:29
시대가 다릅니다. ㅎ 드라마 제목이 달동네였죠.
2015.12.13 21:50
2015.12.13 22:25
딸은 추상미씨겠군요 ㅎ
2015.12.13 23:07
첫 번째 사진의 어린이가 갓파쿠 님인가요?? (오, 이런 사진 좋아요. ^^)
2015.12.13 23:12
서교동에서 잠깐 있어서 그런지 그동네 느낌이 납니다.
2015.12.14 01:01
하하,, 1번 사진..
저도 저위치에서 저런포즈의 사진이 있어요...ㅋㅋ
2015.12.14 15:43
추상송웅(이런 고인의 존함을 헷갈리고 말았군요) 추상미 부녀였겠군요. 캇파쿠님 나이가 짐작이 됩니다.
저도 큰집이 서교동 단독주택이라(큰어머님 말씀이 80년대 중순쯤 그 집 사서 들어오실 때만 해도 변두리 주택가라 기반시설은 적어도 조용한 분위기가 좋아서 선택했다고 하셨는데) 어렸을 때부터 명절이면 올라가서 사촌들과 골목을 쏘다니곤 했지요. 그러다가 스무살 넘어서 인근에 거주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목도한 홍대의 변화는 그 동네를 벗어난 지금도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어서 갈 때마다 입이 떡 벌어집디다. 심지어 제 큰집은 지금 말씀하신대로 카페가 되었죠.
2015.12.1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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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달동네드라마하면 서울의 달이 자동으로 떠올라요. 누군지 궁금하네요. ㅎㅎ
저희 부모님은 아직도 단독주택에서 몇십년째 사시는 데 요새는 주변에 다 집을 빌라같은걸로 재건축하는 추세더라구요. 그닥 좋아하지도 않았던 고향동네지만 갈때마다 변해있으니 아쉽긴 해요. 이제 단독주택은 진짜 고급주택지만 남아있을 추세인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