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1시간 43분. 스포일러는 마지막에 흰 글자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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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터는 그래도 꽤 맘에 들었습니다만...)



 - 225의 제곱근을 바로 답하지 못해서 수업 시간에 난처해하는 13세 소년 존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산 속 외딴 곳에 홀로 으리으리하게 서 있는 집에서 아빠, 엄마, 누나와 4인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는데요. 보아하니 경제적으론 꽤 풍족한 듯 하고. 가족들도 아주 훌륭하진 않지만 특별히 문제도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사 준 드론을 붕붕 날리며 숲속을 헤매다가 짓다 만 아주 깊은 벙커를 발견해요. 그러고 집에 돌아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한 존은 엄마의 약병에서 수면제를 훔쳐 정원사 아저씨한테 한 번 먹여 보고. 아 이정도면 되는구나... 싶었는지 그날 밤 바로 온식구의 음식에 수면제를 넣어 재운 후에 밤새 열심히 끌고 가서 벙커에 다 넣어 버립니다. 그러고는 혼자 살아요. 뭐... 그런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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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짜고짜!!! ㅋㅋㅋ 뭐 이 도입부까진 괜찮았습니다만...)



 - 저는 괴상하게 시작하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타이사 파미가도 좋아하죠. 그래서 시놉시스에 '존이라는 어린애가 집 근처 숲에서 발견한 벙커에 가족을 가둬버린다' 라고 적혀 있는 걸 보고 일단 호감이 생겼고. 또 출연진 정보를 확인하고는 아 이건 내가 봐야 하는 영화구나... 했죠. 평가가 상당히 안 좋은 편이라는 것까지 확인했지만 그래도 일단 맘에 드는 포인트가 두 가지나 있으니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장르도 호러라구요!!! 그래서 바로 봤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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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마이클 C 홀, 엄마가 제니퍼 엘, 누나가 타이사 파미가입니다. 이쯤 되면 인디 영화에선 거의 드림 캐스팅급인데... 그냥 낭비에요.)



 - 그러니까 이야기의 주인공이 존입니다. 가족들이 아니구요. 가족들을 벙커에 가둔 후에 전개되는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존의 일상 생활이고 가족들은 잊을만 할 때마다 조금씩만 나와요. 지하 벙커 속에서 살아남고 탈출하기 위한 가족들의 처절한 투쟁!!! 이런 거 안 나온다는 얘깁니다. 그러면 가족을 내다 버린 후 존의 일상은 뭐냐면... 그냥 그 또래 어린이가 보호자 없이 집에서 자기 맘대로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어떻게 지낼까? 라는 일반적인 상상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아요. 부모 카드로 현금 인출해서 자기 먹고 싶은 거 팡팡 사먹고, (라고 해봐야 동네 식당 닭튀김...) 맘껏 게임하고, 집안 마구 어지르며 놀고, 친구 불러다가 며칠 동안 격하게 빈둥거리고... 뭐 이런 겁니다. 가끔 어른들이 방문해서 존이 거짓말로 둘러대는 장면들에서 긴장감 같은 걸 느낄 수 있긴 하지만, 그냥 그게 다에요. 이런 걸 '호러'라고 딱지를 붙여 놓을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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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들이 풀장에서 보호자도 없이 기절하기 직전까지 숨 참기 놀이를 하는 무시무시한 장면입니다!!!)



 - 그렇게 영화가 태연하게 존의 별 것도 없는 일상을 보여주는 가운데 관객들이 그래도 이 이야기에 뭔가를 궁금해하고 기대하며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요소가 있다면... '대체 얘는 왜 이런 짓을 한 걸까.' 입니다. 13살 어린 애가 갑자기 가족들을 벙커에 던져 놓고 혼자 집에 처박혀 있잖아요. 당연히 뭔가 동기가 있겠죠? 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일 텐데요. 음... 이것도 영화 중반쯤 가면 약빨이 떨어집니다. 왜냐면 결국 이 가족은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게 금방 드러나거든요. 아주 훌륭할 것까진 없지만 특별한 문제도 없는 가족 구성원들이고, 가족들 중 누구 하나 존에게 평범한 일상 범주를 벗어나는 나쁜 짓을 한 일이 없습니다. 심지어 이런 황당한 일을 당하고도 존에게 마구 화를 낸다거나 그러지도 않아요. 오히려 '우리가 뭘 잘못했을까?' 라며 구덩이 속에서 자책을 하면 했지. ㅋㅋㅋ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겁니다. 적어도 뭔가 드라마틱한 이유는 없어요.


 그럼 대체 존은 왜 그런 것이며 이 영화는 뭘 어쩌라는 것인가... 가 문제겠죠. 영화는 이 부분에 대해서 친절하게 답을 주진 않습니다만. 대애충 짐작할 수 있는 힌트는 후반에 꽤 후하게 주는 편이거든요.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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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족들은 잘못이 없습니다. 그냥 존이 배가 불렀던 게죠.)



 - 그냥 막 사춘기에 접어들 나이의 청소년이 겪는 성장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 그겁니다.

 가족들을 다 구덩이에 집어 넣고 나서 한동안 신이 난 존이 하는 행동들이 그렇습니다. 처음엔 아주 어린이답게 부모가 하지 못하게 했던 일들을 막 해요. 그러다 잠시 후 부터는 어른 흉내를 내기 시작합니다. 아빠 차로 운전 놀이도 해 보고. 친구 불러서 놀다가 용돈(!)도 주고. 뽑은 현찰로 산 음식을 구덩이에 던져 주다가 나중엔 직접 요리를 해서 갖다 주기도 하구요. 혼자 지내며 어쩔 수 없이 마주치게 되는 어른들에게 '부모님 말고 제가 직접 해도 되나요?'라는 식으로 제안을 해 보기도 하구요.


 중간에 갑자기 쌩뚱맞게 끼어드는, 중심 스토리와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들의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또한 그런 쪽입니다. 12살 밖에 안 된 어린 여자애한테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당장 어른이 될 것을 강요하는 엄마 이야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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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이 되어 홀로 선다는 건 참 부담스럽구나!!! 라는 걸 깨닫는 소년의 이야기를 이렇게 거창하게 풀 필요가... 없는 건 아니지만 잘 못 풀었어요.)



 - 뭐 좋습니다. 그런 얘기 할 수도 있죠.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요.

 이런 이야기들이 정말 아무 임팩트 없이 흘러간다는 겁니다. 담겨 있는 내용들이 정말 별다를 게 없다 보니 나름 '무덤덤한 분위기 속에서 갑작스런 무언가가!' 라는 식의 연출을 시도해 봐도 아무 임팩트가 없구요. 또 이게 무슨 일관된 흐름을 갖고 흘러가는 게 아니라 걍 산만하게 이랬다가, 저랬다가, 그래도 봤다가... 라는 식으로 툭 툭 던져져요. 다 보고 나면 '기'와 '결'은 있는데 승과 전은 그냥 한 뭉탱이로 아무렇게나 붙어 있는 이야기를 본 기분이 들거든요. 대체 어떻게 이런 각본으로 이런 배우들을 캐스팅해서 극장용 장편 영화를 만들었을까. 라는 미스테리가 제겐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대체 어떻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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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이 화면비에도 나름 감독의 의도나 의미가 들어 있겠지만 그런 게 전혀 궁금해지지 않을 정도로 영화가 그냥 그랬습니다.)



 - 더 길게 말할 것도 없어서 갑작스레 정리를 시도해 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작정하고 만든 인디 예술 영화입니다. 대체로 평범한 이야기를 나름 임팩트 있는 설정과 독특한 분위기로 멋지게 꾸며 보려 노력한 작품이겠구요. 특히... 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이름이 있어요. 요르고스 란티모스요. 전체적인 얼개나 분위기,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들 같은 걸 보면 그 양반 영화들이 자꾸 떠오르거든요. 부조리, 불합리하지만 암튼 임팩트 있는 설정을 갖고 우화적인 분위기로 현실 이야기를 하는 거죠. 영화의 톤은 뚱~ 한 가운데 자꾸 쌩뚱맞게 강한 장면들이 튀어나오고. 그 와중에 또 되게 무뚝뚝하게 웃기구요.

 다만 이 영화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흉내란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분명히 보여주는 데에 존재 가치가 있습니다. ㅋㅋㅋ 어림 없어요. 그 양반 영화들만큼 충격적이지도 않고, 몰입되지도 않고, 웃기지도 않아요. 그냥 딱히 알맹이 없는 이야기로 예술적인 폼만 시도한 영화라고 느꼈네요. 결론적으로 좀 많이 비추천입니다.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그러니까 가족들을 가둬놓고 어른 놀이를 즐기던 존은 며칠 지나지 않아서 두 가지를 느끼게 됩니다. 세상 참 만만치가 않구나. 그리고 홀로 살아간다는 건 참 외롭고 무섭고 안 즐겁구나. 그래서 어느 날 아침 존은 구덩이를 찾아 잠든 가족들을 내려다보며 눈물 흘리고, 그때 마침 잠에서 깨어난 누나가 존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존,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나도 몰라, 하지만 미안해.

 말 없이 사라진 존은 잠시 후 집에서 긴 사다리를 가져와서 천천히 내려 놓고, 가족들은 말 없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먼 숲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랬더니 앞마당 수영장에 마치 익사한 사람처럼 둥둥 떠 있는 존이 보이고. 가족들은 비명을 지르며 수영장에 뛰어들지만 존은 앞부분에서 놀러온 친구가 가르쳐 준 '성모 마리아 보기 놀이'를 하고 있었던 것 뿐이에요. 물 속에서 숨을 오래 참아서 죽을락 말락해지면 신비로운 게 보인다나요. 암튼 눈을 뜬 존은 말 없이 먼 하늘을 응시하구요. 장면이 바뀌면 이제 평온을 찾은 존의 가족이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존을 클로즈업하던 카메라가 엄청나게 느린 속도로 뒤로 빠지면서 가족 식사 전경을 보여주네요. 그리고 존네 가족이 갇혀 있던 웅덩이를 메우는 공사 모습이 짧게 보입니다.


 덧붙여서. 영화 중간중간에 쌩뚱맞게 끼어들던 '릴리'라는 여자애 얘기가 있어요. 뭔가 정신적으로 불안해 보이는 엄마랑 요 아이 둘이 나오는데. 별 건 없고 포인트는 중간에 릴리가 엄마에게 재밌는 얘길 해달라면서 '존과 구멍 이야기를 해줘요'라고 한다는 거죠. 그럼 존의 이야기는 그냥 이 아이의 엄마가 들려준 옛날(?) 이야기였던 걸까요. 암튼 이 릴리는 엄마에게 버림 받습니다. 1년치 생활비는 현찰로 두고 갈 테니 앞으론 그냥 알아서 살래요. 여자애는 대체 무슨 소리냐며 난 이제 열 두살인데 1년 뒤에 어떻게 그렇게 사냐며 따지지만 엄마는 징징대지 말라고 매섭게 쏘아 붙이고는 그냥 휭 나가 버렸죠.


 영화상으로 존의 이야기가 완전히 끝이 나면 아마도 존이 헤맸던 그 숲인 듯한 곳을 릴리가 혼자 헤매고 있습니다. 계에속 걷다가... 그냥 엔딩이에요. 뭐 어쩌라고.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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