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토르를 봤습니다. 오히려 한국보다 북미에서 1주일 늦게 개봉했고, 매주 화요일은 영화 티켓이 반 값이라 오늘까지 기다렸죠.

 3D는 하도 별로라는 말을 들어서 일부러 2D로 감상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엔딩 타이틀에서 3D에 대한 아쉬움이 생기더라고요. 우주를 넘나드는 그 화면은 3D로 봐야 더 멋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집에 다시 와서 검색해봐도 그 엔딩 타이틀 부분만 아니면 3D 효과가 너무 별로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마 재관람을 해도 2D로 다시 볼 듯 합니다.


 토르는 전 너무 만족했습니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포문을 성공적으로 열고 토니 스타크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한 방에 각인시킨 아이언 맨은 그 성공만으로도 어벤져스 시리즈 중 최고로 뽑힐 수 있겠으나, 사실 초반 도입부 외에 절정과 결말에는 아쉬움이 있잖아요.

 설득력 있는 전개가 아니라 아이언 몽거(=오베다인)과의 트러블이 저렇게까지 치달아야 싶기도 하고..아니, 그 클라이막스의 액션씬은 그냥 밋밋하잖아요. 스파이더맨2에서의 닥터 옥토퍼스와의 전투, 엑스맨2에서의 나이트 크롤러의 백악관 액션씬과 비교해봐도, 정말 밋밋하기 그지 없고요.


 아, 이 전투씬의 밋밋함에 단점은 토르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하지만 전투의 밋밋함의 단점보단, 악역에의 설득력이 여타 어벤져스 영화 상 최고입니다! 아이언 몽거도, 윕 플래쉬도, 어보미네이션도, 미군;;도 그냥 악역 역할이니 악역으로 나올 뿐, 그에 걸맞는 이야기를 유지하지 못하잖아요.

 아이언 몽거는...회사를 먹으려던 오베디안이 꼭 그걸 뒤집어 써서 아이언맨과 일대일 해야합니까?

 윕 플래쉬는 등장에의 카리스마는 어딜가고, 새만 찾다가, 결국 자기가 이겼다는 정신 승리적인 말만 늘어놓으며 곱게 산화하죠.

 어보미네이션은...힘에의 갈망이 조금만 더 다루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고요. 아니 어보미네이션을 여기에 이야기하기엔 인크레더블 헐크는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실패작으로 간주되어서 ;ㅁ;

 

 그런데 로키는 이야기가 풍부합니다. 속임수와 계략의 신 답게, 처음엔 아스가르드를 속이는 듯 하며 얼음 거인과 손을 잡으며 형제를 몰락시키더니, 로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아스가르드로 진군한 얼음 거인은 결정적인 순간에 로키에 의해 격퇴되며, (잠시동안이지만) 로키는 아버지를 구하고, 아스가르드를 구한 존재가 됩니다. 출생에의 고민으로 자신이 자란 고향을 무너뜨리는 줄 알았더니,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더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불러 무리한 방법을 택한 것이 되어버리다니요. 

 

전투신의 밋밋함으로 이야기를 다시 돌려보면, 이건 케네스 브레너 감독의 역량 문제일 수도 있지만, 어벤져스 시리즈의 세계관에 맞추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가장 하이라이트라 불릴 수 있는 디스트로이어와의 전투는...세계를 쌈싸먹을 것 같은 포스의 디스트로이어는 미국 시골 마을 하나 제대로 부수지 못합니다. 가장 화려한 파괴가 주유소 하나 잖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벤져스 세계관에서 디스트로이어 침략 시점은 아이언 맨2 이후입니다. 아이언맨 2에서 콜슨 요원이 묠니르를 발견하니까요. 만약 디스트로이어가 동네 하나 파괴하는 정도가 아니라 범지구적인 문제를 일으키면 아이언맨이 안 나타날 수가 없거든요. 아이언맨 2 시점에서는 전 세계의 모든 분쟁을 아이언맨이 막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디스트로이어가 동네 파괴범 수준으로밖에 그려지지 못한 게 아닐까 합니다.

뭐, 동네 파괴범이라도 더 멋진 액션이 그려질 수 있었겠지만 말이죠. 소박한 디스트로이어의 위력은 그렇게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토르는 무척 귀엽더군요. 정말 신다운 위엄을 뽐내려다 이래저래 제압되는 걸 보면 그야말로 허세 작렬! 그 허세 작렬이 단지 시도로만 제압되어버리니 귀엽기 그지 없습니다. 차에 치이는 장면조차 귀엽달까 웃음이 나오게 되더라고요.  


제인과 토르가 사랑에 빠지는 것이 살짝 설득력이 떨어지긴 하지만, 머릿 속으로 이해해보면 둘이 사랑에 빠질 법도 하더군요.

토르 입장에서 보면, 집에서 쫓겨나고,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된 상황인 데다가, 무엇 하나 어떻게 해나가야 할 지 모를 타지에서 만난 제인은 먹여주고, 재워주고, 도와주며, 소소한 일상에 대한 지식까지 전해주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이쁘고!)

제인 입장에서 보면, 토르는 모성 본능이 작렬하는 존재입니다. 자기가 도와주지 않으면, 식당가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원하는 데까지 가지도 못하고, 자칫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었죠. 말 안 들을 것 같이 고집불통처럼 보이지만, 자기가 말 하면 씨익 웃으며 잘 따르고요. (심지어 잘 생겼어!) 정말 내가 아니면 안 되는 남자잖아요.

뭐. 이렇게 생각이 진행되니 나름 설득력이 생기더라고요.


어쨌든 토르. 전 대만족입니다. 경박하게 묠니르를 돌리던 액션신도 용서해줄 수 있어요. 슬픈듯한 로키 눈을 생각하면 말이죠.



2. 허블.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저는 밴쿠버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밴쿠버에는 허블 3D 아이맥스 상영은 없더라고요. 

 밴쿠버 사이언스 월드 아이맥스 전용관에서 허블을 상영하기에 3D를 놓치는 것을 살짝 아쉬워하면 그곳으로 보러 갔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멀티 플렉스에서의 아이맥스관이 아닌 아이맥스 전용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제겐 21세기 들어서 처음이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맥스 전용관의 위엄을 전혀 잊고 있었습니다.


 정말 정말 크더군요. 그리고 정말 정말 높고요.

 전 대략 20대 중반에 어느 시점에 제가 고소 공포증이 있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고, 그 후로 고소공포증의 나날을 누려오고 있답니다. 

 그런데 막상 겁은 좀 없는 편이긴 해요...아, 뭔가 서로 모순적이죠?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번지 점프대에 서면 극도의 공포를 맛봐요. 아니 실제로 점프대에 서기 전까지가 가장 무섭습니다. 심장이 덜컹 거리고 다리가 떨리고,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번지 점프대에서는 자신있게 뛰어내릴 수 있어요; 

 제가 여태 경험한 곳 중에서 가장 심장이 쿵쾅대던 곳은 매우 높은 곳에 있는 전망대 같은 공간입니다. 그 위에서 바닥이 튼튼하고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딘가를 내려다보는 행위 자체가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아이맥스 전용관에서 그만큼의 공포를 맛보게 될 줄은 정말로 몰랐어요.


 다른 단체 관람객들 때문에 아내님과 저는 아이맥스 관 제일 꼭대기 줄에서 영화를 봐야 했습니다. 높은 각도로 올라갈 때만 해도 아 높네...이런 생각 정도였지만, 막상 자리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니...심장이 쿵쾅대며, 식은 땀이 나면서 어찌할 수가 없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스크린엔 사이언스 월드 멤버쉽 광고 화면이 떠있었습니다. 그것도 정지화면으로요. 그런데 아주 높은 각도로 화면을 올려다보며 거대한 그 광고지를 보는데 느껴지는 그 아득함은...

 의자에 등을 꼭 붙이고 앉아 아내님 손을 움켜잡으며 고개를 푹 파묻은채, 눈을 감아보았지만, 감은 눈 너머 제 두려움을 자극하는 것은 그대로인 걸 알아서 심장의 쿵쾅댐은 쉬이 가라앉지 않더라고요.

 예상치못한 제 반응에 아내님도 놀라 영화를 못 보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래도 비싼 돈 내고 들어왔는데 포기란 있을 수 없어서 그대로 버티고 있었습니다. 


 영화 본편이 시작하기 직전 아이맥스 로고가 나오면서 카운트 다운 화면이 나오잖아요. 아아. 그것도 제 고소공포증을 더욱 자극하더군요. 거대한 화면으로 숫자가 비춰지는데...어지러움마저 느껴진달까요.


 그런데! 다행히! 허블 본편이 시작하자, 두려움이 사그라들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화면에 익숙해지면서 영화 후반의 우주 장면에서는 그 거대한 화면을 즐길 수도 있었어요.

 아이맥스 전용관은 스크린 사이즈만으로 압도가 되어서 3D가 딱히 아니더라도, 정말 좋더라고요.


 허블 자체만으로도 좋은 영화였지만, 예상치 못한 고소공포증 작렬로 잊지 못 할 경험이 되어버렸습니다. 아아.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6545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508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4402
100669 악마를 보았다2를 보다. [3] 자본주의의돼지 2011.05.11 2331
100668 앞으로 12시간동안 서명을 받는다고 합니다. 우간다 반동성애법 저지 서명에 동참해 주세요. [7] 하이키 2011.05.11 1600
100667 항공권 싸게 잘 구하시는 분 계세요? 조언 부탁드려요 ㅠㅠ [5] 형도. 2011.05.11 2380
100666 가카의 경호원 '독일경찰'에게 쫓겨나다?? [13] soboo 2011.05.11 3605
100665 6월 개봉, 화이트 티저 [4] 메피스토 2011.05.11 1275
100664 듀게가 내게 준 딜레마 [4] therefore 2011.05.11 1944
100663 이명박 대통령, 5·18 31주년 기념식 불참 [7] 꼼데가르송 2011.05.11 2699
100662 오늘 구글 움직이는 그림 [1] 가끔영화 2011.05.11 1778
100661 스포츠서울, 파파라치 -> 디스패치 [8] 당근케잌 2011.05.11 3253
100660 친구 자랑 [4] therefore 2011.05.11 2164
100659 이런 미친 날엔 어디로 가야 하죠 [9] 사과씨 2011.05.11 2485
100658 질문글) 생생정보통 5/10 막국수 편의 오군 누군지 아시나요 [11] 미나 2011.05.11 3259
100657 [바낭] 바이크를 보냈습니다........ [2] 가라 2011.05.11 1174
100656 오체불만족 시구 가끔영화 2011.05.11 1327
100655 '토르'를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고 말 할 수 있는 건가요? [9] bebijang 2011.05.11 1976
100654 인력난 [5] 생귤탱귤 2011.05.11 1521
100653 부산에서 예술사, 미학 공부 같이 하실 분을 찾습니다 ^^ [3] 한점 2011.05.11 1297
100652 구미 단수사태, "길에 응가가 널려있다." [25] 푸른새벽 2011.05.11 4431
100651 토르 감상 - 로키에게 감정이입하고 망한 1人(스포 有) [16] 헤일리카 2011.05.11 3068
» 토르 / 허블 (아이맥스) 간단 감상기(스포일러 있어요) + 고소 공포증 투덜투덜 [4] 남자간호사 2011.05.11 172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