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란하고 그래서 넥스트 노래 몇 곡 듣다가, 무릎팍도사 신해철 편을 발견하게 돼서 다운받아 봤습니다.

2007년에 방송된건데 아직 프로그램 극 초창기라 그런지 어수선하고 방송 포맷이 제대로 자리잡히지 않은 느낌이더군요.  

신해철이란 사람에 대한 내용은 별로 없고 그냥 싱거운 농담 따먹기 하다가 끝나는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강호동과 신해철의 다른 점이었는데, 딱히 깊이있는 대화가 이뤄진건 아닌데도  

두 사람의 사고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것은 확연히 느껴지더군요. 특히 강호동은 신해철의 관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신해철이 보편적으로 '올바르다'고 여겨지는 가치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말을 하면 강호동은 화들짝 놀랍니다.

물론 소위 진보적인 신해철의 발언을 방송에서 중화시키기 위한 태도였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런 식의 대화가 계속됩니다.



강: 기왕이면 욕 먹지 않게 겸손하게 사는게 좋지 않나?

신: 겸손은 미덕이니까 겸손하면 칭찬해주면 되지, 겸손 안하다고 욕할 필요는 없지 않나?

강: ?????


*****

강: 고민 상담 프로에서 남친 있는 여성의 다른 남자가 좋아진다는 고민에 대해, 슬기롭게 양다리를 걸치라고 조언했다. 뭔뜻인가?

신: 연애시기에는 아무래도 서로에게 구속되는 부분이 덜하니까 남에게 큰 상처를 주지 않는 선에서 여러 사람 만나볼 수도 있다.

    결혼하고 바람나는 것보다 나으니까 결혼 전에 놀아둬라. 

강: 안놀고 잘살면 안되나?

신: 놀아봐야 잘살건데. 당신도 놀아봤잖아?

강: (엄청 화들짝 놀라며 손사레침) 하늘이 보고 땅이 알고있다. 내가 노는거 본 적이라도 있나?

신: 놀고 나오는건 본 적 있다.

강: ????? (강하게 부인)


*****

강: 백분토론에서 대마초 합법화를 주장했다.

신; 합법화 아니고 비범죄화.

강: 비범죄화나 합법화나 같은거 아닌가?

신: 다르다.

강: 어쨌든 대마초를 피우는건 '옳은 일'은 아닌거잖아?

신: 민주사회에서는 옳으냐 아니냐 보다는 남에게 피해를 주냐 안주냐가 더 중요하다.

강: ?????


*****

강: 네티즌, 악플이 두렵지 않나?

신: 두렵지 않은데.

강: 왜? 여론이잖아?

신: 짜증은 나도 두렵진 않은데.

강: ????? 평소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나???

  

*****


제 기억에 강호동은 무릎팍도사에서 '그래도 그게 여론이잖아요'라는 말을 가끔 하곤 했습니다.

욕먹을까봐 신경 쓴다기보단 대중의 보편적인 정서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보수적인 올바름 같은 것에 민감하고. 

그래서 세금 문제 불거졌을 때 정말로 은퇴하려고 했었다는 뒷얘기가 수긍이 갔었습니다. 대중스타로서 대중을 존중하는건 사실 좋은 태도이죠. 

한 편으로는 전 신해철의 관점을 오히려 상식적 혹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라, 이런 생각이 지극히 일반적인 정서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강호동의 반응을 보면서 알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생각할수록 우리나라 대중스타 중에 신해철을 대체할 사람은 없는거 같아요.

그의 생각에 늘 동의하지 않았더라도 말하고 행동하는 그 존재만으로 든든했던 사람

카리스마 있는 뮤지션, 친근한 오빠 형님, 한 가정의 다정한 가장, 시대의 논객이자 멘토, 이 모든게 동시에 가능했던 유일한 사람   

아까운 사람이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이 가버리고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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