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저는 제가 듀게에서 실수한 일들을 몇가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미국 의료가 생각보다 괜찮다고 한 것이예요. 한 십년도 넘은 구 게시판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당시 저는 젊었고, 병원 갈 일이 거의 없었고, 가더라도 감기 정도였으며 제 보험료는 꽤 쌌어요. 그때는 의료기술과 의료 시스템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나이먹은 사람에게 질병만큼 고통스러운 건 의료비라는 것, 나이먹으면 아무리 자기 관리를 해도 점점 아픈 데가 생긴다는 걸 몰랐어요. 


오늘 너무 많이 울어서 체력을 소진해 저절로 잠이 올 정도네요. 최근에 중병일 지도 모르니 검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검사비는 제가 큰 맘 먹고 생각한 액수에 영을 하나 더 보태서 나왔더군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계획을 세워놓고 플랜 에이, 플랜 비, 플랜 씨까지 만들었습니다. 


지금 죽어도 요절은 아니에요. 제 또래에 이미 죽은 친구들도 몇 명 있고.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운 것은 아니예요. 제가 속한 조직에서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어요. 아직 중병이 확정된 것도 아닌데, 프로젝트에서 저를 제외하고, 불이익을 주고, 이럴 줄 생각못했어요. 당연한 건데. 하지만 참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칼을 꽂더군요. 전체 프로세스가 하루도 걸리지 않았어요. 사연은 긴데 엿먹어라 하고 나왔어요. 제가 이렇게 싸늘하게 화를 낸 게 지난 10년만에 한 세 번 있는 일 같네요. 저는 성실하게 일했고 벤치마크보다 더 높은 성과를 올렸는데, 그게 큰 의미 없네요. 너무나 클리셰지만.


한가지 재미있는 건 이 와중에도 제가 평소에 똑똑하다 생각했던 사람들은 똑똑하게 행동한다는 거예요. 제가 설명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 똑똑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내가 도와줄 게 뭐야. 말해”라고 말하더군요. 상황 파악은 끝났고 자기가 할 일을 알려달라는 거죠, 그리고 제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과연 그렇게 행동하구요. “지금 너를 돕지 않으면 내가 도대체 어떤 인간이겠니?”라고 답했어요. 내가 이 사람을 믿어서 배신당한다면 그건 저 사람의 탓이 아니고 나의 결정이 잘못된 거다 라고 생각한 사람. 이 사람은 마음이 깨끗하고 선하구나 하고 생각한 사람은 이 상황에서도 그렇게 행동하더군요. 이 사람은 겉으로는 친절하게 행동하지만 결정적일 때는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은 바로 뒷통수를 치구요. 이 사람은 무책임하구나, 하고 생각한 사람은 바로 그렇게 행동하구요. 그리고 나를 가장 생각하는 사람이 누군가 알게 되네요. 


2. 존 르 까레의 ‘나이트 매니저’를 다시 보았습니다. 책 말고 드라마요. 톰 히들스턴이 멋지게 나오죠. 이 사람이 조나단 파인스 라는 첩자로 분해서 리처드 로퍼라는 무기상의 근거지에 침투합니다. 코키라는 사람이 있는데, 리처드 로퍼 (보스) 의 기존 심복이예요. 코키는 조나단이 싫습니다. 그래서 해산물 식당에서 소란을 피우고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웨이터에게 시비를 겁니다. 아니 우리 보스의 아가씨가 랍스터 샐러드를 달랬는데 없다면서. 그런데 왜 옆자리에는 랍스터 샐러드를 주는 거야. 뭐 미리 주문한 거라고? 그럼 저 주문을 취소하고 우리 테이블에 랍스터 샐러드를 갖다줘. 


그러자 조나단 파인스가 일어나 싸움을 중재합니다. 우리 친구의 행동에 대해서 사과합니다. 사과의 뜻으로 제가 이 테이블의 식사를 사도 돨까요? 그리고 샴페인도 한 병 더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다시는 이런 실례가 일어나지 않도록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호텔의 나이트 매니저로 단련된 고객 접대 기술을 보여주죠. 리차드 로퍼는 무기상이지만 상류사회의 맛을 즐기는 사람인지라, 코키를 창피하게 느끼고 조나단에게 끌립니다. 


이 장면에서 조나단이 폭력에 대응하는 부분이 발레처럼 아름다워서 자세히 봤습니다. 비굴하지도 않고 오만하지도 않게 우아하게 갈등을 봉합하는 부분이죠. 이런 매너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사람을 매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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