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실력에 잠이 오냐?

2019.08.30 22:38

어디로갈까 조회 수:2519

- 평균 9시 정도에 잠들고 새벽 2~3시에 기상합니다. 독립해 나오며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 맞은 편 동들의 불빛이 너무 시끄럽게 느껴져서 - 갖게된 습관이에요. 근데 잠이 안 오네요. 퇴근도 막내 불러서 대리운전해 왔을 정도로 곤죽 상태인데도. 윽윽

- 맡고 싶지 않았던 업무가 결국 제게 배당되었고 일요일에 암스테르담으로 출장을 가야 합니다. 제 몸 상태가 뱅기 타고 다른 대륙으로 이동할 상황이 아니란 걸 회사 측에서도 잘 아는데 이런 압박을 하는군요.
회사에서 오늘 몇 번이나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없어요.'라는 말을 내뱉었습니다. 이 무슨 매너리즘인가 싶었지만, 도무지 설명할 수가 없었어요. 자기 '업무/ 생각/감정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거고 그런 상태에 안주해서도 안되는 거죠. 그런데 거짓말이나 착각보다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게 낫다는 생각도 듭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삶은 항상 조금씩은 착각이거나 거짓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일종의 '그노시즘'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은 삶에 대한 선의만으로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예요. 많은 절망의 말들이 희망의 은유에 다름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컵에 오렌지 쥬스를 따르고 얼음 조각을 몇개 넣었더니 얼음이 땅땅 녹는 소리를 내네요. 그 소리를 금속성이라고 느꼈어요. 그러니까, 금속성의 소음이란 실은 속이 녹는 소리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울리는 이 금속성의 소음도 현실을 받아들이는 순응의 소리일지도 모르겠어요. 땅,땅! 탕,탕!
쓰고보니 얼음소리라는 단어조합은 어딘지 좀 어색하군요. 언 것-고체- 에 소리가 있나요?  어릴 때 샛강에서 스케이트를 타곤 했는데,  그럴 때 갑자기 보글보글(찌개 끓는 소리가 아니고), 얼음 울리는 소리가 날 때가 있었어요. 좀 무서운, 갑자기 정신이 퍼뜩 드는 소리였습니다. 녹는 소리가 아니라 금 가는 소리였을 텐데 당시 밀려왔던 두려운 감정이란.

- 얼음소리도 그렇지만 바람의 말도 저는 모르죠. 그런 소리들은 귀 기울임의 자세를 위하여 있는 것!  사람의 말도 마찬가집니다. 그 말들 속엔 항상 알 수 없는 '너머'가 들어 있기에, 사람의 말 또한 귀 기울임의 자세를 위하여, 불완전한 응시의 자세를 위하여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 앞에 부재하는 것들 또한 그렇습니다. 이렇듯 어느 순간에는, 세계는 바라보고 귀 기울이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것만이 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니까 어느 순간에는요

- 배도 고프고 수면에 도움이 될까 하고 와인을 땄는데, 삼십여 분 만에 바닥이 보여서 또 한병 따면서 민망하여 속삭여줬네요.
'너희는 원래 인간에게 귀속된 물질이었다. 너희를 나의 피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내가 야밤에, 그것도 이렇게 충동적으로 너희를 부르고 아작낼 수 있으리라곤 나도 예상치 못했다. 몇년 전 비오는 날, 품 안에 너희를 안고 스포르체스코 성의 광활한 평원을 달리던 나의 모습을 기억하지? 부디 나를 이해하거라.'

- 어떤 것이 비유인지, 어떤 것이 현실인지를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비유도 나름의 현실이고, 하나의 현실은 또 다른 현실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고통에 빠진 사람은 이불처럼 비유를 끌어 덮기 쉬워요. 비유가 더 이상 필요치 않은 삶이란 것이 있다고 믿기는 어렵기에 저는 이불을 끌어당기며 중얼거려 봅니다. '어느날 내가 하루를 더 이상 비유로 정리하지 않기를.'

덧: 제목 정하기 어려워  '제목없음'으로 쓰려다가 
막내가 오늘 랩에서 쪽잠 자다 지도교수님에게 들었다는 이 핀잔이 너무 재미있어서 붙였어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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