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불어달라고요?

2018.06.02 16:08

Kaffesaurus 조회 수:1006

정원손질을 보다가 거실로 들어올때 얼굴을 좀 찌푸렸나보다. 예스퍼가 선물이한테 사용하는 목소리로 다정다감하게, 어디 다쳤어요? 라고 말한다. 나는 순간 살짝 까진 손등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생각한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동시에 둘다 까르르르 맛있게 웃는다. 나는 정말 이 청년의 웃음 소리가 좋다.

뭐 어쩌라고요? 호 불어달라고요? 라고 농담하는 그에게, 다 너의 잘못이야 애한테 말하듯이 하니까 내가 어른인걸 잊었잖아 라고 답한다. 곁에 있는 선물이는 미간까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 다쳤으면 약발라야지 하면서 대화에 끼어든다. 


첫 싸인은 흰머리였다. 염색하면 된다.

다행히 엄마를 닮아 주름은 많이 않지만 눈밑의 거무스래한 그림자. 화장과 안경으로 가린다. 

피부도 근육도(근육이라 말하지만 그냥 살) 더이상 단단하지 않지만 뭐 선물이 아니면 누가 알랴?

진짜 요즘 들어 심각하게 느끼는 노화의 싸인은 내가 더 이상 하루 종일 구두 신고 돌아다닐 수가 없다는 거다. 이전 9cm는 정말 10분만 가능하고, 7cm도 2시간 이상 걸어다니면 다음날까지 느껴진다고, 어떻하지? 좀 있으면 5cm 내려가야 하는 거 아닌가 ? 흑흑 거렸더니 그는 마구 웃기만 한다. c책이 브런치에 연재되었다는 메일과 함께 사진 몇장을 보내드렸더니 국민학교때 선생님은 아직도 변한게 없다고, (선생님 기억력이 걱정되는) 말씀하시는데, 나는 정말 문자그대로 뼈져리게 알고 있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말은 정말 거짓말이다. 몸은 거짓말 하지 않고 이치에 맞게 변화한다. 나이가 든다고 지혜니 인내니 이런 걸 저절로 받지도 못하고 남들은 나보고 어른이라고 하는 데 맞는 말인지. 내마음 어딘가에는, 깊게 숨지도 않고 어린 내가 있다. 어린 아이인 나와, 애같은 나는 다르다. 그리고 좀더 생각하면 내가 좋아하는 어른의 모습, 겸손하고 예의바르며,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포용과 사랑이 많은 어른의 모습은 어린 아이인 나의 모습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원하는 어른이 되지 못하는건, 우리의 어린 모습을 저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나보다 마음이 더 큰 선물이가 예스퍼랑 노는 모습을 가만히 보면서 생각한다. 그리고 살짝 까진 손등을 내밀어도 이 괴상한 행동을 함께 웃으며 가볍게 날려보내는 사람들과 함께여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선물이가 장난을 하자 예스퍼가 또 까르르 웃는다. 본인은 관리하기 힘들다고 투덜 거리는 금발의 곱슬머리가 파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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