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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본 이후에도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실수로 가져와버린 짝꿍의 공책을 되돌려주기 위해, 아마드란 한 아이가 그 친구의 집을 찾아 정신없이 헤매며 뛰어다니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특정씬을 왜 이렇게 찍었는지 의문이 생긴다. 아마드는 짝꿍 네마자데의 집을 찾다가 그 집을 알고 있다는 한 노인을 만난다. 그런데 그 네마자데의 집이란 곳은 성만 같을 뿐이지 아마드가 진작 들렀다가 아닌 걸 알고 떠나왔던 그 집이었다. 둘은 함께 되돌아가다가 각자 집으로 헤어진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아마드는 노인과 헤어졌으니 카메라는 더 이상 노인을 담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카메라는 되돌아가는 아마드를 쫓지 않고 이 노인이 집에 들어가는 장면을 계속 찍는다. 노인이 신발을 갈아신고, 집에 들어와서 아마드가 최초로 목격했을 때처럼 창틀을 올리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다시 아마드를 보는 시점으로 바뀐다. 대체 왜 영화는 아마드를 카메라에서 놓치면서까지 이 노인이 집에 들어오는, 아무 내용이 없는 풍경을 이렇게 담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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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아마드가 시야에서 사라진 장면이 또 있었다. 그것은 친할아버지가 아마드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켰던 장면이다. 카메라가 아마드를 쫓아갔다면 꽤나 재미있는 광경이 담겼을 것이다. 아마드는 엄마의 잔소리를 무시하고 몰래 집을 나갔다가 들어와서 할아버지의 담배를 찾다가 또 혼났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한바탕 소동극이 벌어졌을 것이다. 혹은, 아마드가 집에 들어가는 척만 하면서 다른 곳에서 숨어있다가 집에 다녀온 척을 하며 할아버지를 속이는 장면이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메라가 아마드를 쫓아가지 않는 이상 그건 알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관객들은 할아버지의 일장연설만을 본다.


아마드의 할아버지는 지금의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든 아동관을 설파한다. 자기가 어릴 때에는 매주마다 매를 맞았다면서, 한번 말하면 제깍제깍 듣고 움직여야한다는 고압적이고 지배적인 교육관을 이야기한다. 어른에게 아이란 재빠른 순종을 실천해야하는 그런 존재이다. 잘못한 일이 없어도 어찌됐든 주에 한번씩 맞는 것은 무조건 겪어야한다. 이것은 영화 첫 장면에서 한번 말했는데 왜 말한대로 안하냐는 선생님의 훈계와도 겹친다. 이 절대적 복종의 세계관에서 과연 아이라는 존재의 행복은 있을 수 있는가.


이전까지 영화가 아이를 대하는 어른의 태도를 생활을 관찰하는 식으로만 봤다면, 이 장면에서는 어른들의 교육관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것은 주인공 아마드의 모험을 따라가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일일 수 있다. 아마드가 스쳐지나가는 풍경에서 어떤 사람들은 묻고 싶었을 것이다. 어른들은 왜 아이들을 이렇게 대하는가. 왜 10살도 안된 아이들이 뭔가를 나르거나 아이 몸에 무리해보이는 일들을 하고 있나. 아마드와 같은 반의 어떤 학생은 왜 허리가 아프다고 하고 있는가. 예외없이 노동의 책무에 끌려다니는 아이들을 보면서 영화는 그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말한다. 관객의 의문에 대답하듯, 그건 어른들이 아이들을 말 잘듣는 노동력으로만 보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을 전한다.


이 할아버지의 장면은 아마드를 쫓는 대신 네마자데의 집으로 동행했던 노인이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과 구조적인 대조를 이룬다. 아마드의 귀가를 찍는 것보다도 영화는 이 노인의 귀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왜냐하면, 그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아마드의 말을 듣고 도움을 주려고 하는 어른이니까. 아주 많은 어른들이 아이는 어른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는 존재로 낮춰보지만, 어떤 어른은 아이를 동등한 존재로 보고 존중한다. 이런 어른도 있다, 혹은 이런 어른도 있으면 좋겠다는 영화의 강렬한 그 바람과 믿음은 노인과의 작별을 간편하게 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는 이 영화가 간절히 바래왔던 그런 사람이니까. 경황없이 떠나간 아마드를 대신해 영화는 이 노인에게 예의를 차려서 그의 곁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마드의 이 모험은 친구 나마자데의 집을 찾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이 모험은 결국 실패한 모험이다. 그러나 이 모험이 처음부터 아마드를 도와주는 어른을 찾는 모험이라면 어떨까. 아무 단서도 없이, 물어물어 친구의 집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아마드에게는 그를 돕는 어른이란 존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세상은 낯설고 동년배 아이들은 모두 노동에 동원되는 중이라 그를 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어른의 친절이란 선택이 아니다. 이 영화는 실질적으로 아이에 대해서 어른들에게 말하고 있다. 우리 어른은, 아이를 어떻게 대하고 있나요. 이 모든 모험이 아마드의 선량한 마음이 아니라 네마자데를 퇴학시킬 꺼라고 윽박지른 교사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면 우리는 이 영화를 단순히 웃고 따스하게 넘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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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아마드가 밤을 새서 네마자데의 숙제를 대신 해주고 선생님에게 제출하면서 네마자데가 혼나지 않고 넘어가는 것으로 넘어간다.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뒤따른다. 처음부터 아마드가 네마자데의 숙제를 대신 해줬다면 되는 일이 아니었을까. 이 방법이 죄책감을 더는데는 편리하지만, 네마자데의 실질적인 고통을 해소하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네마자데는 숙제를 하려고 하는데 공책이 없어져서 안절부절하며 하루를 다 보냈을지도 모르니까. 만약 아마드가 네마자데의 집을 찾을 수 있었다면, 네마자데는 자신의 공책에 숙제를 하고 그 불안을 빨리 더 해소했었을지도 모른다.


전화나 다른 연결수단이 없는 자연에서 타인에 대한 윤리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발현된다. 누군가의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우리는 전력으로 질주하고 그저 물어물어 길을 찾고 헤매야한다.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이 영화는 남이 자신의 실수로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는 그 원초적인 책임감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드가 친구의 공책을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그 이유는 얼마나 많았나. 중간에 포기할 수 밖에 없는 변명거리는 얼마나 많았나. 끝내 친구의 집을 찾지 못했음에도 아마드는 늦은 밤까지 친구의 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배회했다. 윤리는 누군가에 대한 구원이나 승패가 아니라, 그 방황하는 과정 자체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친구의 집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조차 망각한 채로 우리는 그 용기를 발휘할 수 있을까.


영화는 공책에 꽃혀있던 그 노인의 마법같은 꽃을 보여주며 끝이 난다. 이 엔딩에서 영화가 내 안에서 닫히지 않는 이유는 아마드의 방황이 네마자데에게 가까워지는 과정의 부분이라는 걸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드는 네마자데에게 자신의 모험담을 들려줬을 것이고 그의 집에 가는 길을 함께 가봤을지도 모른다. 혹은 창문을 만드는 그 할아버지의 집에 함께 찾아가서 이 아이가 자기가 찾는 네마자데라고 소개해줬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그 공책의 페이지가 또 다른 세계를 향해 열리는 작은 문처럼 보인다. 그 문을 열고 이들은 함께 어딜 떠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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