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황녀들 2.

2018.03.19 17:07

Bigcat 조회 수: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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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카노바 황녀, 콘스탄틴 플라비스키, 1864년, 캔버스에 유채, 245 × 187.5cm,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소장


세상의 모든 권력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뭘까요? 그것도 만일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그 자리에 오른 자라면?

 

전근대사회에서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오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조상 대대로 수백년 통치 가문의 후예여서 자연스럽게 부모의 자리를 승계하는 경우와 스스로 난세를 극복하여 창업 군주가 되는 것.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분제 사회였던 그 시절에 어느 누군가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라면 보통은 두 가지 중 어느 한 쪽인 경우로 왕위에 올랐을 것입니다. 아니 보통은 전자가 압도적으로 많으리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와 같은 인간사는 워낙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아 세상의 제왕들 중에는 부모의 보위를 순순히 물려받지 못한 경우들도 심심치 않게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앞서서 얘기해 드린 소피아 황녀와 표트르 대제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었지요. 두 사람 모두 차르인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지만 두 사람 모두 스스로 차르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를 몰아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습니다.


반란 그리고 정변. 혁명처럼 나라 전체가 급격하게 바뀌는 대사건이 아닌, 단지 지배계층의 변동으로 최고 집권자의 운명이 급격히 바뀌는 사건들을 두고 보통 이렇게들 말합니다. 요즘은 쿠데타(군사정변)라는 말을 많이 쓰기도 하지요. 전근대 사회에서는 궁정 쿠데타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어떤 말을 하던 요지는 변함이 없습니다. 소수이든 다수이든 일단의 병력을 동원한 뒤 무력으로 현 집권 세력을 뒤엎고 그 자리를 빼앗은 어느 야심가가 그 나라 최고의 자리에 앉는 것이지요. 러시아의 역사에서 황녀 소피아는 두 가지 점에서 특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먼저 그녀는 중세 이래로 수백년 만에, 그것도 근세에 등장한 첫 번째 여성 통치자라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표트르 대제 사후 한 세기 가까이 열릴 여성 통치자들의 시대를 예고하는 인물이었다는 겁니다. 물론 그녀가 미래의 일을 예견하고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이후 표트르 대제 사후 한 세기는 이른바 누군가의 표현대로, ‘사치스러움과 혼란이 극에 달한 여제의 시대’(1725~1796)였던 것입니다. (에카테리나 1, 안나 여제, 섭정 안나, 엘리자베타 여제, 에카테리나 2) 그리고 대체 어떤 운명이었는지 그 여제들은 모두 정변을 통해 집권했고 하나같이 철권통치를 강행한 폭군들이었습니다. 물론 에카테리나 1세나 에카테리나 2세처럼 권력 없는 꼭두각시 여제이거나 대제 칭호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정치력을 가진 여제도 있었지만 이들도 어느 정도는 폭군의 기질이 있었다는 면에서는 매한가지였습니다.


러시아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러시아의 근세사에 왜 이토록 많은 여성 통치자들이 있었는지, 더구나 그것도 어떻게 하나같이 그렇게 궁정 쿠데타를 기반으로 집권을 했는지, 의아하게 생각해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다른 유럽 국가들 대부분이 남자 계승자가 없어서 공주가 여왕이 된 경우가 일반적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정말 이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지요. 그럼 도대체 러시아에서는 왜 이렇게 많은 여제들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건 아무래도 표트르 대제(1672 재위1682~1725) 이후의 동란에 가까운 변혁을 러시아가 겪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표트르 대제, 즉 표트르 1세의 정치적 목표는 대외적으로는 군사 강국이 되는 것 그리고 대내적으로는 동로마 제국의 중세적인 유산(제정 러시아의 국교인 그리스 정교나 러시아의 문자인 키릴문자는 모두 동로마 제국에서 이어받은 것입니다. 황제를 칭하는 차르역시 동로마 제국을 계승한다는 뜻이죠)에서 벗어나서 서유럽(루이 14세 시절의 프랑스)과 같은 문화 수준을 갖추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그의 생전에 결실을 맺었습니다. 표트르 1세는 그의 집권 기간 대부분을 전쟁터와 서유럽 견문에서 보낼 정도로 이 두 가지 정책에 몰두했고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희생된 러시아 민중의 수난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농노제의 강화, 동유럽의 재판 농노제) 러시아에 제국의 영광동유럽의 지배국이라는 국가적 지위를 가져다 준 그의 유산은 이후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것이 되고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후 집권한 여제들은 모두 하나같이 표트르 대제를 계승한다는 명분을 세웠습니다. 에카테리나 1(표트르의 아내) 안나 여제(표트르의 조카) 엘리자베타 여제(표트르의 딸) 에카테리나 2(표트르의 외손주 며느리)...이 여성 통치자들은 모두 그 같은 명분하에 군사력을 동원한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하고 통치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와 같은 사례만 보아도 한 나라에 있어서 국가적인 영광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는 군사적 승리와 같은 패권의 욕망이 얼마나 크게 이 시절 유럽을 지배하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어느 시대의 유럽이 그러지 않았을까 싶지만 18세기의 유럽 역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패권의 추구에는 여느 때 못지않은 위정자들의 치열한 다툼이 있었고 러시아의 경우에는 그 이전투구의 현장에 의외로 여성 통치자들이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이색적으로 보일 따름인 것입니다.


타라카노바 황녀. 콘스탄틴 플라비스키(1830~1866)의 이 극적인 역사화에는 어느 아름다운 여인의 죽음의 순간이 충격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화가 플라비스키에게 대중적인 관심과 젊은 나이임에도 미술 아카데미의 교수직이라는 영광을 안겨준 이 작품. 그의 1864년 대표작 <황녀 타라카노바>에는 한 여인의 비참한 죽음의 순간이 담겨있습니다. 누구도 이 그림이 담아낸 극적인 죽음의 순간을 그냥 지나치지는 못할 정도로, 지하 감옥에 갇힌 채 쏟아지는 물속에서 곧 다가올 죽음의 순간에 절망하고 있는 한 여인이 있습니다. 화가는 여인의 고통을 더없이 비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울한 지하 감옥에서 예상치 못한 죽음에 직면한 여인이, 무섭게 쏟아지는 물 속에서 영혼을 다해 통곡하고 있죠. 그림을 보는 관객들은 누구나 그녀가 온몸으로 쏟아내는 무력감과 절망을 처절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 이 젊은 여인은 대체 누굴까? 대관절 어떤 사연이 있길래 저토록 비통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가? 이 그림을 보는 어느 누구라도 쉽사리 발길을 떼지는 못할 것입니다. 보는 이에게 이토록 숱한 의문과 호기심을 일게 하는 극적인 장면 앞에서 사람들은 문득 그녀의 이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황녀? 타라카노바? 황실의 여인이 왜...순간 관객들은 누구나 역사 속에 익숙한 무자비한 황실 비사를 떠 올릴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녀의 정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겠지요. 황녀라니? 대체 황제의 딸이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까?


그럼 이제부터 이 불행한 여인의 사연에 대해 들려 드리겠습니다. 일단 타라카노바 황녀라는 이름은 이 여인이 가진 여러 개의 이름 중의 하나입니다. 그녀는 이 지하 감옥에 갇히기 전에 여러 이름들을 사용했는데, 예를 들면 마리 에멧데, 바로밀 공녀, 아조프 여대공, 핀베루크 백작부인 그리고 타라카노바 황녀...등등이었지요. 그녀는 1775년에 이 지하 감옥, 페토로파 바로프스크 성새에 갇혀서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프랑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독일 지역 등을 여행하면서 - 당시 유행하던 유럽 각국의 상류층들의 살롱에 출입하면서 - 귀부인과 같은 대접을 받았는데, 그 때마다 사용하는 이름은 바뀌면서도 한 가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이 표트르 대제의 외손녀라는 것이었습니다

.

그러니까 그녀는 자신에게 출생의 비밀이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녀는 자신이 여제 엘리자베타(1709, 재위 1741~1762)의 숨겨진 딸이며 어머니가 자신에게 황위를 물려주겠다고 남긴 유언장이 있다고 주장하고 다녔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른바 그녀는 러시아 제국의 황위 요구자였던 것이죠.



이 얘기가 진짜일까요? 일단 여제 엘리자베타는 - 표트르 대제의 차녀 - 일생 결혼을 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당연히 자녀도 없었습니다. 물론 그녀는 젊고 잘생긴 남자들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녀 치세 내내 여제의 주변에는 총신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만 그들 사이에서 자식이 있었다는 얘기는 없었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은(1775) 에카테리나 2세의 치세였습니다.(1729/ 재위1762~1796) 그러니 이미 러시아에는 엄연히 여제가 있음에도 누군가 자기가 황위계승자라고 떠들고 다니면 어떻게 될까요?



여러 정황을 보아 배짱 좋은 사기꾼에 불과한 이 젊은 여인의 말을 진지하게 들었던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습니다만, 사람들이 언제나 그렇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어서 그녀 주변에는 막연하게 왕실을 동경하거나 정치적 야심이 있거나 혹은 단순히 모험을 즐기는 여러 남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마침 그 시절은 유럽의 상류 사교계에 귀부인들이 이끄는 살롱이 대 유행을 하던 시절이었고) 그리고 그녀는 적당히 그들에게 원조를 받으며 언젠가 자신이 정당하게 찾아야할 제국의 승계권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하곤 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실 사기꾼들은 어느 시절에나 있는 법이고 유럽 어디의 왕실이든 부당하게 왕위를 빼앗기고 떠돌아 다니는 자들이나 그들의 자손을 자처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었는데, 서양에서는 중세 십자군 원정 시절부터 이런 양상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을 떠나 성지 예루살렘을 되찾겠다며 수 십년간 전쟁터를 떠돌다 돌아온 기사들이 - 젊은 시절 그들이 떠났을 당시의 모습을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 그 기사 영주들을 사칭하는 사기꾼들이 종종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림 속 그녀의 경우는 갑작스럽게 닥쳐온 극적인 죽음 때문에 역사에 적지 않은 흔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뜻 밖에도, 그녀에 대해 러시아 제국에서 비밀 지령이 내려왔던 것입니다. 이미 177411월에 내려진 여제(에카테리나 2)의 서한에 “...아무 권리도 없으면서, 무례하게도 이름과 출생을 거짓으로 꾸미고 다니는 이 괘씸한 사기꾼을 잡아들이라고 명령이 내려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 사기꾼이 순순히 굴복하지 않는다면 무력을 사용해도 좋다....만일 라구사 시(이탈리아의 도시, 자칭 타라카노바 황녀가 사건 당시 머물던 곳)가 이 사기꾼을 인도하는 것을 거부할 경우, 협상이 안 될 때는 도시에 포격을 가하라...”고 무자비한 명령까지 덧붙여진 것이었죠. 당시 에카테리나 2세는 이 사기꾼 황녀를 잡아들이기 위해 측근 신하들까지 현장에 파견하고 죄수를 압송하기 위한 군함까지 파견한 상태였습니다. 여제가 타국에서 벌이는 이례적인 체포 작전 때문에 외교 분쟁이 일어날 것까지 대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죠. 확실히 일개 사기꾼 하나 잡아들이는데 여제가 과한 일을 벌인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775512, 타라카노바 황녀는 죄수의 신분이 되어 군함에 실린채 압송되었고 러시아에 도착하자마자 페토로파 바로프스크 성새에 투옥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낱 사기꾼에게는) 이례적으로 당시 육군 원수의 직에 있었던 장성 고리스인 공작이 죄수의 심문에 임했습니다. 당시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황녀의 체포 작전을 지휘한 사람은 여제의 측근인 알렉세이 올로프 대공이었는데 - 그는 형 그레고리 올로프와 함께 궁정 쿠데타를 감행하여 에카테리나 2세를 여제의 자리에 앉힌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 그는 이 타라카노바 황녀에게 비밀리에 접근하여 현재 러시아의 재위에 있는 가짜 여제에게 불만이 있다고 털어놓은 뒤 나와 힘을 합쳐 그 가짜(에카테리나 2)를 몰아내고 우리 함께 (결혼을 해서)러시아를 다스립시다.’라고 그녀를 속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속임수에 걸려든 황녀는 그만 전혀 경계하지 않고 그가 오라고 하는 이탈리아의 도시 피사에 나타났고 그를 만나 구체적인 계획을 듣는다는 미명하에 리보루노와 라구사 등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을 거닐며 곧 있을 황위 찬탈 음모와 재위에 오른 뒤에 치를 결혼식 계획까지 꾸미게 되었다는 것입니다.(물론 이런 계획들을 세우면서 여러 도시들을 여행하다가 이들이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전후 상황이야 어떻든 이런 헤프닝 끝에 타라카노바 황녀는 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습니다. 당시 보고서에 의하면 죄수는 꽤 위엄이 있었고, 이탈리아 사람으로 보이나 주로 불어와 독일어로 얘기했고 러시아어는 전혀 모르것 같았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나이는 23세이고 본명은 엘리자베타라고 하며 그리고 의사의 진단에 의하면 황녀는 이미 폐병에 걸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병의 징후는 이미 상당히 진행이 되어 치료를 받지 않으면 곧 위중해질 수 있다는 소견도 함께였지요. 이후 계속된 심문에 의해 그녀가 자백한 바에 따르면 부모 형제는 물론 국적도 출생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유럽과 중동지역(오스만 투르크의 제국령)을 떠돌며 생활해 왔다는 딱한 이야기들이 줄을 이었지요. 그리고 마침내, 여제가 제일 관심사인 배후세력은 확실히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만, 여제 에카테리나는 병들어 죽어가는 죄수를 그 감옥에 그대로 방치하라는 명을 내립니다. 황녀 타라카노바는 정성을 다해 반성하는 편지를 쓰고 자신을 이 끔찍하게 추운 얼음 감옥에서 제발 나가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이야기를 전했지만 여제의 분노는 여전할 뿐이었습니다. 결국 1775124일 투옥된지 6개월만에 (재판도 받지 못하고) 황녀 타라카노바는 감옥속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사인은 의사의 진단대로 결핵이었습니다만 얼음장같이 추운 성새의 참담한 환경이 그녀의 명을 재촉한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그녀의 죽음에 얽힌 전설이 생겨납니다. 그녀가 사실은 단순히 지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근처의 불어난 강물에 익사했다는 얘기가 돌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2년 후에 홍수가 나서 네바강이 범람했고 황녀가 죽은 요새가 잠시 침수되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인근 주민들 사이에 죽은 황녀에 대한 이야기가 돌기 시작한 것입니다. 전설은 드라마틱해서, 죽은 황녀는 사기꾼이 아니라 진짜 황녀이고 선대 여제인 엘리자베타의 무남독녀이며 위대한 표트르 대제의 유일한 혈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황당한 이야기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제국의 승계법상 정식 결혼을 해서 태어난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타라카노바 황녀는 계승권이 없었습니다만, 뭐랄까요. 당시에는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끈질기게 믿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현실이 여제 에카테리나로 하여금 이례적으로 그녀의 처우에 대해 가혹한 명령을 내리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황녀 타라카노바사건은 그 시절에나 지금에도 흔한 사기꾼이 저지르는 단순 사기 사건에 불과합니다만 - 이후에도 이런 일들은 많이 일어났습니다.


대표적으로 19세기에는 루이 17세 사건이 있었고(프랑스 혁명 당시 어린 나이에 감옥에서 죽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아들. 이후 부르봉 왕실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사기꾼들이 수십년간 끊임없이 출현함) 20세기에는 황녀 아나스타샤사건이 유명하죠 - 확실히 에카테리나 2세가 이에 대처함에 있어 과분한 측면이 있었다고 앞서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국내도 아니고 외국을 떠도는 사기꾼 하나를 잡아들이기 위해 군대의 장성들과 군함까지 동원한 것은 확실히 이례적인 일이었죠. 더구나 그 사기꾼이 무슨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다른 왕위 요구자들처럼 유럽 각국의 왕실을 돌아다니면서 복위를 위한 군사 요청을 하고 다닌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까지 여제가 과한 반응을 보였을까 새삼 슬며시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마도 이는 여제 에카테리나의 정통성에 대한 문제와 직결되는 사안이기도 할 것입니다. 에카테리나 2세는 앞서 소개해드린 바와 같이 표트르 대제의 외손주 며느리였습니다. 순리대로라면 여제가 아닌 황후가 될 여인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녀는 한 때 황후이기도 했었습니다만 정치적 격변에 의해 현재 권좌에 올라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표트르 대제의 친손자가 표트르 2세로 차르가 되었지만 후사를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난 뒤 이제 남은 표트르 대제의 남계 상속자는 외손자로 에카테리나의 남편인 표트르 3세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제의 유일한 남계 혈손은 이름만 대제와 같을 뿐 어느 한 구석도 외조부와 닮은 곳이 없었고, 더구나 정치적 능력이나 군사적 식견 또한 전무한 덕에 거듭된 실정을 일삼다가 신하들의 반란을 맞아 재위를 잃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쿠데타의 주역은 황제의 아내인 황후였습니다. 놀랍게도 표트르 3세의 황후 에카테리나가 남편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던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 두 사람 사이에 이미 아들이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어린 황자가 황위에 오르고 그의 어머니가 섭정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황후가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던 것입니다. 러시아에는 어떤 연고도 없는 외국 출신의 황후 - 당시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이 그랬듯이 에카테리나는 독일 영방의 소공국 출신이었습니다 - 가 러시아 제국의 최고 권력을 장악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녀는 궁정 세력의 꼭두각시에 불과하고 누군가 그녀 뒤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는 세력이 있을 것이라 의심했지만 유능한 그녀는 그 모든 예상을 뒤엎고 스스로 권력을 장악하고 그 방대한 제국의 키를 직접 잡아 나갔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지배자에게 그늘이 없을 수는 없었습니다. 힘으로 누군가를 몰아내고 무엇인가를 빼앗은 이.



그것이 또한 정당한 것이라 할지라도 여제의 입장에서는 언제나 불안할 상황일 수 밖에 없는 것이었지요. 게다가 지난 2년여에 걸친 대규모 농민 반란(푸가초푸의 난, 1773~1775)은 여제에게 있어 자신에게 반대하는 자들에게 극도의 경각심을 갖게 하는데 일조했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에카테리나 2세는 외국을 떠도는 떠돌이 사기꾼에게까지도 극도로 잔혹한 처벌을 내렸던 것이죠.


그러나 민중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위정자들에게 시달렸고 저 어딘가에 계신 높으신 분들은 그저 멀기만 한 존재들일 뿐이었죠. 그래서 그랬을까요? 그들은 끊임없이 전설을 만들어 냈습니다. 황녀 타라카노바는 진짜였고 진짜 황녀를 두려워한 무서운 여황제에 의해 외딴 성에 유폐되었고 그런 그녀에게 비극적인 죽음이 다가온다고...아마도 무도한 여제에 대한 반감이 이런 전설을 만들어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훗날 어느 화가를 만나 극적으로 화폭에 담기게 되었던 것이죠. 그리고 우리는 그의 이미지를 통해 전설의 황녀를 만나볼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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