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2023) 보고 왔습니다

2023.05.31 16:35

Sonny 조회 수: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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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어체로 씁니다. 양해바랍니다.


[인어공주] (2023)는 혹독한 캐스팅 논란을 겪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 영화 내적인 문제는 아니다. 아무리 좋은 영화더라도 정치적 흐름이 맞지 않는 때에 개봉하면 곤혹을 치르곤 한다. 수많은 안티들은 [인어공주] (1989) 원작이 대단히 특별한 영화이고 전 세계에 큰 의미를 갖고 있어서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것처럼 자기최면을 걸지만 이 인종차별의 사례는 사실 반복되어온 역사이다. [고스트 버스터즈] (2016)가 개봉했을 때도 사람들은 흑인배우였던 레슬리 존즈에게 원작을 망쳤다는 비난을 쏟아부으며 온라인 이지메를 감행했다. 레슬리 존즈의 캐릭터는 심지어 [고스트 버스터즈] (1984) 원작에서 나오는 윈스턴이라는 흑인 캐릭터를 그대로 계승했는데도 말이다. 단일민족 한국인들은 본인들의 악플러쉬가 심미적 성전이라고들 착각한다. 할리 베일리가 원작 애니메이션의 기억을 모두에게서 지워버리는 마법을 쓴 것도 아닌데도 그렇다.

이제 고상하신 얼평전문가들을 치워놓고 영화를 말할 차례다. 사회적 홍역을 겪은 [인어공주](2023)를 변호하고 싶으나 이 영화의 안이한 텍스트가 영화 자체를 온전히 즐기기 어렵게 만든다. [인어공주](2023)은 [인어공주](1989)의 실사버전 리메이크이다. 때로 오랜 시간 후의 리메이크작은 원작의 명성이 아니라 구시대적인 숙제조자도 유산으로 물려받는다. [인어공주](1989)은 애니메이션 원작으로서 로맨스 장르에 치중한 나머지 이 영화가 두 세계에 걸쳐진 정체성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적당히 뭉개고 넘어갔었다. 인어와 인간이라는 이종, 바다와 육지라는 두 세계, 이 두 세계를 횡단하면서 발생하는 정체성의 변화는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수많은 계급상승과 계급하락의 이야기인 동시에 타인에게 온전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원작 애니메이션을 오독하는 순간 이 텍스트는 '남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여자가 예쁜 다리 성형수술을 받는 이야기"의 텍스트로 활용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시간적으로 속편인 [인어공주](2023)은 이 문제를 과연 해결했는가.

영화의 시작은 애니메이션보다 훨씬 더 과감하다. 어두운 바다의 표면이 보이고 선원들은 인어를 사냥하자면서 바다에 작살을 던지고 에릭 왕자는 선원들을 말린다. 애니메이션의 인트로가 잡혀있던 물고기가 튀어올라서 바닷속으로 도망가는 장면이었다면 [인어공주](2023)은 본격적으로 두 세계의 충돌과 어느 한 세계의 일방적인 폭력을 이야기한다. 에리얼이 바다 바깥 세상으로 나간다는 것은 이 선원들처럼 인어에게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존재들로 가득한 세계로 나간다는 의미이다.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그저 익살스럽게, 인간중심적으로 이 인간세계와 해저세계가 병렬되어있었다면 이번 실사판은 두 세계의 격차와 정치적 갈등의 원인 소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두 세계는 백인인 왕자의 세계와 흑인인 인어의 세계, 남자의 세계와 여자의 세계이며 뭍의 세계에는 그 인어의 세계에 작살을 던지는 백인 남자들이 존재한다. [인어공주](2023)는 원작에서 서브텍스트로 깔려있던 인종과 성별의 정체성이 어떤 갈등으로 빚어지고 있는지 더 직접적으로 비유한다.

실사판 영화에서 에리얼이 맨 처음 줍는 육지의 물건은 망원경이다. 이 망원경을 주웠을 때 망원경의 렌즈 표면에는 에리얼의 얼굴이 반사되어 보인다.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물체, 그리고 그 물체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행위를 통해 영화는 에리얼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인식하고 다른 세계를 향한 탐구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명시한다. 이후 상어에 쫓길 때도 에리얼은 거울 속의 자신을 확인하고, 상어가 자신을 공격하도록 유인할 때도 거울 속의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에게 폭력이 덮쳐올 때조차 자신을 바로 보는 것, 그리고 자신의 허상을 공격하도록 해서 상대가 스스로 나가 떨어지게 하는 이런 모습들에서 과연 정치적 함의를 읽지 않을 수 있을까. [인어공주](2023)는 초반부에 에리얼과 그 자신의 세계를 향하는 "폭력"과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에리얼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왕자는 어떤 사람인가. 애니메이션에서는 아무런 인간성 없이 그저 결혼을 외치는 꼭두각시 같은 존재였다. (그는 우르술라의 마법에 걸리지 않았을 때도 영혼이 없는 인간 같다) 그러나 이번 실사판에서 왕자는 다른 세계를 가보고 싶어하는 탐구심 강한 존재로 그려진다. 에리얼과 에릭 왕자는 둘 다 다른 세계를 궁금해하는 탐험가들이다. 원작에서는 결혼이라는 과제에만 급급하던 캐릭터를 실사판에서는 에리얼의 대칭적 존재로 그려놓았다. 에릭과 에리얼의 만남은 공주와 왕자의 결혼이라는 공식이 아니라 다른 세계를 함께 찾아나가고 싶은 동지를 찾아낸 결과로 그려진다. 그래서 에리얼이 왕자를 궁금해하고 뭍으로 올라가는 게 훨씬 더 자연스럽고 주체적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에리얼이 왕자의 동상을 아버지에게 파괴당하고 그 파편을 잡고 슬퍼할 때도 애니메이션에서는 얼굴 조각이었지만 이번 실사판에서는 손으로 바뀌었다. 동행자로서 맞잡을 수 있는 "손"을 붙잡고 다른 세계를 열망한다는 점에서 실사판 영화에서의 에리얼은 성적 호기심보다는 꿈의 동료를 찾는 뉘앙스가 훨씬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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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의 설정 중 눈여겨볼 것은 왕자의 어머니가 흑인 왕이라는 것이다. 에릭 왕자는 입양아라는 설정이다. 이렇게 해서 화면에는 흑인과 백인이 한 가족으로 구성되어있는, 인종차별의 갈등이 해소된 유토피아가 그려진다. 이 급진적인 설정은 각 인종이 평화롭게 어울리는 세계를 표면적으로 그려내지만 에리얼이 육지세계를 탐험하는 과정에서의 모든 위험과 갈등마저 없애버린다. 영화의 오프닝 씬에서는 이 육지세계를 (인어공주에게) 위험이 내표된 세계로 그려냈었다. 즉 에리얼은 단순한 이방인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순간 약자로서의 외지인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저 친절하고 모두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세계를 그리면서 김빠진 탄산음료같은 감흥만을 준다.

이것은 재미의 측면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기만적인 연출이다. 에리얼의 아버지는 에리얼에게 육지 세계는 위험하다고 분명히 경고를 했고, 그 장면은 영화의 첫번째 인어사냥 장면과 후에 나오는 난파선의 산호초 파괴 언급 장면으로 분명히 확인된다. 실사판 영화에서는 새로운 세계가 반드시 평화롭거나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주지했다. 그리고 에리얼은 흑인배우가 연기를 한다. 이렇게 정치적 긴장이 눈에 분명히 들어오는 설정을 취하면서도 정작 육지는 그저 연애만 하면 되는 공간으로 그리면서 영화는 정치적 갈등을 은폐한다. 세계의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안락한 거짓말만 취한다는 점에서 육지세계의 이야기 진행은 에리얼의 탐험과 정치적 입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묘사이다. 하물며 [블랙팬서]와 [겟아웃]이 이미 나온 이후의 시점에서 이렇게 영화를 진행하는 것은 단순한 보수성이 아니라 백인편의적인 서사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지금 에리얼은 어떤 세계를 탐험하고 있는가.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못한 채로, 남성의 세계이자 백인의 세계이자 언어를 가진 자들의 세계이자 걷는 것에 익숙한 자들의 세계를 탐험하는 중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에리얼이 진입한 육지세계는 그에게 무수한 고난과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인간세계의 폭력과 무관심은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일이며 우리는 그 자연적인 실패를 당연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실사판 영화의 제일 큰 무기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서브텍스트에 불과했던 이 갈등들이, 사람이 얼굴과 몸으로 연기하며 최대한 유물론적인 세계를 경험한다는 점에서 현실세계에 밀접한 리얼리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인어공주](2023)은 이 장점마저 포기하며 현실세계의 못나고 추악한 부분을 모두 도려내버린다. 그래서 다른 세계를 경험하면서도 에리얼이 겪는 고난은 해저세계의 동족인 우르술라가 사기를 친 것 말고는 아무 고통도 겪지 않는다. 이 가짜세계의 가짜평화가 고난을 무릅쓴 에리얼에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애초에 그는 안식을 찾아 자신의 세계를 떠난 게 아닌데 말이다.

에리얼이 육지에 올라온 후 남는 것은 결국 로맨스게임뿐이다. 그래서 영화는 애니메이션이 저질렀던 프린세스 드림의 구시대적 한계를 고스란히 재현한다. 오로지 남자의 환심을 사고 키스까지 해야 모든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는 이 스토리라인에서 에리얼의 피부와 진취적인 태도는 아무 영향력도 미치지 않는다. 이후 영화는 원작을 재현하느라 정신이 없다. 에리얼은 육지에서의 자유를 만끽할 뿐 별다른 모험을 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영향 아래에서 유폐된 채로 부르던 Part of Your World는 금새 무색해진다. 영화는 에리얼이 탐험하는 육지 세계가 어떤 곳이며 그가 어떤 갈등을 겪는지 모든 가능성을 다 감추기만 한다. 영화가 주인공을 과잉보호하는 이런 영화에서 주인공의 어떤 내면의 갈등과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우습게도 영화 속 모든 갈등은 전부다 해저세계에서 동종에 속하는 우르술라와의 싸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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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이번 영화에서 우르술라는 기능적인 캐릭터에 머무른다. 멜리사 맥카시가 연기한 우르술라의 박력은 굉장하나, 텍스트 상에서 그는 마녀라는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는데만 그친다. 애초에 원작에 발이 묶일 수 밖에 없는 게 디즈니 실사영화의 숙명이라고는 하나 우르술라가 거대화된 이후 부러진 뱃머리에 찔려 맥없이 퇴장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이 캐릭터의 성격과 자기주장이 그저 에리얼을 괴롭히는데에만 소모되었다는 인상을 떨칠 수가 없다. 그가 트라이튼에게 가지고 있는 분노와 바깥세계에 대한 안내자로서 새롭게 그려낼 이야기들이 따로 있지 않았을까. 심지어 그는 변신을 해서 직접 육지로 올라가기까지 한다. 이 부분에서 우르술라가 육지세계에 가진 자신만의 견해와, 아리엘을 육지세계로 올려보내는 입장 같은 것이 분명히 있었을텐데 말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두 세계를 왕래하는 유일한 중간자적 캐릭터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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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 올라온 이후 그들은 한없이 데이트를 즐길 뿐 타인이라는 다른 세계를 정확히 들여다보지도 못한 채로 영화가 걸어놓은 사랑의 마법에 빠져서 허우적대기만 한다. 이 영화의 엔딩장면에서 아버지 트라이튼이 에리얼을 용서하고 보내주는 장면은 애니메이션과 다른 감동이 있지만 그 역시도 결국은 원작처럼 대답을 흘려보낸다. 만약 다른 세계로 탐험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인어는 자신의 꼬리를 버리고 인간의 세계로 들어가는데 인간은 인어의 세계로 가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인어공주](2023)는 결국 여성이 남성의 세계에, 야생이 문명의 세계에, 장애인이 비장애인의 세계로 일방진입을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격차와 계급상승의 함의를 떨쳐버리지 못한다.

어떤 영화가 배우의 얼굴과 몸을 빌려 비로서 다시 나타났을 때, 그것은 단순한 연기의 리얼리티가 아니라 그 얼굴과 몸이 대변하는 한 세계를 대변한다. 그런 면에서 [인어공주](2023)은 실사화의 제일 큰 의미이자 아름다움을 스스로 포기한다. 할리 베일리를 포함한 실제 흑인 배우들의 존재는 현실의 거친 폭력을 표백해버리는 중화제 역할을 더 크게 한다. 육지와 바다, 그 두 세계가 서로 대등하고 쌍방이 화해해야하는 것처럼 그리며 트라이튼의 마법으로 해저세계의 포용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이 영화의 엔딩은 황당할 정도다. 인간이 인어를 사냥하는 그 초반부의 폭력은 무엇이 바뀌었는가. 그것은 트라이튼이 그저 너그럽게 바라보며 인어들의 수면 위 왕래를 허락하면 해결되는 문제인가. 이 영화는 결국 애니메이션의 기저에 은밀하게 깔린 정치적 문제를 아무 해결도 하지 못한 채 돌출시키기만 하는 실패작이다. 반성과 성찰 대신 친절과 온화를. 이것이야말로 메이저리티가 마이너리티를 포섭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자 자신의 폭력을 덮어버리는 정치적 수단이다. 스크린 바깥의 세계에서 할리 베일리와 이 영화가 받고 있는 언어폭력을 생각하면 이 영화는 더욱 더 기만적이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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