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유부녀의 바낭.

2014.03.06 12:26

물방울무늬 조회 수:6151

안녕하세요. 듀게에서 주로 눈팅을 맡고 있는, 존재감 없는 회원 물방울무늬입니다.

(가끔은 댓글도 달고 있습니다. 아주......가.....끔.........)

일주일 전쯤에서야 듀게가 다시 부활한 것을 알았어요. 어찌나 기쁘던지!ㅠ

듀게 없이 사는 시간 동안 저는 정신없이 결혼준비를 하고, 어느덧 유부녀가 되었습니다.

 

사실 2011년 겨울에, 듀게에 익명으로(아마도 익명이었을 거예요) 고민상담 글을 올렸습니다.

같은 직장 내에 맘이 가는 사람이 있고, 술에 취한 채로 얼떨결에 고백을 했고 거절당했지만

서로 좋은 관계로 지내기로 한 며칠 뒤 그 사람과 키스를 하게 되었는데

이거 어떡하냐... 남자는 이성적 호감 없이도, 또는 사귀고 싶은 마음이 없는 여자와 키스할 수 있는 것이냐!

이 남자와 나는 정녕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냐!

라며 한탄 겸 상담의 내용을 담았었지요.

그 때의 듀게분들 반응은 대체로 회의적이었습니다. 남자는 짐승이다의 취지를 담은 댓글도 있었고

정말 제가 걱정되어서 쪽지를 보내 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당시에 정말 고맙게도 그런 댓글과 쪽지로부터 많은 위안을 받았었어요. 

 

그런데 기적적이게도 그 글을 올린 지 열흘 후쯤 그 분으로부터 둘 사이 관계 진전에 대한 이야길 들었고

그렇게 해서 사귄 지 2년 만에 결혼까지 왔네요. 지금은 결혼한지 2달 조금 넘었습니다.ㅎㅎ

그 분과 사귀면서부터 이 사람과는 어떤 악조건에 놓여있더라도 남은 생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건강상의 문제, 직업의 불안정성, 사내연애라는 여러 장애들을 물리치고 결국은 쟁취한거죠, 제가-_-하하하하

그 분과 결혼하면, 듀게에 한 번은 이 일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거주지를 옮기면서 지금은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습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죽 일만 해온 저로서는 집에서 살림하고, 또 짬짬이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하는 이 일상이 아직도 꽤 낯섭니다.

자존심 문제로 결혼 전에 갈등이 좀 있었어요. 결혼하고 나면 제가 일을 쉬는 게 자연스러운 상황이었고 또 최선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득바득 일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에.. 경력단절, 이라는 말이 스스로에게 큰 상처가 될까봐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머지 않은 시일에 임신 계획과 출산, 육아라는 큰 문제가 앞으로 있을 것이기 때문에 여러 여건을 고려했을 때 제가 일을 쉬고 집에 있는 게 좋긴 했지만

내가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또 여자라는 이유로 주저앉게 되는 것 같아 속상했어요.

결혼 전에는 이런 일들이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막상 제가 그 일을 맞게 되니 이게 뭔가 싶고 마음이 황황하기도 하고요.

내가 내 스스로 일해서 돈을 벌지 않는다는 것, 남편이 벌어온 돈으로 살림하며 먹고 지낼 수 있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행복이고 평안이지만 그때 저에게는 자존감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주눅들고, 눈치보게 되고, 스스로가 생산성이 떨어지는 인간처럼 생각되고...

지금은 현실을 되도록 받아들이고 적응하려고 노력중이긴 한데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건 어쩔 수가 없나봐요.^^;;

'순리'대로 살아가자,를 모토로 저희 부부는 인생길을 함께 걷기로 했는데 무엇이 과연 '순리'인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는 요리에 꽤 재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계량 없이 대충 들이부어도 왠지 맛은 있어요.)

요즘은 계란말이를 잘 하는 법을 연구 중입니다.

지금 직장에서 빡세게 근무하고 계신 분께는 저의 신세한탄이 배부른 소리로 보일지도 모르겠어서 좀 조심스럽습니다.ㅠㅠ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꽃샘추위로 날이 꽤 춥네요. 바람이 불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듀게분들 모두 환절기 건강 조심하세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58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808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310
123359 인터넷 하면서 봤던 황당한 꼬라지들. [31] 스위트블랙 2012.07.19 6254
123358 강남의 신흥 폭력조직, 흰양말파 검거 현장外 [11] 한여름밤의 동화 2010.12.18 6254
123357 정말 잘 샀다고 생각하는 것들.. [15] being 2010.09.03 6254
123356 나이가 좀 있는 여자의 선이란... [13] 엘시아 2013.04.29 6253
123355 역시 류승완감독이 베를린 일부러 역으로 갔군요. [7] 자본주의의돼지 2013.01.27 6253
123354 [펌, 단독] 정우성, 이지아랑 파리에서 비밀 데이트… 둘이 사귀나? [16] 黑男 2011.03.11 6253
123353 이승기는 대단히 성실해요. 성실함 이라는 덕목. [18] being 2011.01.08 6253
123352 떡볶이가 더 낫냐, 햄버거가 더 낫냐(?) [32] K  2012.09.11 6252
123351 강의실에서 모자 쓰는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31] 白首狂夫 2010.08.24 6251
123350 안철수씨는 이효리가 누군지 모르는군요 [9] 가끔영화 2011.01.29 6250
123349 엘사/아나 초기버전 ? &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 [5] Diotima 2014.02.05 6249
123348 기사) 일베하는 20대의사의 변 [24] a.앨리스 2013.06.06 6249
123347 철수씨... 그래서 난 당신이 싫어...-_- [25] hermit 2012.10.19 6249
123346 아 참, 인셉션 자막에서 잘못된 부분이 하나 있더군요. [11] mithrandir 2010.07.21 6249
123345 전현무 아나운서의 스펙이 화제라는군요 [13] 허기 2010.12.13 6248
123344 요새 SWP 성폭행 사건으로 난리네요 [16] 닌스토롬 2013.01.23 6246
123343 여은성님이 말씀하신 최소한의 예의에 대한 답글입니다. [57] 알베르토 2013.11.04 6245
123342 샴푸의 차이가 좀 크군요. [26] poem II 2013.07.23 6244
123341 가나의 미친 영화 포스터들 ( 클릭 주의 - 다소 잔인하고 폭력적인 이미지가 있음, 스압 ) [16] cadenza 2013.02.10 6244
123340 구자철 만세삼창 세레머니가 불편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04] catgotmy 2012.08.11 624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