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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어체로 씁니다.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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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타는 아프리카 난민이다. 그는 토리가 체류증을 받았으니 자신도 체류증을 받아야한다. 둘은 친남매가 아니지만 어쨌든 서로 의존하며 살아온 시간이 있다. 이 백인들의 나라에서, 같은 난민으로 믿고 의지할 존재는 자신들뿐이다. 그러나 체류증을 심사하는 심층면접에서 로키타는 결국 떨어지고 만다. 밀입국 딜러에게 돈을 뜯기고 또 고국의 가족에게 돈을 송금해야하는 로키타에게는 돈벌이도, 체류증 발급도 시급한 일이다. 로키타와 토리 남매를 마약 딜러로 부리던 요리사 벨팀은 로키타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어떤 곳에 가서 3개월동안 일을 하면 체류증을 발급해주겠다는 것이다. 로키타는 그 수상한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잠깐동안 함정에 빠져있었다. 로키타는 벨팀의 동료 루카스의 차를 타고 대마초를 키우는 비밀 공장에 간다. 거기서 3개월간 일을 하면 체류증을 준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계약은 성사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로키타를 너무 보고 싶어하던 토리가 벨팀의 차에 숨어타서 대마초 비밀 공장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문제가 됐을법한데, 토리는 무려 대마초를 빼돌려서 벨팀의 고객을 뺏을 생각을 한다. 당연하게도, 그 무모한 계획은 바로 들통이 나고 이 남매는 바로 위기에 처한다. 그러게 왜 토리는 그런 위험천만한 짓을 저질렀을까. 이 남매가 위험해질수록 나는 관객으로서 토리를 계속 탓했다. 그 계획을 말리지 않은 로키타도 꾸짖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왜들 그랬냐고.

이 남매를 타박하는 나의 판단은 과연 정확했던 것일까. 어떤 영화는 영화로 인물들을 판단할 수 없다. 관객으로서 목격하는 토리와 로키타의 삶은 두시간도 채 안되는 화면들뿐이다. 그 전에 얼마나 많은 굴곡이 있었고 토리와 로키타는 시시각각 얼마나 최선의 판단을 했었을까. 영화는 초반부에 토리와 로키타가 마약 딜러로 돈을 벌고 있다는 장면을 보여준다. 관객으로서, 우리는 긴장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직 러닝타임은 많이 남아있고 영화 속 분위기는 비교적 평온하니까. 우리는 영화를 영화로 본다. 갈등이 있어도 정도를 지킬 것이라는 관객으로서의 믿음이 있다.

마약 거래를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경찰들은 이 남매를 불심검문한다. 다행히 걸릴만한 소지는 없었다. 아직 어린 토리는 너무나 능숙하게 변명을 해댄다. 그가 이렇게 적응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위기를 겪었을 것인가. 영화는 이미 이 장면에서 힌트를 준다. 이 남매는 언제나 이렇게 위험을 떠안고 살아가야했다는 걸. 그것이 이 남매가 세상을 읽어낸 결과이고 습득한 생존 방식이다. 이 남매는 저 때까지 운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약딜러를 부업으로 적당히 뛰면 언젠가 돈을 다 모으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겁도 없이 대마초 비밀공장에 숨어드는 토리의 선택은 이 남매에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여태까지는 안 걸렸었으니까. 어떤 삶은 불법의 세계에서 탈출할 타이밍을 배울 틈도 없이 그렇게 숙달되어간다. 그것이 유일한 생존수단이었으니까.


어느 누가 이 남매를 꾸짖을 수 있을 것인가. 마약 딜러는 위험하니까 그만두라고 충고할 수 있을까. 돈 몇푼 때문에 그렇게 섹스를 하지 말라고 할 수 있을까. 더러운 숙소에서 감금되다시피해서 대마초만 하루종일 키우는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충고를 무색하게 만드는 현실이 이 남매앞에 펼쳐져있다. 빚갚으라면서 말 그대로 삥을 뜯는 밀입국 브로커들, 본국에서 송금을 기다리는 가족, 당장 체류증을 내주지 않는 낯선 외국땅... 만일 토리에게 그 비밀 공장에 숨어들어갔으면 안됐다고, 그렇게 거래를 하면 안됐다고 "지혜"를 전파할 수 있는 자격은 나를 포함한 어떤 관객에게도 없을 것이다. 이 남매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함정, 토리가 로키타를 훼방놓지 않았고 3개월만 꾹 참은 채로 보낼 수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는 그 가정법이 얼마나 무색한지 벨팀을 통해 보여준다. 그는 마약딜러로서 이 끄나풀들에게 꽤나 정확한 셈을 해주고 체류증이 긴박한 로키타에게 나름 괜찮은 일자리도 소개시켜준다. 그러나 벨팀이 비밀공장에 찾아와 로키타에게 섹스를 강요할 때 이 계약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안일했던 것인지 곱씹게 된다. 벨팀은 어떻게 로키타를 희롱하는가. 체류증에 쓸 사진을 찍어야 한다면서 상의를 다 벗으라고 강요한다. 제일 절박한 인간의 약점을 쥐고 흔드는 벨팀을 보면서 이 계약이 무사하게 완료될 수 있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말을 잘 듣는다면서, 사정이 바뀌었다면서, 체류증 값이 크게 올랐다면서, 대마초가 안팔린다면서, 로키타를 몇개월이나 노예로 더 굴렸을지, 어떤 성적인 폭력을 저질렀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실제로 이 남매가 대마초 공장을 벗어날 때 이들은 절대 멍청하지 않았다. 아직 10대에 불과한 이들이 범죄자 성인 남성을 쓰러트렸고, 동료가 쫓아들어왔을 때는 숨어있다가 나와서 그를 따돌리는데 성공했다. 자물쇠를 열 수 없게 만들었고 쫓기지 않을 길을 생각해서 도주했다. 발목이 삐어서 로키타가 제대로 걸을 수 없을 때 토리는 근처의 고무판을 주워 썰매로 이용해 같이 언덕을 내려갔다. 이들의 무엇이 부족했나. 이 남매는 온갖 꾀를 짜내었고 서로 의지하며 거의 탈출할뻔 했다. 단지 딱 한번 실패했다. 히치하이킹에 성공했지만 로키타는 숨어있던 동생까지 챙기려고 했다가 차를 타지 못했다. 자기 동생을 챙기느라 로키타는 도망치지 못했다. 그러니까 로키타는 일단 차를 타서 병원을 가고 동생을 그 곳에 버려둬야했을까?

루카스에게 발각된 로키타는 갑자기 죽어버린다. 조언과 훈계를 늘어놓으려는 관객들에게 여봐란듯이, 루카스는 로키타를 죽여서 입을 막는다. 이 남매가 살고 있는 세계는 그런 세계다. 까딱하면 바로 총맞고 죽는, 그런 세계다. 그러니까 우리는 다시 한번 그 잘난 가정법을 떠들 수 있을까. 어떤 선택을 안했어야 했고 그랬으면 모든 게 다 잘 풀렸을 것이라는, 그 무책임한 상상을 풀어놓을 수 있을까. 이 영화의 첫 장면을 다시 떠올린다. 카메라는 로키타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체류증 감독관의 시선으로 그를 보여준다. 그는 감독관을 보고 울면서 이야기했다. 토리는 나의 동생이고 나는 여기에서 꼭 살아야한다고. 영화가 끝날 때 토리는 말한다. 왜 누나에게 체류증을 주지 않았냐고. 이 질문을 다시 생각해야한다. 우리 사회는 난민들에게 어떤 세계를 부여하고 있는지. 우리 역시도 이 무관심한 사회의 공범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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