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09 14:54
1. 레이디 버드를 드디어 봤습니다. 주인공의 어머니가 너무너무 불쌍해서 화가 났습니다. 너도 꼭 너같은 딸 낳아서 길러보라고 하고 싶더군요. 고생하는 엄마 등골 뽑아서 집을 담보잡아 동부의 비싼 학교를 가야 옳으냐고 화면 안으로 들어가서 잔소리를 하고 싶었습니다.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나이 먹어서 간호사로 한 푼 한 푼 돈을 벌어 가톨릭계 사립고등학교 (장학금을 받는다고 영화 안에서 설명하지만 역시 공립보단 비쌈)를 보내놨더니 한다는 소리가 싼 주립대는 안가겠다니. 엄마는 돈 쓸 줄 모르는 줄 아나... 게다가 아들은 버클리를 나와서 마트에서 캐셔로 일하고 집 나온 여자친구까지 같이 살고 있죠. 이 게시판에서 누가 썼던데 이게 서브프라임 모기지 직전의 일이죠? 리파이낸스 냈으니 세컨 모기지 못갚으면 다섯식구 길에서 자야하는 거예요. 대학이 무슨 문화를 즐기러 가는 데인 줄 아나. 싼 값에 빨리 학위를 하고 돈을 벌어 자립할 생각을 해야죠.
2. 비비씨에서 만든 아리스토크랏츠 aristocrats를 봤습니다. 공포영화같이 느껴지더군요. 부유하고 지위있는 여성의 인생이 역시 권력있는 남자 손에 달려있는 사회 이야기예요, 증조부가 왕이었다는 대갓집 규수 네 명이 남편감을 찾아서 하나하나 인생의 모험을 겪습니다. 이 네 명의 증조부가 왕이었다지만 정실 자식은 아니고 첩의 후손이라고는 해요. 하지만 아무리 지참금이 많고 집안이 명문가라도 이 당시 여성들의 삶은 그저 남편에게 달려있더군요. 남편을 얼마나 행복하게 하느냐가 인생의 승패를 가름해요. 주인공인 둘째 딸은 일생동안 자식을 스물 두명을 낳습니다...아니 숫자가 잘못된 게 아니예요. 첫 남편과의 사이에서 열아홉명을 낳고, 둘째 남편하고 사이에서 세 명을 낳습니다. 그냥 가임기 내내 배 불렀다 꺼졌다 한 거죠. 그리고 어쩜 이렇게 귀족사회란 죄받을 집단 들인지요. 돈을 물쓰듯 쓰고 심심하니까 도박에 빠져요. 그것도 아니면 유럽 여행이구요. 저렇게 살다 등에 칼맞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왕은 귀족보다 더 나쁘구요. 판단 능력도 없으면서 소리만 지르죠. 코스튬 드라마 답게 코스튬 보는 재미는 있어요. 첫째 딸은 열여덟살 연상의 남자와 허락받지 못한 결혼을 하고, 주인공 둘째 딸이 여덟살 연하의 가정교사와 재혼하고, 넷째는 불륜에 빠졌다가 돈없는 군인과 결혼합니다. 약간 박경리 선생의 김약국의 딸들 비슷하기도 하네요. 캐릭터들이 마구 돈 쓰는 걸 보고 눈이 휘둥그레 졌다가도, 그들의 남편이 소리지르거나 하면 저까지 가슴이 덜컹하네요.
2018.06.09 15:23
2018.06.09 16:07
2. 다운튼애비의 18세기 버전 쯤 되나요? 한번 보고 싶네요. 주인공인 레녹스 자매들이 영국에선 꽤 유명한 인물들이었나 봐요. 벤 다니엘스는 엑소시스트를 보고나서 관심이 가게된 영국배우인데 이 드라마에 나오네요. 19년 전이니 지금보다 젊게 나오겠군요
2018.06.09 18:18
1. 따져보면 다 맞는 말씀입니다만 어릴 때 다 그렇죠 뭐 철들고 집안 형편, 어머니 사정 다 생각해서 행동하는 캐릭터가 있다면 그게 대단..
2018.06.09 19:32
2018.06.09 19:50
2018.06.09 20:05
2018.06.09 19:52
1. 저도 주인공이 동부의 비싼 사립대에 가겠다고 난리난리...부리는 거 보고 참 철없구나 싶으면서도 사실 저 나이때는 다 그렇지, 뭐 ㅎㅎ 싶더라는...영화가 그 나이 또래 청소년들이 가진 똘끼라든가 승질머리라든가, 여튼 이런 예민한 부분들을 잘 그려낸것 같았어요. 재밌게 봤네요.
2018.06.09 23:03
1. 음.. 영화 보면서는 이런 생각을 못 했고 유독 딸에게 빨리 자립하라고 닥달하면서 필요한 물질적 감정적 지원은 전혀 하지 않는 부모들이 저에게는 굉장히 비합리적으로 보이더군요. 일종의 학대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2018.06.09 23:15
미래에 서브프라임 안 터져도 저렇게 틴에이저에게 질질 끌려가는 가정은 노후가 없어요. 어제까지 직장이 번듯해도 two weeks notice로 바로 잘리는 게 미국이예요. 아버지 머리가 허연데 몇 년이나 더 벌 수 있는지 생각을 해야죠. 저 집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게 주인공의 선택이나 잘못은 아니나 그럼 객관적인 사정에 대해서 이해를 해야죠. 저 집 어머니가 마트에서 한 말이 맞아요. 부자들이나 잡지를 사서 침대에서 보는 거야. 잡지는 도서관에서 봐. 아버지 직장에서 지금 구조조정 들어간단다. 너희 아버지와 나로서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도 벅차다. 어머니는 현실을 계속 상기시켜주는데 딸은 계속 현실 부정중이죠. 저렇게 현실감각 없는 틴에이저들을 통해서 부모 등골 빨아먹는 게 바로 레디이버드에게 어드미션 준 비싼 학교예요. 일년에 자식 한 명을 동부 사립학교에 보내려면 요즘 돈으로 매년 8만달러 들어요. (웬만한 학교는 9만달러) 1억에서 조금 모자라죠. scholarship 받는다 했는데 평균적으로 등록금의 50%를 받고, 첫 일 년만 주는 경우가 가장 많아요. 즉 1년에 장학금을 고려하고 빚이 아무리 적게 잡아도 6만달러, 4년이면 24만달러가 빚 원금으로 쌓인다는 말이예요. 순탄하게 졸업하더라도 첫 직장에서 받는 돈이 보통 6만달러 남짓. 사회초년생이 그걸로 렌트비내고 밥해먹고 24만달러 원금을 갚는다는 게 얼마나 비현실적인가요. 30대 사업가가 길거리에 나가서 내가 비즈니스를 하려니 돈을 달라고 사정해도 1억원 투자할 사람이 드문데, 열여덟살에게 2억 6천만원을 대출 투자하는 게 자식 가진 부모죠. 부모라는 이유로 인질이 된 거나 마찬가지예요.
금전적인 면만이 아니예요. 수학을 못하면서도 수학경진대회에 나가고 싶다, 하니까 카운셀러가 "Math is not your strongest suit"하고 답하는데, "Well we don't know it yet" 하죠. 없는 수학 능력이 경진대회 나가면 생기나요? 없는 돈이 대학입학 허가 받으면 나오구요? 자기 자신의 능력이나 자기 가족의 재력에 대해 객관화가 안되고. 저 집이 겪은 건 엘리자베스 워렌이 기술한 'two income trap'이예요. 저 집은 어머니 쓰러지면 끝이예요. 엄마가 대들보고 가장인데 딸내미는 나가서 아르바이트나 하지 한 마디 한 마디 엄마를 미치게 만들죠. 요즘은 틴에이저면 엄마한테 지랄같이 굴어도 된다고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건지. 끝에 I love you 한 마디 한 거 가지고 용서해주다니 자식이 웬수죠.
인트로에서 주인공이 팔 부러뜨리는 거 보고 "의료비!" "아니 엄마가 간호사니까 보험은 괜찮겠군"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역시 어머니 덕)
2018.06.11 14:47
저 영화보면서 돈 걱정만 하는 리뷰를 썼던 사람으로서-.- 겨자님 의견에 구구절절 동감입니다.
2018.06.10 1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