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판도라가 상자를 열자 그 속에서 수없이 많은 재앙이 튀어나옵니다. 놀란 판도라는 상자를 닫았고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 희망이었죠. 

그리하여 온갖 고난 속에서도 인간들은 희망으로 버틸 수 있었대더라.. 이게 어릴적 봤던 버전. 

 

어른이 되서 읽으니 그와중에 희망이 남아 있는 것 자체가 ‘재앙의 완성’이라는 해석이 더 와 닿더라구요. 봉준호도 여기서 출발한 것 같습니다.  

 

더 내려갈 곳은 없을거라 생각했던 가족이 판도라가 들고온 상자 속의 희망(수석)을 갖게 되면서 지옥과 마주하는 이야기. 

케르베로스 같은 개 세마리를 끌고 다니는 지옥 문지기.. 모든 일이 끝난 후에도 아들의 나래이션 속 희망으로 계속되는 지옥.  

(그 물난리 속에서도 떠올라 "찰싹 붙어" 놔주지 않던걸 생각하면 꽤나 섬뜩한...)



2. 

같은 인간인 척 사는 송강호는 냄새라는 단어 앞의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코를 막는 행위가 트리거가 되고), 역시 같은 인간인 척 하는 이선균은 사랑이란 단어 앞에 표정을 숨기지 못합니다.

‘내가 진짜 너랑 똑같은 인간인 것 처럼 말하네?’하는 표정은 이선균이 갑인 것 같아요. 짜증내는 표정만 수십년 연구한 배테랑의 위엄. 

 

송강호 배우는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압력밥솥처럼 걸어 다니는데 다른 영화들에 비해 이 영화에서 유독 피부톤이 붉게 느껴졌어요. 

굳이?스럽긴 하지만 혹시 압력밥솥을 의도해서 메이크업을 한건가(그럴 리 없잖아)궁금. 

 

3. 

예전 봉감독의 인터뷰에서 캐릭터를 잘 만들고 어떤 상황안에 풀어놓기만 하면, 이야기는 알아서 굴러가게 되어있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던게 기억나요. 

근데 언제부터인가 봉준호 영화에서 그런 느낌을 거의 받을 수가 없더군요. 흔히 이야기하는 ‘장기말’처럼 인물을 쓰는 느낌.  

 

봉준호 최고의 영화냐라고 물으면 아니오재미있었냐라고 하면 글쎄요 인데 좀처럼 게시물을 안쓰는 저같은 회원이 듀게에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희한한 영화인건 확실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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