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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드라마를 다량으로 소화하는 편은 못되는데, 요즘은 영화 1987에 꽂혀서 계속 돌려 봅니다. 재미있다 표현하긴 조심스러운 작품이지만 영화적으로 너무 재미있고 볼 때마다 잘만든 것 같아요. 초반에 김윤석이 제단에 절하고 불안한 음악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 몰입되는데, 그 다음의 대사 ‘남영동에서 시낭이(?)가 깨졌습니다’는 계속 봐도 잘 못 알아듣겠어요.  

- 듀게 트렌드에 안 맞게 무척 오랜만에 일드를 하나 봤는데, 최근작은 아니고 2014년 드라마 입니다. 박하선 주연으로 리메이크도 돼서 얼마 전에 종영한 모양인데, 별로 화제성이 없어 보이는 걸로 봐선..? 근데 원작은 참 재밌었어요.
내용은 드라마계의 영원한 핫템이자 막장과 고급짐을 넘나들 수 있는 소재인 불륜 스토리입니다. 불륜을 아예 주제로 하고 있기에 이를 통해 결혼생활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나름 어른 성장드라마의 느낌도 있고, 불륜 커플과 여러 주변인들-아이, 배우자, 가족 바람으로 고통 받는 이들, 죄책감 있는 타입과 없는 타입, 즐기는 타입과 집착하는 타입 등-도 등장합니다. 

- 가치판단을 배제한 불륜은 드라마 속 대사가 말하듯 ‘궁극적인 연애’의 모습일지도 모르지요. 결혼한 커플에게는 어쩔 수 없는 생활감이 있고 사귀는 커플에게는 결혼으로 갈지 말지를 향한 결정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면, 불륜 상태의 커플에게는 둘 사이의 그 순간의 감정만이 존재할 뿐이니까요. 게다가 소설 속 주인공처럼 ‘금기’라는 시련마저 주어져 절절한 로맨스를 완성시키니.. 물론 그 완결의 끝에 따라오는 책임은 감당해야 하겠지요. <불륜은 할 때보다 들킬 때의 죄가 더 무거운거야> 라고 드라마에 나오더라고요.

- 연출은 완성도를 떠나 분위기가 약간 90년대 느낌적인 느낌? 기무라 타쿠야가 드라마로 전성기를 맞던 그 시절에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것 같기도.. 드라마 한 개 보고서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요. 어쨌거나 <하얀 거탑> 각본 쓴 작가라서 그런지 짜임새나 대사 듣는 맛이 찰집니다. 감정선의 표현도 섬세하고요.

- 여자 주인공이 발코니에서 무심히 아이스바를 먹으며 불난 이웃집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드라마의 첫 장면입니다. 아이 없이 햄스터(햄스케, 햄미)를 자식처럼 돌보는 남편과 밤에는 손을 꼭 맞잡고 잡니다(!). 평범한 파트타이머인 여자는 고지식한 생물 선생과 어쩌다 연애를 시작하게 되어, 곤충을 보러 다니며 데이트를 해요.ㅋㅋ 주인공 커플에 대한 순진한 캐릭터 설정은, 아마 바람을 핀다는게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근데 좀 놀랬던 점 하나는, 학교 교실의 모습이 꽤 적나라하게(?) 묘사된 거였어요. 일본 공교육 현장이 막장화 된지는 오래인걸로 알고 우리나라도 뒤질세라 쫓아가는 상황이긴 한데, 드라마에서도 수업 중에 애들이 거의 자거나 대놓고 떠드는 모습 같은 게 그대로 나오더군요... 국내 리메이크 판에서는 이게 좀 그랬는지 아예 '대안학교 생물 교사'로 설정을 바꾼 것 같았어요.)

 여주인공 시점의 나레이션이 드라마 내내 나오는데, 기억에 남는 대사 중 하나는
<그에게 거절당한 걸 남편에게 화풀이 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할 수 있는 상대가 있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도 사실입니다.
부부의 존재가치는 의외로 이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근데 참.. 이 만만한 햄스터 남편 땜에 나중에는 눈물이 날 뻔 했어요. 

- 또 한 커플이 등장하는데, 이쪽은 좀 더 성인 연애 담당입니다. 여자는 외모빨로 부자 남편을 만나 영혼 없고 무시당하는 결혼 생활을 하는 캐릭터로, 그 영혼 없는 생활을 유지할 동력을 얻기 위해 바깥에서 연애를 합니다. 아이 키우는 가정주부가 시간을 낼 수 있는 평일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에.
어느 날 남편의 일 관계로 만난 무명의 화가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데, 화가는 돈도 없고 좀 괴팍하지만 통찰력과 솔직함을 갖춘 인물로, 여자가 어떤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금세 꿰뚫어 봅니다. 그리고 나름 연애 선수인 여자와 쉽게 넘어가지 않는 남자의 밀당이 시작되는데, 이 과정에서 서로 한 방씩 주고받는 걸 관전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 커플의 백미는 드라마 후반부에 나오는 <우리 돈 모아서 미술교실 할까? 도화지와 크레용으로...>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여기서도 눈물 날 뻔.

- 시작은 애틋하고 과정은 장렬하나, 불장난의 끝이 해피엔딩이면 안되겠죠. <그럼 주부들의 인생은 누가 책임집니까?>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작가 본인도 주부들 인생 책임질 일을 만들고 싶진 않을거니까요. 근데 현실적인 대가가 무거울수록, 비극적 로맨스의 완성도는 더더욱 높아지는 것일려나요? 결혼 제도는 인간 사회 궁극의 변주곡 형식인 것 같아요. 같은 형식 안에서 그 규칙을 넘나들며 각기 다르게 펼쳐지는, 수많은 곡들이 떠오릅니다.       

- tvN 드라마 시그널 원작과 일본 리메이크 판의 결정적 차이점은 케찹이었어요. 
리메이크 판 주인공이 오무라이스에 케찹을 지나치게 뿌려먹는 캐릭터로 나오는데, 이는 원작에서 주인공이 케찹 없이 오무라이스를 먹는데 대한 강력한 문제제기로 밖에는 볼 수 없었습니다... 오마에! 오무라이스는 이렇게 먹는거라고! 라고 외치는 듯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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