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피터 린치 3부작을 읽고 있습니다. 훌륭하네요. 특히 'Learn to Earn'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쓴 책인데 내용이 충실합니다. 책 표지가 싸구려처럼 보여서 떨떠름했는데, 가격이 싸고 표지 디자인이 나빴을 뿐 내용은 좋네요. 자본주의의 짧은 역사 ('A short history of capitalism') 챕터를 읽으면서, 아니 이걸 이렇게 쉽게 풀어쓸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했죠. 자본주의 이전에는 생산수단을 누가 소유하고 있었는지, 왜 자본주의가 경제체제인데도 정치체제를 바꾸는 역할을 했는지, 주식회사의 기원은 무엇인지, limited liability의 함의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2. 몇년전부터 일본에서는 이세계 물이 유행했는데, '이세계 주점 노부'가 큰 성공을 이끈 뒤 비슷한 작품들이 우후죽순처럼 돋아나고 있죠. 그런데 이 작품들을 읽다 보면, 이세계로 건너간 사람들 대부분이 안정적인 제도를 당연히 받아들이면서 경제활동을 합니다. 모험가/전사/상인 등 길드가 형성되어 있고, 과제 수행에 따라 랭크가 비교적 공정하게 매겨지고, 희귀한 재료를 팔면 길드에서 정당한 값을 쳐줍니다. 바로 제도 (institution)가 안정적이란 의미죠. 만일 이세계가 중세와 같다면, 이세계로 간 사람들 대부분은 순식간에 사기를 당하고 노예로 전락하게 될 겁니다. 이세계로 건너간 개인의 물질적 성공은 사실은 제도의 공정성, 투명성에 기반해 있지요. 자본주의가 대단한 이유는 바로 제도를 바꿨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기 때문이죠. 저는 '터무니없는 스킬로 이세계 방랑밥'과 '이세계 주점 노부'를 재밌게 읽었는데, '책벌레의 하극상'과는 달리 제도가 합리적으로 짜여져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제도가 합리적으로 짜여져 있으면 혁신을 가져오기 쉬워지고, 주인공들은 모방을 통한 혁신(이이토코토리 良いとこ取り)으로 금새 승승장구하게 되죠. '터무니...'에서는 감자튀김을 선보인다든가 '이세계 주점 노부'에서는 온갖 일식을 들여온다든가 하죠. 


나라가 잘 살려면 제도가 선진적이 되어야하고, 그 중에서도 자본 시장이 선진적이어야 하죠. 그게 바로 김경율 회계사가 페이스북에서 다음과 같이 적은 이유라고 봅니다.


김경율

September 14, 2019 · 

검찰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파라 파 깊이 파 얇히 파면 니 죽고

펀드건은 충분히 넓고 깊은 사건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 한국 정치, 경제에 구조화된 사건이기도 하다.

혁신성장, 벤처육성한다고 금산분리 완화, 차등의결권 부여 등 뻘짓하지 말고 이번 수사 제대로 하면 코스닥 등 자본시장 잘 돌아간다. 내가 봐선 가장 시급한 벤처시장 활성화 대책이다.

지금 코스닥이 그게 어디 시장이냐?

파라 파 깊이 파 얇히 파면 니 죽고


3. 유시민씨와 진중권씨가 JTBC 신년토론에 나왔군요. 그런데 저는 이 사람들이 아니고 이 정부의 경제정책을 책임진 사람들, 청와대 대변인, 그리고 이 정부의 경제정책에 비판적이거나 찬성하는 경제계 인사들 (교수, 기업인들 포함)이 나와서 토론을 해야한다고 봅니다. 지금 정부가 추진한다고 하는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서 경제정책을 책임진 사람들이 얼마나 설명할 수 있으며, 단기적으로 이런 저런 부작용이 있을 테지만 장기적으로 이런 저런 이득이 있으므로 믿고 따라와 달라고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2019년 1월에는 유시민 작가가 이 토론에 나왔더군요. 유시민 작가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결정합니까? 2020년에는 정치개혁을 주제로 유시민 작가가 또 나오더군요. 이 사람이 우리나라 정치개혁을 주도합니까? 대변인들은 왜 토론에 나오질 않는 거지요? 경제는 정말 중요한 문제인데 왜들 이렇게 느긋한지 모르겠군요. 부동산 정책 놓고 김현아 의원과 김현미 장관 모셔놓고 이제까지 문재인 정부가 펼친 부동산 정책의 의도와 실제 결과에 대해서 서로 납득이 가도록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4. '두 교황'을 좀 보다 말았습니다. 조나단 프라이스 연기 잘합니다. 안소니 홉킨스보다 더 잘합니다. 하지만 저 고운 신발은 누가 지었을까, 저 예쁜 수단은 누가 세탁해서 다렸을까, 라는 생각을 하다보니 영상을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없더군요. 신부님들이 멋진 옷을 차려입고 나오기 위해서 수녀님들이 많은 봉사를 하신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가진 두 명의 남자가 고담준론을 나눕니다. 사치스런 삶이죠. 설혹 자기 손으로 자기 비행기표를 끊고, 오래된 신발을 신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정신적인, 지적인 측면에서 사치스런 삶입니다. 고단한 생활에 매몰되지 않고 형이상학적인 생각에 몰입할 수 있는 그 여유가 곧 사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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