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과 나, 그 해 1997

2015.10.22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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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은 천하삼분지계가 이루어진 전란의 시대처럼 호와 불호를 등에 짊어지고 제각각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수련회에서 서태지의 댄스 음악에 맞춰 막춤을 추던 애들이 그 모양 그대로 자라, 쉬는 시간, 그 오줌 싸기도 빠듯한 막간에 교실 뒤편에 모여서 HOT의 안무를 연습했고, 한 쪽에선 젝스키스를 따라한다며 뇌혈관 건강한 청소년들이 뒷목을 잡은 채 벌목장 나무처럼 쓰러져갔죠. 그 와중에 남학교란 결국 군입대를 4~5년 앞 둔 수컷들의 수용소라, S.E.S는 학처럼 고고히 서서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학급 내에 사랑과 평화의 씨앗을 뿌려대고 있었는데, 간혹 잡지에서 찢어 낸 유진의 사진에 입을 맞추는 변태가 등장하면, 문희준이고 장순원이고 모두가 일심동체, 응진과 처단을 서슴치 않았으니 과연 걸그룹은 일찌기 그 1세대부터 이 버석한 대지에 사랑과 평화의 밀알이었습니다.


한편, 교실 한 구석엔 사파의 무공을 연마하듯 은밀하게 준동하는 세력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귀에 꽂은 이어폰에선 날이 선 전기기타와, 찢어지는 보컬의 샤우팅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춤추는 아이들은 이교도의 선율을 따르는 이 무리를 이르러 환자들이라고 불렀고, 환자들은 스스로를 일찌기 선지자의 별을 본 동방박사로 여겼습니다. 너희가 금속을 아느냐? 그로잉은 복음 같았고, 샤우팅은 은총처럼 바다를 갈랐으니, 그들이 받들어 모신 신의 영광을 찬미하는 음악의 이름은 헤비-메탈 이라 전해집니다. 들리느냐? 내 기타 울부짖는 소리가? 들었느냐? 옆집 철수 드럼 또 찢어먹었다. 올려라 엠프 위에 발바닥, 보아라 실신하는 여고생의 빠심을. 그러나 오호, 통재라. 오늘 날 좌익이 까먹을 도시락도 부실한 주제에 서로 척을 두고 대립하고 자빠졌듯, 당시 한 줌도 되지 않던 락키드 사이에도 취향과 선호의 선은 분명 하였는데,


한 학급 오십 명의 아이들 중 락키드가 다섯이 있다고 치면, 그 중에 둘은 메탈리카를 들었고, 꼭 한 명씩은 메가데쓰를 들고 다니며 괜시리 메탈리카를 비웃는가 하면, 우리 모두 프레디 형님의 간지나는 가슴털 아래 모여 퀸만은 절대로 까지 않았으며, 그 와중에도 내색하지 않지만 은밀히 쥬다스 프리스트를 섬기는 자가 있었습니다. 재미난 점은 겉으론 HOT나 젝스키스로 나뉘어진 급우들이 실상 그래봤자 사내놈들인 아이돌 그룹의 대립 구도에 전혀 개의치 않았던 것에 반해, 이 한 줌도 안 되는 것들은 각자 자신들이 주군으로 삼은 락스타를 숭배하다 못 해 종종 서로를 낫 놓고도 낫이 뭔지 모르는 놈 취급을 하며 날 선 대립을 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 우스꽝스러운 락키드들도 국내 락씬에 대한 얘기만 나왔다 하면, 오로지 한 밴드의 이름 하에 긴장과 대립의 끈을 내려놓은 채 일시적인 상호 불가침 상태에 놓였는데, 그 밴드의 이름이 바로 "N.EX.T" 였던 것입니다. 서태지가 3집 엘범에서 크래쉬의 안응찬을 데리고 나와 전기 기타와 드럼 비트에 맞춰 춤을 췄을 때, 공개방송을 찾은 숱한 여고생들은 인생개시 십여 년만에 처음으로 도망노비처럼 머리를 풀고 순결한 고개를 꺾어댔지만, 텔레비젼으로 이를 지켜보던 당대의 락키드들 사이에는 기실, 그가 너무 잘나간다는 이유만으로 모종의 반감의 기류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계란도 없이 라면만 먹고, 비닐 하우스에서 언 손 불어가며 지켜 온 락씬인데, 저 전향한 타이지 자식이 이제 와서 락에다 감히 율동을 해? 물론, 전날 김완선 선생이 선보이신 현대음률이 저 신중현 선생과, 손무현 옹의 작품이었다는 점, 그들이 인정하는 유일한 오버그라운드 밴드 "넥스트" 도 비닐 하우스에서 연습하는 밴드는 아니었다는 점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유치한 발상이었습니다.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중학생이었습니다.


당시 락키드들이 "넥스트" 를 유일한 오버그라운드 락밴드로 인정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라디오에 노래 한 자락이라도 소개 되는 락밴드로 "넥스트" 가 유일했기 때문입니다. 김종서 옹께서 나름 대중 사이에 서서 목에 핏대 세워가며 분투하고 있었으나, 일단 허세로 시작하여 후까시로 맺음해야 직성이 풀리는 중딩 락키드들에게 그의 대중친화적인 음악은 견딜 수 없을 만치 낯간지러웠고, 무대를 방방 뛰어 다니던 삼십대 초반의 승환 옹께선 마이크 스탠드 휘두르는 폼이 마냥 멋진 형, 델리 스파이스와 같은 신예가 이제 막 음반을 들고 나오긴 했으나, 모던 락에 만세 삼창을 부르기에 그 사운드는 너무나 말랑했던 것입니다. 일단 쳤다 하면 기타는 긁히고, 일단 두들겼다 하면 공연 한 번에 드럼 하나는 기어이 폐기해야 하는. 그것이 바로 C코드가 뭔지도 모르지만 에어기타 하나로 월드 투어를 성공리에 마친, 중딩 락키드들이 생각하는 락 밴드요, 롹! 스피릿이 아니었겠습니까? 


엄지 손가락을 가리던 교복 소매가 손목시계가 드러날 정도로 짧아질 때쯤, 자라는 것이 우리 키만은 아니어서 서른을 맞은 당시 신해철에게도 음악가로서 또 한 번의 성장통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 급우들이 저를 가리키며 "이상한 노래 듣는 애" 라며 비웃는 대신, "쟤가 듣는 노래는 좀 이상해" 라고 이해의 문을 열어주기 시작했을 무렵, 돌연 신해철은 밴드 "넥스트" 의 네번 째 정규 음반이자, 에니메이션 "라젠카" 의 오리지널 스코어 음반이기도 했던 "라젠카, 스페이스 락 오페라" 의 발표와 동시에 팀의 해산을 선언합니다. 


락밴드이면서 신승훈, 김건모의 뒤를 이어 음반 당 수십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던 흥행 "그룹싸운드" 의 해산은 팬 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충격이었지요. 락이라는 장르의 카테고리 안에서 넥스트는 하나의 락밴드일 뿐이었지만, 오버그라운드에서 소위 "먹힐만한" 밴드라는 점에서는 그 위상을 대신 할 대체재가 전무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저는 여전히 생각합니다.) 해산의 변을 보도하던 기자들이 당시 신해철의 말, 앞 뒤를 잘라먹은 채 "...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라는 단편만을 표제로 뽑아 대중의 미움을 사게 하기도 했는데, 당시 락키드들은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는 신해철의 발언을 중의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말 그대로 대중가수로서 밴드라는 형식 하에 흥행이나, 성과 면에서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대중가수 이전에 음악가로서 신해철 개인이 기타와 베이스, 드럼에 키보드로 구성되는 체제 하에선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팀 내에 이렇다 할 불화도 없는 상황에서 잘 나가던 밴드를 해산하기로 한 것은 팬들의 입장에서 당혹스러운 것만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밴드를 해산한다고 해서 딱히 그가 은퇴를 선언하며 마이크를 놓겠다는 것도 아니었기에, 팬들은 "또 뭔 짓을 하려고? 라는 반응을 보이며, 이렇다 할 동요를 보이지 않았고, 신해철은 그런 팬들을 뒤로 한 채 홀랑 영국 유학길에 오릅니다. 이를테면, 1997년의 그는 대중을 상대하는 면에서 비둘기파라기 보다는 매파. 다시 말 해 프레디 머큐리라기 보다는 믹 재거에 가까웠던 것입니다.

80년대, 대학가요제로 뚜라미 같은 학내 밴드들이 대중에게 존재를 알리고, 활주로와 같은 밴드들이 공중파에 "그룹 싸운드"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으며(2008년 은상 랄라스윗 만세), 산울림과 같은 전설적인 밴드가 독보적인 입지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한국 대중음악 판의 퍼포먼스와 사운드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것은, 실상 외국물 먹은 버클리 1세대들의 귀국과 맞물려 있는 상황. 그마저도 레코딩 환경이 따라 주질 않아, 음악 좀 제대로 하고 싶은 가수들이 너도 나도 짐을 싸 영국으로, 미국으로 비행기를 타기 시작한 것이 90년대 중반의 일이었지요. 


훗날 신해철과 "모노크롬" 을 함께 한 프로듀서 크리스 샹그리디는 1995년 넥스트의 3집 음반을 작업하며, 신해철에게 언젠가 자신과 함께 본격적으로 일을 벌여 볼 것을 제안하는데, 제자에 대한 스승의 칭찬쯤으로 흘려 들었던 신해철은 4집 음반의 작업이 끝나가는 시점에 다시 한 번 러브콜을 받게 되자 그만 솔깃. 1997년 12월 31일 마지막 콘서트를 끝으로 정말로 팀을 해산해 버리고 그를 따라 영국행 비행기에 오릅니다. 


97년 발매 된 4집 음반인 "라젠카, 스페이스 락 오페라" 는 에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 의 오리지널 스코어 음반이기도 했습니다. 에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 는 애초에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의 우주세기 건담과 같이 어른들을 위한 에니메이션으로 기획이 되었으나, 재정 지원을 나선 완구사가 거대 로봇을, 그것도 변신하는 로봇을 세 대나 넣을 것을 주문, 거기에 방영을 약속한 MBC가 만화영화라는 이유로 편성을 오후 5시로 잡아 버리는 바람에 작품이 본래의 방향을 완전히 잃고 산으로 가벼리며 결국 졸작의 수준을 밟게 되었습니다. 요시유키 감독의 건담이 "해우의 우주" 라는 타이틀을 달고 극장에서 흥행에 성공하며 회생의 기회를 얻게 된 것과는 달리, 라젠카는 한국 에니메이션 사상 가장 화려한 오리지널 스코어 음반만을 남기고 그대로 침몰해 버렸는데요. 당시 신해철이 라젠카의 스코어 제작을 수락한 이유는 "주인공이 싸가지 없는 것이 마음에 들어서" 였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한편, 동년 2월에 이미 넥스트는 동계유니버시아드에 쓰인 "아리랑"을 수록한 싱글 엘범을 발매하기도 했습니다. 신해철은 라디오에서 자주, 여러 곡을 한꺼번에 수록하여 타이틀 곡 외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채 흘러가 버리는 엘범 형식의 음반 발매를 지적하며, 해외 시장과 같은 싱글 발매의 보편화를 역설하곤 했는데, 입 밖으로 꺼내면 일단 저지르는 성질머리를 버리지 못 하고 정말로 싱글 음반을 제작, 발매해 버린 것입니다. 싱글에 수록 된 "Here I stand for you" 는 드림씨어터의 "Another day" 와 함께 노래방에서 여자를 앞에 두고 후까시를 잡고 싶어 안달이 난 남자애들의 성대를 기어이 찢어 놓는 레파토리로 자리매김을 했을 만큼 대중적인 인기도 함께 누렸습니다. 


다만, 명동 시대를 풍미한 도넛판이 뭔지 모르는 세대가, 싱글에 대한 인지도 제대로 잡혀있지 않은 상태에서 판을 샀더니 노래라곤 달랑 두곡 밖에 없더라며 화를 내는 경우가 왕왕 발생, 거기에 노래라고 달랑 5곡 들어있는 음반을 애초 그 가격을 맥시멈 5천원 선으로 생각한 넥스트의 의도와는 달리, 업자들이 저희들 마음대로 7천원대를 받아 버리며,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음반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제 음반 보다는 음원으로 유통의 판도가 뒤바뀌며 싱글이 보편화 되었으니, 이정현이 부채를 들고 나와 테크노 바람을 불러 오기 한참 전에 윤상과 함께 "노땐스"를 발매했지만 큰 반향을 불러 오지는 못했던 경우와 함께, 앞서간 이유로 갈채를 받지 못한 신해철 행보의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죠. 하여간 일생 재물복 없는 인간 같으니... 


1991년 결성. 이듬해에 활동을 시작하여 1997년까지 넥스트가 네장의 정규 음반과 싱글 음반, 라이브 음반 등을 발표하며 활동한 시기는 고작 6년. 안테나의 가장 유희열이 7년 만에 신보를 발표하는 것에 비견해 볼 때, 그 에너지는 폭발적이었다는 상투적 표현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당시 무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광경. 즉, 양복을 입고 발라드를 부르거나, 비닐 옷을 입고 춤을 추는 대신 군복 풍의 무대의상을 입고 나와 손짓 하나로 수많은 소녀들을 자지러지게 했던 신해철에겐 "교주" 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이 별명은 그가 훗날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스테이션" 에서 "마왕" 이라는 별명을 얻기 전까지 유효했지요. 이 교주라는 별명은 신해철이 이정현이 진행했던 라디오에 출연. 청취자와 했던 전화연결 당시, 청취자들이 "신해철 오빠" 혹은, "신해철 씨" 라고 칭하는 대신 "교주님께서..." 라고 부르는 바람에 그 별칭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97년. 어쨌든 전설의 락밴드는 일단 해산을 합니다. 이후 영국으로 건너 간 신해철은 영국의 높은 물가의 벽에 좌절, 국경일에나 아이스크림을 겨우 사먹는 생고생을 사서하고 있었고. 남은 멤버들, 흔히 넥스트 3기라 칭해지는 시기의 멤버들. 기타의 김세황, 베이스의 김영석, 드럼의 이수용은 랩퍼 김진표와 함께 "노바소닉"을 결성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죠. 한편, 그 해산의 시기는 기묘하게도 한국 음반시장에 드리운 암운의 시작과 일치했습니다. PC통신의 대대적인 보급에 앞서간 친구들이 암암리에 MP3 파일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굳이 MP3 때문만은 아니어도 사람들은 이제 예전처럼 음반을 사들이지 않았어요. 대입시험이 인생 최대의 고난인줄로만 알았던 활황의 끝. 결코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던 것들이 처참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던 그해의 겨울. 12월 3일. 국제통화기금이 마침내 대한민국 정부에 구제금융 지원을 승인함과 함께 1997년 한해는 무참하게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


이 글은 작년 이맘때, 사경을 헤매고 있던 음악가 신해철 님의 쾌유를 바라며 모처에 썼던 글을 옮겨 온 것입니다.


글의 분위기로 짐작할 수 있듯, 그때만 해도 어떻게든 일어나 (약간은 후유증이 남은 얼굴로) 


"나 진짜 죽을 뻔 했잖어." 라며 쇼프로 출연하여 너스래를 떨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지요.


이 글은 그의 연대기를 따라 작성한 8편의 글 중, 첫 째로, 글은 7번 째 글이 완성되기 직전에 멈추게 됩니다.


저와 제 친구는 아산 병원에 마련 된 그의 영정을 보며 눈물 흘리는 대신 쌍욕을 했습니다.


이 양반이? 만들라는 판은 안 만들고?? 형, 이게 뭐 하는 짓이요?


97년, 그는 영국으로 갔고, 넥스트라는 이름과 작별한 우리는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해철이 형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형, 영국에 믹싱하러 갔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퀸의 노래를 들으며, 너바나의 노래를 들으며, 누가 머큐리 옹이, 커베인 성의 죽음을 생각 할까요?


락커는 죽지 않습니다. 락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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