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량과 알콜 거부 반응, 자기 책임론.

2010.07.10 22:39

keira 조회 수:2747

 자기 주량이 얼마인지 알고 그걸 넘어서지 않을 정도로 마시면 좋은 일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자식이 성년이 되었을 때 부모가 해야 할 교육 중 하나는 주량 및 주사 테스트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기 주량이 얼마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거니와, '주량'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대학 신입생 환영회 때 소주 한 잔인가 마시고 식당에서 쓰러진 적이 있는데 필름이 끊어졌다거나 그런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술이 머리로 올라가서 몇 분 정도 몸을 통제 못했던 것이지요. 그 후에는 달콤한 칵테일을 한 잔 마시고 길바닥에 쓰러진 적이 있습니다. 역시 필름이 끊기지는 않았고 동행자가 있어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맥주 한 병을 마시고 속이 뒤집혀 토할 것도 없는데 몇 시간이나 신물을 올린 적도 있습니다. 이런 몇 번의 경험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제게는 '주량'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몸을 통제하지 못할 뿐 아니라 맥주 한 잔이라도 마시면 온 몸이 시뻘개지니 그냥 술 자체가 독약으로 작용하는 체질을 타고났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그 이후 저는 밖에서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와는 상관 없습니다. 제 몸을 제가 통제하지 못하는 데서 공포가 몰려오니까요. 그런데 혼자 안 마신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 회식 자리에서 사수가 술을 마시라고 따라 줬는데 끝끝내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건에 대해 나중에 야단을 맞았습니다. 과하게 마시라고 한 것도 아닌데 한 잔도 안 마시고 그렇게 빼니까 분위기가 싸해지지 않느냐고요.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겨우 한 잔이지만 제게는 한 잔씩이나-인 술인걸요. 회사 회식 자리에서 실수를 하는 것보다는 나중에 깨지는 게 낫지요.

사수는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도 아니었고 강압적인 사람도 아니었지만, '겨우 한두 잔'이 마시는 사람에게는 독약이 될 수 있다는 것까지 생각할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또  예전에 인사 담당자들이 이런 신입사원 싫다-고 하는 내용의 기사를 본 적 있는데 거기에도 회식 자리에서 술 한 잔도 마시지 않고 빼는 사람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 밑에는 술 못 마시는 것도 죄냐는 댓글이 작렬했고요. 그 댓글을 단 사람들도 어딘가 회식 자리에서 사약을 마시는 기분으로 술을 받아 마시고 있을 겁니다.

 

 술자리 분위기를 위해 동석한 모든 사람이 몇 잔은 의무적으로 마셔야 한다는 게  암묵적인 합의로 작용하고 있는 이상 그러게 왜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셨냐, 자기 주량도 모르고 마신 사람의 책임이다-라는 말은 함부로 할 게 아닙니다. 남들 보기에는 떡이 되도록 마신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 사람이 마신 건 겨우 한 잔, 그것도 주변에서 먹인 한 잔일 수도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874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4392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3217
123619 렛미인 리메이크 [6] 가끔영화 2010.07.10 3947
123618 저의 캔커피 인생에 새로운 장을 열어준 칸타타 아메리카노 아이스 커피 [5] 스위트블랙 2010.07.10 3786
123617 여러 가지... [1] DJUNA 2010.07.10 2711
123616 [인생은 아름다워] 28회 할 시간입니다 [31] Jekyll 2010.07.10 2938
123615 술 취한 여성을 '사냥'하러 다니는 사람들 [27] 김원철 2010.07.10 6482
123614 저와 같은 분 계시나요? [2] purpledrugs 2010.07.10 2001
123613 크리스피크림도너츠 1더즌에 7300원 [5] 자두맛사탕 2010.07.10 3085
123612 킬리언 머피 언니 [9] 우울한 나오미 왓츠 2010.07.10 6434
123611 듀나인] 소설책을 찾습니다. [2] anomy 2010.07.10 2155
123610 김경의 낸시 랭 사건 기사 보신 분? [3] 겨자 2010.07.10 4818
123609 출출했어요 [4] 메피스토 2010.07.10 2558
» 주량과 알콜 거부 반응, 자기 책임론. [2] keira 2010.07.10 2747
123607 냉면집에서 육개장 시켜먹기. - 남포면옥 [5] 01410 2010.07.10 4242
123606 [시국좌담회] 좌담회는 아무래도 8월 첫째 토요일이 될 것 같습니다. [6] nishi 2010.07.10 2128
123605 오늘 영상자료원에서 <이키루> 보신 분들은 황당한 경험을 하셨죠. [14] 빛나는 2010.07.10 3389
123604 오늘 드라마 스페셜 (위대한 계춘빈)... [37] DJUNA 2010.07.10 3799
123603 요즘 무슨 음악 들으세요? [2] 문피쉬 2010.07.10 2200
123602 영어단어 하나와 소설 하나 찾아주세요. [3] poem II 2010.07.10 2025
123601 96년 가장 인상깊은 데뷔 [8] 수수께끼 2010.07.11 3444
123600 술 취한 이쁜 여성이 눈 앞에 있습니다. 자.... [11] soboo 2010.07.11 498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