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오고 말았어도

2019.10.20 00:49

Sonny 조회 수:756

도로는 텅 비었어요. 신호등은 본래의 지겨운 임무에서 해방되어 욕심많은 인간들의 빨갛고 파란 별 흉내를 내고 있어요. 규칙적으로 늘어지는 우유빛의 작은 별들. 새빨갛게 부릅뜬 후미등을 물고 물며 나를 실은 택시는 빨간 꼬리를 늘어트려요. 내가 타고 있는 이 차도 다른 누군기에겐 야경의 혜성으로 비춰질 수 있을까요. 목격한 그도 목격된 나도 빌고 있는 소원은 똑같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요. 꺼져버리듯 잠들고 싶다고.

잠은 작은 죽음이죠. 매일밤 죽기 전, 하루의 마지막을 사탕처럼 굴리던 우리의 대화를 생각해요. 몸은 시체가 되기를 원하는데 반쯤 감긴 눈으로 우리는 마땅히 치뤄야 할 작은 죽음을 유예해요. 12라는 숫자의 경계를 넘기고 00이라는 다음날의 시작에도, 우리는 감히 잠에 들지 않아요. 별 거 없이 킥킥대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신이 부과한 마감을 넘기죠. 마침내 잠들기 전, 서로 남긴 유언들은 왜 그렇게도 가볍고 생명만을 담고 있는지. 잠에 힘껏 저항하는데도 더 없이 이완된 몸. Lucid death.

미국의 어느 작가가 그러더군요. 밤은 부드럽다고. 술과 사치로 밤을 더 이어가지 못한 그의 일생을 떠올려요. 생에 맞서는 반역은 몸과 정신 모두에 형벌이 뒤따르는 걸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더 은밀하고 야금야금 저항을 해야해요. 아직 따뜻할 때, 노을이 질 무렵부터 둘의 밤을 부르고 다시 생을 이야기해요. 죽지 않은 나와 살아있는 당신. 눈꺼풀 하나로 세상을 다 덮어버릴 수 있는 우리의 권력을 만끽하며. 아직 밤이 아니니 우리는 잠들지 않았고, 원래 우리의 하루는 길게 늘어진다고. 핸드폰을 부여잡고 어둠에 맞서는 우리의 무모함이, 술과 야경에 감싸일 때 우리는 무엇에 취하게 될까요. 죽음? 삶? 같이 떨어져내렸으면 좋겠어요. 눈이 풀리고 혀가 꼬이면서 말이 버벅일 때, 우리의 정신은 별똥별의 쌍곡선을 그리고 있어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402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95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564
123436 현재 한국 커피집의 상황 [9] 황재균균 2012.07.17 6298
123435 외국, 특히 영미권 배우도 발연기가 있을까요? [39] 해삼너구리 2012.07.03 6298
123434 슈스케3 '초강력' 스포사진 (탑10? 12?와 관련된거니...감당 할 수 있는 분만 클릭하세요.) [16] 자본주의의돼지 2011.09.10 6298
123433 듀나in) 고속버스 타는데 일반좌석과 우등좌석 차이가 크나요? [19] 꼼데가르송 2010.10.31 6298
123432 남자들이 질투심이 강한가요? [25] 자두맛사탕 2012.10.04 6297
123431 세상에서 젤 능청스러운 광경 [13] Bigcat 2016.03.17 6295
123430 썰전 5분 감상 후 소감 - 김구라는 손석희를 넘었군요. [19] 생선까스 2013.03.03 6294
123429 [커피머신] 가정용 커피 머신 - Ⅰ. 캡슐머신에 관해서.. [13] 서리* 2011.01.02 6294
123428 오늘의 스티브 유, 망했어요. [23] chobo 2015.05.27 6291
123427 안젤리나 졸리 은퇴, 신정환 네팔 체류 [16] soboo 2010.09.29 6291
123426 오늘 임용고시 2차 발표나는 날 맞나요? [23] 으으으 2012.01.06 6290
123425 박원순의 구두 [34] 푸른새벽 2011.09.08 6290
123424 [뻥 아님] 태풍에 냥이랑 강쥐 날아가는 거 봤음;;;;;;;;;;;;;;;;;;;;; [16] 1분에 14타 2010.09.02 6288
123423 우리집을 공개합니다. [28] 자본주의의돼지 2012.05.01 6287
123422 [사진] 모 대학 막장 신입생 환영회가 이런거였군요 [25] wonderyears 2011.03.01 6286
123421 [올림픽] 대단한 박태환 / 협회가 버린 여자배구 [13] 레사 2012.07.29 6285
123420 화딱지가 나서 씁니다. [29] 메피스토 2011.05.24 6285
123419 겨드랑이 영구 제모 받아보신 분 있나요? [15] 순정마녀 2012.06.01 6284
123418 라면 뭘로 끓이세요??? [13] 서리* 2010.06.06 6284
123417 영화 촬영 현장의 그들.. (스압주의) [4] 보람이 2013.02.13 628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