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쓰지않기' 라는 글에 이어쓰자니 다소 뻘쭘하게 적어보는 감상기입니다. ^^;

모든 영화에 감상기를 쓰진 않아요. 할 말이 생기는 영화들이 있고, 미드소마가 그 중 하나네요.  


- 진지한 의문입니다. 미드소마는 호러물일까요? 아무래도 제게는 호러물을 빙자한 블랙코미디처럼 보였습니다만.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고, 어떤 장면에서는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적나라한 신체 훼손을 위주로 한 몇몇 고어한 장면이 나오기는 하는데 고어에 이르는 장면이 역시 무섭지는 않고요. 하지만 블랙코미디가 되기에도 어딘가 한 뼘 모자라다는 게. 


- 호흡은 느리지만 지루한 영화는 아닙니다. 촬영, 편집, 사운드, 미술이 열일을 합니다. 호러보다는 포크 쪽에 방점이 찍힌 영화가 아닌가 합니다. BBC 다큐멘터리 보는 기분도 들었거든요. "하지제의 3일째 날이 밝았습니다. 오월의 여왕을 뽑는 날이죠. 마을 처녀들 가운데 한 명이 오월의 여왕이 되어 이들의 경작지에 풍요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겹겹의 둥근 원을 그리며 손을 잡은 마을 사람들 대형을 보여줌) 중간중간 나레이션이 삽입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거에요. 


- 불안정한 정서의 여자주인공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감독판을 보면 크리스티안이 나쁜 놈이라는 게 더 확실히 잘 보인다는데, 감독판을 봐야 설명이 된다고 해서 감독판까지 보고나서 해석해야 할 의무는 없죠.  본판만 봤을 때는 영화를 끝까지 보더라도 크리스티안이 나쁜 놈이다란 생각이 그다지 안들더군요. 그냥 평범한 사람이죠. 남녀간의 사랑이나 사람에 대한 기대가 적어서인지도 모르겠어요. 헌신적으로 사랑해주면야 좋지만, 정서가 불안정한 파트너가 가족 문제때문에 힘겨워하며 오랜 기간 의지하기만 한다면 파트너 된 입장에서는 힘들것도 같아요. 덜 사랑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여자친구가 힘들 때 차버린 매정한 놈이 되기 싫어 착한 척 하는 것도 알겠습니다만 그런 '착한 척'이나마 하는 게 낫다, 라는 주의라. 


- 하지만 플로렌스 퓨는 매력적이더군요. 저는 이 영화에서 이 배우를 처음 보았어요. 얼굴을 보았을 때 '어? 젊은 케이트 윈슬렛이다!' 라는 느낌이었네요. 주인공 설정 외 인물 구성이나 캐릭터에도 아쉬움이 좀 있습니다. 주인공 커플과 떨거지들 느낌인데 '논문'말고 다른 것으로 주요 등장인물 간 긴장감을 높였으면 좋았겠어요. 애초 공동체로 안내하는 역할 성별을 여자로 하고, 여자친구와 헤어질까 말까 고민하는 크리스티안을 유혹해서 임신을 함. 얘가 여자주인공의 연적인가 아닌가 아리까리한 가운데 마을에 도착해서는 어쩌구 저쩌구... 이런 설정으로 가면 어땠을지. 


- 장애인이 한 명 나오는데 장애인의 외양을 호러 요소로 써먹는 진부하고 오랜 관습에 대해서는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유전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죠. 이 외 영화 속 공동체는 생각보다 덜 불쾌하고 덜 기이합니다. 심지어 생애 주기에 대한 설명에서는 고개가 끄덕거려질 정도였죠. 힌두교에도 인생 4단계라는 게 있고, 다른 종교에도 비슷한 말들이 있을 거에요. 공동체 묘사에서 너무 미술적인 면에만 치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주인공에게 찾아오는 마음의 안식과 더불어) 연출에서 이 공동체에 일말의 호의가 있다는 인상도 받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을은 감추어져 있는 게 많죠. 90년에 한 번 한다는 이상한 축제뿐 아니라 계획 출산을 하는 폐쇄적인 공동체라면 영아 살해도 분명 있을 거란 생각이 들거든요. 


- 주인공이 너무 하는 일이 없습니다. 혹은 주인공은 무언가 할 의욕을 아예 잃었을 수도 있고요. 후자에 가깝겠군요. 영화의 멘털리티를 보자면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꼴리아'와 유사합니다. 세계의 멸망이나 이질적인 세계로의 편입이나 큰 차이는 없지 않겠어요? 여하간 호러 강도가 낮은 것은 아마도 이때문이겠죠. 저항하지 않는 주인공이니까요. 그렇다고 공동체가 스멀스멀 음험하고 기분나쁘게 묘사되는 것도 아니고요. 심지어 나머지 등장인물들도 죽을 정도로 나쁜 짓을 한 것까진 아니지만 '쟤네, 저 꼴 당할 줄 알았다'라는 이유를 심어주기까지 하니. 주인공과 다른 인물들이 공동체와 대적하는 느낌이 안들고, 이것이 호러 강도를 확 낮추어버리네요. 평범한 사람들에게 닥치는 공포가 아니라 징벌의 느낌이 들어서요. 


- 최근 본 서던리치와 비교하자면, 서던리치 쪽에 점수를 좀더 주고 싶군요. 둘다 음악, 연출, 촬영 등으로 승부를 보는 비슷한 부류라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미드소마의 결말은 아주 깔끔하죠. 하지만 저는 서던리치가 주는 여운에 더 마음이 갑니다. 심리 묘사도 이쪽이 더 좋았구요. 유전보다는 별로였고요. 포크 호러로는 넷플릭스의 복수의 사도가 평가가 좋더군요. 척 보기에도 이쪽이 더 무서워 보입니다. 게시판에서의 리뷰를 기다립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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