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1박 2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요. 홍철이가 있을 당시 초창기에, 강호동 형님과 똘마니들 분위기가 풍길 때 신나게 보다가, 1박 2일이 한창 백두산가고 이상한 시나리오(PD님이 어디가서 '감동을 주기 위해 이러이런 큰 틀을 짜고' 어쩌고 하면서 강연하셨던 내용에 비추어 볼 때-_-)필이 날 언저리부터 굉장히 싫어했었어요. 그래서 한 동안은 주말의 가장 큰 예능 중 하나를 보지 않았죠. 그러다가 얼마전엔가..케이블에서 하도 볼게 없길래 멍 때리며 보는 1박 2일은 꽤 괜찮아져있더라고요. 제가 싫어했던 묘한 분위기가 빠져나가고, 그냥 저냥 편하게 볼만한 예능이 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이후로는 계속 쭉 보고 있어요. 그리고 케이블에서 나오는 1박 2일도 종종 보게 되어서 지나간 에피소드들도 챙겨 보기 시작했고요.

 

그러면서 새삼 느끼는건데, 이승기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성실하네요-_- 강호동 같은 강철 체력도 힘들어하는게 눈에 보일 정도의 강행군인데, 아침에 칼같이 일어나서 (저에게는 이게 가장 놀라움 ㄷㄷ) 활발히 움직이고, 어떤 경우에도 푹 퍼져 네벌레...하고 있는 경우도 없고, 늘 또릿하고 제정신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허당 바보짓을 할 때도...그게 정신이 나간 상태라 허당 짓을 하는게 아니라, 이승기라는 사람 성격 구조가 그런거라 빈 틈이 보이는 것일 뿐이고.

 

그러니까, 늘 일정 수준 이상의 에너지가 활발히 감도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리고, 그런 모습이, 저는 너무 너무 부러웠어요.

 

성실성은 제가 가장 갖추지 못한 덕목 중 하나에요. 정신상태가 빠진 것도 있고, 오랜 시간 틀이 잡히지 않은 생활을 했던데서 온 습관상의 문제도 있고, (낮밤 바꿔가며 폐인짓 하는 긴긴 시간 동안) 막 굴리 덕분에 망가진 몸 덕에 초저질 체력이 된 탓도 있고...다시 리바이벌 하면 정신상태가 심각하게 빠져서 그런 것이 가장 크지만...크지만.....

 

제가 성실하지 못한 데에는 저런 저의 문제 뿐만 아니라, 타고난 조건 탓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곤 해요.

 

심리학의 가장 대표적인 성격 이론 중 하나는 5요인 이론이죠. 사람의 성격의 다양한 요소 중 상당부분 변하지 않고 지속되며, 대다수의 사람에게서 정도의 차이가 나타나는 5가지 요소 Openness(개방성, 지적인 호기심과 비슷해요. IQ랑 밀접하고, 그래서 유전성이 가장 커요), Conscientiousness(성실성, 혹은 규칙을 지키는 성격), Extraversion(외향성), Agreeableness(동조성, 친절하거나 따뜻한 성격), Neuroticism(신경성, 정서적인 안정성)에 대해 분석하는거에요. 이 요소들은 상당부분 유전에 의해 결정되고, 아주 어릴 때의 경험과 육아 환경에도 어느 정도 의지합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자의적으로 결정하고 변화시킬 요소가 없는 편이죠. 유전자와 부모와, 어릴 때의 경험은 선택하기 힘들거든요. 그래서 태어나기를 외향적으로 태어난 사람은, 일생을 그 정도의 외향성을 보이며 살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노력에 의해 성격 변화가 일어나기는 합니다. 하지만 내향성인 사람이 각고의 노력을 통해 외향적인 성격 외피를 습득하고 그런 식으로 행동하며 잘 산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깊은 내면 속에서는 사람들과 있을 때 보다는 홀로 있을 때 더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는 성향이 늘 내재해 있을겁니다. 즉 사회에서 원하는 성격에 맞춰 적응을 할 수는 있지만, 결코 본질적인 부분에서의 성격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 편이죠. 이런 내용은 요새 긍정심리학, 행복 관련 책이나 영상을 보셨으면 여러번 접하셨을거에요. 행복에는 외향성과 정서적 안정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그래서 행복의 정도도 사람마다 다르다. 다만 노력하면 40% 정도는  변화 가능하다...뭐 이런 내용이요.

 

성격 요소들이 상당부분 유전과, 기질에 영향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쓰려고 줄줄 거리기는 했지만..결론은 사람은 잘 안바뀐다..정도가 되겠네요.

 

하여간 저 성격 요소 가운데 성실성과 밀접한 요소를 꼽는다면 딱 봐도 Conscientiousness죠. 저는 이게 상당히 낮은 편이에요. 그리고 사람의 에너지수준과 연결되는건 Neuroticism인데, 저는 이게 상당히 불안정합니다.  그러니까 규칙에 맞춰 딱딱 무언가를 하고 질서를 잡는 성향이 부족하고, 정서는 늘 요동을 치죠. 그래서 정서 상태가 하이 쪽이면 그나마 넘치는 에너지를 강한 집중력과 헌신으로 바궈서 성실하지 못한 부분을 커버할 수 있지만, 정서상태가 바닥을 치면  에너지도 바닥을 치면서, 몸은 좀비가 되고 지적 능력도 섬세한 주의력도 바닥을 치죠. 성실성은 커녕 주어진 책임마저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그러니,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은 정서적으로 아주 안정되어 있고, 복잡한 상황 속에서 질서를 부여하고 그 질서를 잘 유지하고 향상시키는 사람이에요. 이승기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정서적으로 굉장히 안정되어 있구나. 그래서 에너지가 늘 일정한 수준이군. 그런데 그 에너지 수준이 좀 높네. 부럽다. (저는 에너지 수준이 낮아요-_- 그나마도 들쑥날쑥..) 질서를 잘 지키고 규칙을 잘 따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도면밀하고 준비성도 강하고 성실한 것은 확실하군. 음, 생활이 규칙적인 것도 확실하고... 가정 교육도 교육이지만...정말 좋은 유전자야. 부러워라...뭐 이런 생각을 했어요.

 

 

뭐 그렇다고요. 지독한 근면과 성실함도 타고나는거에요. 천재는 노력으로 만들어진다고 하지만, 보통 수준 이상의 지독하고 강렬한 노력은 유전자의 도움 없이는 힘들죠. 음, 말을 좀 바꿀까요. 정말 '노력' 하면 되기는 하겠지만, 안정적으로 꾸준히 열정적으로 무엇을 하는데 적합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노력하는 것 만큼의 효율을,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내지 못한다고요.

 

그래도 저는 성실해지는게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노력하기로 했어요. 정서적으로 안정되는게 저의 가장 큰 관심사인 것도 그래서에요. 명상을 하거나 요가를 하거나 강한 정서적 스윙에 빠지는 일은 부러 끼어들지는 않거나, 혹시 끼어들었다 하더라도 내 감정상태를 잘 관찰하면서 최대한 잘 수용해서 감정이 막히거나 지나치게 폭주하거나 하는 상태 없이 잘 소화되고 흘러 나갈 수 있게 배려하거나...  그리고 요새 고민 중인 것은 생활속에 질서를 잡는거에요. 이건...정말 아무리 책을 읽고 해도 잘 안 배워지더라고요. 집안 사람들 모두 다 저 같은 인종들이라 -_-;;;(유전자 주신 분들 모두가 딱 제 어머니 아버지라.. 그나마 아버지는 직장에서는 아주 잘 하시는데 집에서는 네벌레...) 보고 배운 것도 아주 드물었고요.

 

그래서 지금이라도 주변에서 정리정돈 잘 하는 사람들이 하는걸 하나 둘 씩 보고 배우고...시간 관리 체계적으로 잘 하는 사람들이 하는걸 따라해보려 노력하고...뭐 그러고 있어요. 그러고보면 아버지가 어릴 때 부터 저에게 하신 말씀이 있어요. '넌 하고 싶은 것 뭣대로 다 해도 된다고 생각해. 그게 아니야. 책 보고 싶고 영화 보고 싶고 게임하고 싶어도 내일을 위해 잠을 자야지. 왜 하고 싶은대로 다 하려고 해.'  저에게는 생활의 리듬을 지키는 것 보다 당장의 지적인 정서적인 흥미를 채우는게 훨씬 중요했거든요. 늘 그랬어요. 그게 몇 십년 쌓이다 보니 타격이 되어 돌아오나 싶기도 해요. 제가 성실하지 못한 큰 이유 중 하나는 확실히 체력 부족이거든요. 어릴 때 너무 몸을 굴렸어...올빼미가 되면 안되었는데...아...그걸 알고 있는 지금도...-_ㅠ

 

 

하여간 이승기 같은 사람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보고 자극도 받고, 성실하게 바지런하게 뭔가 하는거 좀 보고 배우게. 다행히 직장에도 성실하고 깔끔하고 체계적인 분이 계셔서 보고 좀 배우려고 하고 있어요.

 

음...그리고 방법만 나열해 놓은 책이 아니라, 지은이의 성격이나 일상이 많이 들어가 있는 '일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자기계발서' 같은거 좀 찾아서, 그 사람 하는대로 고대로 좀 배꼈으면..-_-..

 

 

성실해지겠어...아자-ㅅ-  아..내일 8시에 일어나야하는데..ㅠㅠ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80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820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330
123367 인터넷 하면서 봤던 황당한 꼬라지들. [31] 스위트블랙 2012.07.19 6254
123366 강남의 신흥 폭력조직, 흰양말파 검거 현장外 [11] 한여름밤의 동화 2010.12.18 6254
123365 정말 잘 샀다고 생각하는 것들.. [15] being 2010.09.03 6254
123364 나이가 좀 있는 여자의 선이란... [13] 엘시아 2013.04.29 6253
123363 역시 류승완감독이 베를린 일부러 역으로 갔군요. [7] 자본주의의돼지 2013.01.27 6253
123362 [펌, 단독] 정우성, 이지아랑 파리에서 비밀 데이트… 둘이 사귀나? [16] 黑男 2011.03.11 6253
» 이승기는 대단히 성실해요. 성실함 이라는 덕목. [18] being 2011.01.08 6253
123360 떡볶이가 더 낫냐, 햄버거가 더 낫냐(?) [32] K  2012.09.11 6252
123359 강의실에서 모자 쓰는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31] 白首狂夫 2010.08.24 6251
123358 안철수씨는 이효리가 누군지 모르는군요 [9] 가끔영화 2011.01.29 6250
123357 엘사/아나 초기버전 ? &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 [5] Diotima 2014.02.05 6249
123356 기사) 일베하는 20대의사의 변 [24] a.앨리스 2013.06.06 6249
123355 철수씨... 그래서 난 당신이 싫어...-_- [25] hermit 2012.10.19 6249
123354 아 참, 인셉션 자막에서 잘못된 부분이 하나 있더군요. [11] mithrandir 2010.07.21 6249
123353 전현무 아나운서의 스펙이 화제라는군요 [13] 허기 2010.12.13 6248
123352 요새 SWP 성폭행 사건으로 난리네요 [16] 닌스토롬 2013.01.23 6246
123351 여은성님이 말씀하신 최소한의 예의에 대한 답글입니다. [57] 알베르토 2013.11.04 6245
123350 샴푸의 차이가 좀 크군요. [26] poem II 2013.07.23 6244
123349 가나의 미친 영화 포스터들 ( 클릭 주의 - 다소 잔인하고 폭력적인 이미지가 있음, 스압 ) [16] cadenza 2013.02.10 6244
123348 구자철 만세삼창 세레머니가 불편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04] catgotmy 2012.08.11 624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