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어체로 씁니다. 양해 바랍니다.


common-33.jpg


이 영화를 진지하게 평가할 수 있을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는 모든 것이 캐릭터 코메디로 흡수된다. 꿀밤을 맞아 마땅한 바보 덩치가 있고 개그에 휘말리지 않고 까칠한 답변을 날리는 사이보그가 있고 말이라고는 하나밖에 못하는 걸어다니는 나무가 있고 그 가운데 여자만 보면 껄떡거리는 백인 남자가 있다. 다른 모든 세계관은 이들의 바보짓을 위한 하나의 무대이다. 다른 행성이든, 그 행성의 생명체이든, 그 생명체들의 언어나 생활방식이든.


이 작품 전에 개봉했던 마블의 [앤드맨: 퀀텀매니아]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이 제작사의 외계인 표현은 늘 틀에 박혀있다. "이족 보행을 하면서 영어를 쓰는" 외계인의 존재는 어떻게 꾸며지든 그 상상력의 자기중심적인 벽에 부딪힌다.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이 행성과 저 행성을 넘나들며 다른문명과 생태계와 조우하는 기회들은 전부 다 지구인의 틀에 박혀있다. 전신에 무슨 피부색을 칠해놓고 머리에 뭘 달아놓든 결국 지구인의 티가 난다. 이 영화는 심각할 정도로 지구적이다.


그 지점에서 이 영화의 진행과정은 흥미롭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는 우주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 지구로 소환당하는 이야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이 최종적으로 들리는 곳은 "카운터 어스"라는 지구를 본딴 행성이다. 우주 다른 행성에서 바를 차리고, 술에 진탕 취하고, 미국 노래를 신나게 듣고, 얼빠진 농담을 하는 다른 백인들을 맞닥트려 패싸움을 하다가 이들이 결국 도착하는 곳이 유사 지구이다. 영화 막바지에 다다르는 지점에서, 혹은 시리즈 마지막 편에서 이 우주 유랑단이 결국 가는 곳이 지구와 닮은 곳이라는 것은 창작자의 한계를 목도하는 과정 같다. 영화의 배경을 다르게 꾸며서 외계인들도 출현시키고 밤하늘도 보여주곤 했지만 이젠 그러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가 과학적 시선과 탐구적 정신으로 영화 배경을 꾸며야 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해외에 나가서도 김치찌개와 소주를 찾는 한국인'을 보는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우주라는 무한한 가능성 위에서도 고착된 자기 세계를 그대로 이식하는 그 고집은 엄청나게 보수적이다. 그래서 영화는 미국 LA를 방문하면서도 김치찌개를 찾아 한인타운을 기어이 가고 마는 그런 한인 여행객처럼 기어이 지구를 가고 만다. 물론 누군가는 반문할 것이다. 바보들의 코메디 영화를 왜 그렇게 진지하게 보냐고. 코메디는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의 발현현상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문화적 제국주의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주라는 빈 공간을 지구적인 무엇으로 마음껏 채우는 그 일련의 행위가 이 영화에 도무지 빠져들지 못하게 만든다. 주인공들의 걱정없고 아둔한 그 태도가, 뭐가 됐든 지구적으로 풀리겠지 하는 지구인 특유의 오만처럼 보여서 영화를 믿을 수 없게 만든다. 우주에서도 라디오헤드의 크립을 들으며 감상에 젖는 그 장면은 우주라는 공간조차도 음악이라는 지구적 문화의 뮤직비디오 배경으로 소모하는 느낌이다. 이 때 '지구적'이라는 표현은 '미국적'이라는 표현과 일종의 동의어가 된다. 미국적인 것이 곧 지구적이고, 지구적인 것이 곧 우주적이라는 이 자신만만한 태도에 질릴 지경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미국적 코메디를 위한 소재로 소모된다.


이 영화에 대한 호평을 보면서 제임스 건이라는 감독의 능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는 귀엽고 깜찍한 무언가를 아주 마초적인 감성과 버무려서 둘 중 하나라도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의 영화를 좋아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그 상업적 능력이 영화적 재능의 전부라고 하기에 우주 전체를 채우고 있는 그의 미국적 세계관이 나를 피로하게 만든다. 언어가 다르고 "흉측해 보이는" 얼굴을 가진 카운터 어스의 주민들을 보면서 괜한 불안을 느낀다. 이런 묘사가 영어를 못하고 피부색과 이목구비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미국적 코메디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걱정을 제임스 건은 알고 있을까. 상관없을 것이다.


@ 2편에서 자신의 친아버지를 만나 자신이 완전한 지구인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난 뒤에도 3편의 쿠키에서 기어이 자신의 친할아버지를 만나러 지구에 되돌아가는 스타로드를 보면서 진짜 어이가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지구인으로서의 뿌리를 반드시 되찾고 말겠다는 그 지구적 순혈주의(게다가 또 남자 조상!)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372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926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459
123410 프레임드 #455 [6] Lunagazer 2023.06.09 112
123409 한국은 개인주의가 약해서 그렇습니다 [4] onymous 2023.06.09 629
123408 졸린 오후 이강인 ㅡ 아틀레티코 정리 기사 [3] daviddain 2023.06.09 186
123407 어쩌다 마주친 그대 차정숙 나쁜엄마 왜냐하면 2023.06.09 276
123406 국가적 자부심이라는 게 무의식적으로 정말 굉장히 센가봐요 [3] Sonny 2023.06.09 433
123405 그럼 다른 얘기를 해보죠. [11] 갓파쿠 2023.06.09 383
123404 한국인들만 있는 커뮤니티에서 한국인들한테 인종차별에 대해 묻기 [13] Sonny 2023.06.09 607
123403 한국은 인종차별이 다른 나라에 비해 특별히 심한 나라인가? [25] 갓파쿠 2023.06.09 530
123402 한국이 심한 건 인터넷 워리어 같아요 [9] catgotmy 2023.06.09 334
123401 메시, 마이애미로 간다네요 [4] theforce 2023.06.09 179
123400 국내에서 리사 인기가 4위인게 인종차별? [14] 갓파쿠 2023.06.09 706
123399 [왓챠바낭] 좀 특이한 복수극 영화 두 편, '복수의 밤'과 '늑대들' 잡담 [4] 로이배티 2023.06.09 255
123398 프레임드 #454 [4] Lunagazer 2023.06.08 99
123397 프렌즈 시트콤 시즌1 catgotmy 2023.06.08 221
123396 손오공 탐험기 [1] 돌도끼 2023.06.08 200
123395 헐 케인 레알 이적 임박설 [6] daviddain 2023.06.08 199
123394 한국에서의 인종차별 [42] 잘살아보세~ 2023.06.08 1105
123393 못생김 너머 [4] 가봄 2023.06.08 376
123392 엘비스 30 #1 Hits [1] catgotmy 2023.06.08 93
123391 노화된 커뮤니티의 독성 [12] Sonny 2023.06.08 64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