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코피

2019.04.02 18:31

흙파먹어요 조회 수:565

1. 콧물이 주륵주륵 흘러 휴지를 돌돌말아 틀어 막았는데, 눈치 없는 한 녀석이 호들갑을 떨며
"헉! 코피 나세요?! 어떡해!!"
하는 바람에 졸지에 환자로 분류. 홍삼젤리가 날아오고, 어깨를 주물러 주겠다느니 고개를 숙여야 한다느니 소동이 벌어지고.
화장실로 피난하려는데 이것들이 막 피리 소리 쫓는 쥐들처럼.. 니들 이거 재밌지? 지금?

2. 대학 때 대강의실에서 발표를 하고 있었어요.
코가 너무 갑갑해 걸어둔 영상이 돌 때 어둠을 틈타 맹렬히 후벼 팠는데,
영상이 끝나고 다시 교단 중앙으로 걸어나가자 앞 렬에 앉은 분들 반응이 심상치가 않아요.
주르륵 턱을 따라 흘러 시인의 고뇌처럼 앞섶을 적시는 피와, 지루한 발표 와중에 마침 잘 됐구나, 한층 오버하여 웅성이는 강의실.
급기야 선생님께서 기특하다는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아.. 자네 OO과 OOO 학생이지?
이미 일은 벌어졌다. 저는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자리로 돌아갈 때 왼 손 검지를 쪽쪽 빨아야 했습니다.

3. 더럽게 공부 안 하는 아들을 독려하기 위해 엄마는 고육지계로 닭을 걸었습니다.
네가 공부 하다가 코피가 터지면, 네가 떨어진 지옥에서 닭들이 삼지창을 들고 너를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닭을 사주겠노라.
솔깃? 닭이 먹고 싶었던 저는 과감하게 배팅을 하였습니다. 안 자. 코피 터질 때까지 무수면 천리마 행군.
결국 코피가 퐝! 하고 터졌고, 기쁨의 환호성을 내지르며 거실로 나갔지만
엄마는 잠깐 눈알을 굴리다 제 등짝을 내리쳤습니다.
"너 이눔 자식 엄마가 코파지 말라고 했지?"

요즘도 종종 엄마가 말 합니다. 세상 믿을 건 부모뿐이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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