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월 16일 오전 9시 7분께 서울 지하철 3호선 양재역에서 매봉역으로 향하던 열차가 고장납니다. 객차에 타고 있던 일부 승객은 비상코크를 열고 선로에 뛰어내려 매봉역으로 이동했다고 서울 매트로는 전했다고 하는군요. 


이 기사를 트윗 하면서 787_ARIAKE란 분이 이렇게 코멘트 합니다. 


787-ARIAKE ‏@Ltdexp_Ariake  Mar 15 (* 각주: 사건은 16일날 났는데 트윗 작성일이 15일인 건 왜인지 모르겠네요.)

정말 부탁입니다. 지하철이 잠깐 멈췄다고 해서 임의로 비상콕크 꺾고 하차하지 마세요. 반드시 승무원 안내를 따라주세요.

승무원은 불이 나고 폭탄이 터져도 절대 먼저 도망가지 않습니다. 승무원들을 믿고 지시가 있을때까지 기다려주세요.



787-ARIAKE ‏@Ltdexp_Ariake  Mar 15 

3호선 양재∼매봉 단전으로 운행중단…일부 승객 선로로 탈출 (출처 : 연합뉴스 | 네이버 뉴스) http://me2.do/56LnNejC 

이젠 그냥 잠깐 섰다 싶음 꺾냐...


이 코멘트에 대해서 다른 트위터 이용자들이 이렇게 답합니다. 

Aperture Sciene KOR ‏@ApertureENG  Mar 16 

@Ltdexp_Ariake 대구지하철,세월호 사고땐

승무원들이 죄다 먼저도망갔죠

대구지하철땐 마스터키까지 뽑아서 도망갔죠.


여기에 대해 787_ARIAKE란 분은 다시 이렇게 답합니다. 


787-ARIAKE ‏@Ltdexp_Ariake  13h13 hours ago 

최소한 우리는 대구지하철 사고를 봤고, 세월호 사고를 봤고, 문곡역 열차 충돌사고를 봤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우리들이 더 잘 안다. (각주: 이 분은 신분당선에 CSO로 근무한다고 스스로를 소개하셨네요)



 787-ARIAKE ‏@Ltdexp_Ariake  13h13 hours ago 

아직도 13년 전의 그 주먹구구식 대응교육을 받은 시절의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의 심정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787-ARIAKE ‏@Ltdexp_Ariake  13h13 hours ago 

그 대구지하철 사고때문에 철도 기관사가 면허제도로 바뀌고 철저하게 대응 교육과 의식을 가진 기관사들이 점점 늘어났고 세월호 사고 보면서 "나는 저러지 않아야겠다" 라고 몸에 완전히 익힌 승무원들이 이제 한창 일하고 있는데


787_ARIAKE님 말에는 들을 만한 점이 있습니다. 787_ARIAKE님 트윗에 대한 시바우치님의 코멘트를 잠깐 보죠. 


 번역일 받는 시바우치 ‏@sibauchi  Mar 16 

세월호 직후에 온라인에서도 회사에서도 "역시 사고가 일어나면 안전수칙 따위 따르지 말고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런 소리가 나오는 배경을 알면서도 곧바로 공포심을 느꼈던 것은 사회질서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약속들을 붕괴시키기 때문이다.


 번역일 받는 시바우치 ‏@sibauchi  Mar 16 

긴급 상황에 각자도생 한답시고 돌출행동을 하면 더 큰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 진짜 두려운 것은, 그런 돌출행동을 시작한 극소수만 살고 나머지는 그 혼란으로 인해 죽게 되더라도 만약 그 생존하는 게 자기라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보편화되는 것이다.


 번역일 받는 시바우치 ‏@sibauchi  Mar 16 

제대로 된 프로토콜이 지켜진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으나 세월호는 사고 원인부터 안전수칙을 무시한 것 투성이였고 사후의 정부 대처도 이견이나 불만을 묵살하려는 데에만 치중해 정부를 넘어 치명적인 사회적 PTSD와 사회질서에 대한 균열을 야기했다.


번역일 받는 시바우치 ‏@sibauchi  Mar 16 

사실 다른 문제에도 이 정부는 불만이나 다른 목소리를 보듬거나 타협할 생각은 없이 겁박하고 입 닥치게 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하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것 같은데 억압된 것들은 반드시 어떻게든 튀어나온다. 사회에도 정권에도 야권에도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2. 3월 9일 포스텍 (포항공대) 홍모교수가 "단원고 학생들이 사고를 당한 이유는 생각하는 습관이 없어 선박 관리자의 지시를 아무런 생각없이 믿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고 3월 16일 세계일보는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걸 2차가해라고 합니다. 규범에 따라 행동한 희생자를 생각없다고 평가하여 2차 가해를 한 것이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저는 선박 사고시 행동규범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선장이나 인명구조요원의 지시에 따라 질서를 유지하면서 외부로 탈출한다고 국민안전처 재난대비 국민행동요령에는 적혀있다고 합니다. 사회가 우리에게 일차적으로 가르치는 규범은 이러합니다. 


그러면 선장이나 인명구조요원의 지시를 기다리던 학생들은 어떻게 되었나? 


차가운 바다에 빠져 숨졌습니다. 선장은 먼저 도망갔고, 해경은 승객실내에 진입하지고, 승객들에게 나오라고 문자를 보내지도 않았습니다. 


3. 그러면 선장이나 인명구조요원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던 학생들은 어떻게 되었나? 


세월호 생존자 중에서는 금속노조 경기지부 경기지역지회 신흥분회장인 장동원씨의 딸이 있습니다. 이 소녀는 사고 날 8시 50분쯤 "아빠 이상해, 배가 막 흔들리고 기울더니 배에 컨테이너가 떠다녀"라고 아버지에게 전화했고, 아버지는 "친구들과 지체없이 갑판으로 올라가라"라고 답합니다.


그럼 이 학생은 한국사회가 원하는 대로 행동한 것일까요? 당시에 이 기사는 경향신문 뿐 아니라 여러곳에 개제되었는데, 저는 그때 댓글을 보고 경악했습니다. 나같으면 다른 사람들도 구조했을 것이다 라는 2차 가해였죠. 이 경우에는 살아남은 것도 죄가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 사는 데 바빠 남을 구하지 못했으니까요. 문창극 2014년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 역시 "세월호에 내가 탔으면 수십명은 구조했다"라고 말을 합니다 (2014년 6월 20일). 이것 또한 2차 가해인데 사람들은 그걸 인지하지 못하더군요. 생존자 중에서는 자판기에 깔린 사람들을 보고도 물이 차올라 나왔어야 했던 사람들도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사람들 기억에는 내가 다시 그 때로 돌아갈 수 있었다면 ... 이라는 가책이 평생동안 남아있을텐데, 그걸 다시 헤집으면서 "나같으면 남을 구했다"라고 잘난 척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4. 그러면 세월호 사고 중 남을 구한 사람은 어떻게 되었나? 


세월호 침몰 순간까지 학생 10여명을 구조한 것으로 알려진 김동수 (50세)씨. 이 분은 사고 이후 1년동안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정신적 트라우마로 자살을 시도합니다. 아래는 기사 발췌.


그는 “국가는 생색내기만 하고 있다. 국가는 말 뿐이다. 집을 빌릴 수 있는 대출금도 준다고 했지만 진전된 게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에 대한 김 씨의 불신은 계속됐다. 그는 “해경이 선장이 죄인인데 어떻게 생각하냐 묻길래 모두 죄인이라고 했더니 안 좋은 표정으로 보더라”라며 “국회도 가고 편지도 써봤지만 돌아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생존자들이 다 보상 받은 줄, 고통에서 빠져나온 줄 아는 데 절대 아니다. 학생들 볼 때 마다, 창문을 볼 때 마다 아이들이 생각나는 데 어떻게 잊으라고 할 수 있느냐”며 김 씨는 고개를 떨궜다....중략. 

사고 때 생계수단인 화물차가 배와 함께 침몰했지만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5. 일련의 사건을 지켜봤을 때 저는 한국사회가 우리에게 원하는 게 뭔지 대단히 혼란스럽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한국사회는 정부가 내리는 규범에 따르는 모범시민을 원하는 것인가? 

규범을 지키다가도 제때 알아서 자기가 생존하는 길로 규범을 무시해야한단 말인가? 

생존의 길을 모색하더라도 영웅은 되어야 한단 말인가? 

영웅이 되더라도 심리적 트라우마는 겪지 말고, 보상 받지 못해도 보상 받은 척 살아야 한단 말인가? 


6. 포스텍 홍교수는 학교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고 하네요


홍 교수는 “논란에 대하여 몇 자 적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에서 “나의 발언에 대해 사과를 요구 받았습니다. 학생들이 상처를 받았다니 유감이고 미안합니다”라면서도 “나로서는 납득 안 되는 상처지만 학생들이 상처라하니 그려려니 생각하겠습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에도 똑같은 얘기를 했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한 학생이 없었습니다. 왜 작년에 학생들이 상처를 안 받았는지 또는 받고도 참았는지 궁금합니다”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저는 홍교수가 썼다는 글을 읽으면서, 한국 사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건 "홍교수 같이 굴어라"인가? 란 생각도 합니다. 타인의 상처에 대한 몰이해와 무공감, 작년 학생들은 왜 상처를 안받았는지 자기 궁금증을 드러내는 무신경함. 기자의 연락에 답하지 않는 불통의 자세. 그런 것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처세인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포스텍에서 "대학생활과 미래설계"라는 과목을 가르치는 홍교수는, 어쩌면 포스텍 학생들에게 "한국사회에서는 이렇게 살아라"라고 행동으로 가르쳐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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