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 영화사는 괴수덕후집단임이 분명합니다.
[퍼시픽 림] [쥬라기 월드]시리즈 [고질라]같은 영화들을 줄기차게 만들었잖아요. 거기다 대부분 평이 바닥인 괴수영화 바닥에서 상당한 고평가를 받는 작품들이고, [쥬라기]와 [고질라]는 망한 프랜차이즈를 되살려내기도 했습니다.

우주적 영화사에서는 레전더리와 손잡고 [쥬라기월드]를 만들고 있을 즈음해서 [스컬 아일랜드] 기획을 레전더리에게 넘겼다고 합니다. 원래는 피터 잭슨이 [킹콩]의 스핀오프로 기획했던 영화였습니다.

자, 괴수 덕후가 한손에는 고지라를 한손에는 킹콩을 쥐게 되었습니다. 그렇담... 둘을 싸움붙여야죠. 괴수영화팬이라면 그러지 않을 도리가 없잖아요.

문제는 [고질라]는 워너와 공동제작한 영화였다는 거죠. 유니버설과 워너 두 회사를 조율하는게 고지라와 킹콩을 싸움붙이는 것 보다 더 힘든 일 아니었을까요?
레전더리는 유니버설을 포기합니다. 일단 워너와 더 밀접한 관계이기도 했고, 유니버설 없어도 킹콩 영화는 만들 수 있거든요.

오리지날 [킹콩]은 사람들이 저작권에 지금처럼 처절하지 않던 시절에 나왔던 영화라서 시간이 지난 후 서로 니거네 내거네 하며 싸우다 오랫동안 판권이 꼬인걸로 유명했었죠. 글구 이미 오래전에 미국 대법원에서 판결까지 냈어요. 콩이란 이름을 가진 덩치큰 고릴라에게는 주인이 없다고. 그래서 동키 콩이 지금도 계속 나올수가 있죠.
심지어 워너에서는 이미 콩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만화)영화를 내기도 했었습니다. 다만, '킹콩'이란 제목의 권리는 현재 유니버설이 가지고 있다는 것 같습니다. 제목과 오리지날 영화에 나오는 요소들을 갖다쓰지 않는 한, 누구나 이름이 콩인 집채만한 고릴라가 나오는 창작물을 만들 수 있다나봐요.

레전더리 입장에서는 어차피 스토리, 캐릭터는 새로 만들어야할 테고, '킹콩'이라는 제목만 못쓰게될 뿐이었죠. 그것만 해도 큰 타격이긴 합니다. '킹콩'의 브랜드가치가 상당하니까요. 그래도 적어도 미국 사람들은 그 고릴라의 이름은 '콩'이고, '킹콩'은 닉네임이란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으니 해볼만하다 싶었겠죠. 그래서 [스컬 아일랜드] 제목에다 '콩'을 붙이고는 몇몇 꼼수를 써서 킹콩이란 제목을 못쓰게된 아쉬움을 해소합니다. 'Kong is King'ㅎㅎ


근데 뭐 미국 저작권에 관심이 덜한 일본이나 중국쪽에서는 걍 킹콩, 금강이란 이름을 그대로 썼어요. 그니까 우리나라도 킹콩이란 이름 그대로 갔어도 문제는 없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글구, 이왕 둘을 싸움 붙이기로 한거, 마침 그때 마블 MCU가 돌풍을 일으키며 개나소나닭이나말이나 다 나서서 무슨무슨 유니버스어쩌구 하는걸 내세우자 거기 편승해서 괴수버스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입니다. 그러니 뭔가 좀 거창해 보이는 효과는 있었죠. 몬스터버스... 말은 거창하지만 사실은 고지라 시리즈의 간판만 바꿔단 것 뿐이예요.

60년대에 몇편의 단독 괴수영화들이 반응이 시원찮자 토호는 더이상 신작괴수영화를 만드는 걸 포기하고 고지라 속편들만 줄창 만들었습니다. 기존에 독자영화로 나왔던 친구들도 다 거기 넣어버렸고요. 그러니 이미 고지라 시리즈가 몬스터 유니버스 역할을 하고 있었고, 킹콩도 그 안에 이미 들어있었어요. 토호가 그 복잡하게 꼬였다는 킹콩 권리를 어찌어찌 구입해서는 킹콩과 고지라가 싸우는 영화를 60년대에 만들었었죠.

[고질라(2014)]는 애초에 유니버스 어쩌구 이런걸 염두에 두고 만든 영화가 아니었고, [콩: 스컬 아일랜드]가 본격적인 몬스터버스의 시작입니다. 물론 원래의 피터잭슨 기획에서는 제목만 남고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었죠. 글구 [스컬...]을 만든 목적은... 킹콩과 고지라 사이의 갭을 줄이는 거였던 것 같아요.
둘은 아예 근본 세계관이 다르거든요. 고지라와 킹콩이 싸우는 영화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은 전세계의 영화팬들은 똑같은 반응을 보였죠


"킹콩 불쌍해서 어쩌나!"

일단 체급 차이가 말도 안되는 데다, 고지라는 핵폭발을 씹어버리고 탄생한, 인간이 만든 가장 강력한 무기로도 제거할 방법이 없어서 가상의 무기를 등장시켜서 처치해야했던 존재입니다. 킹콩은 겨우 1차대전때 비행기에서 쏘는 기관총을 맞고 뻗어버린 허약체질인걸요. 싸움이 되나요 이게. 고지라가 그냥 밟아버리면 바로 피떡이 될텐데...

60년대 일본 영화에서는 '우린 그딴 거 몰라요' 하고는 그냥 둘을 동등한 존재로 취급해서 싸움을 붙였죠. 거기 나오는 킹콩은 고지라와 동급으로 벌크업된, 이름만 킹콩인 별개의 괴수였습니다. 토호의 [킹콩 대 고지라]는 일본 내수관객을 타겟으로 만든 영화니까 애초에 일본 바깥쪽 사람들이 거기 나오는 킹콩은 계보에 쳐주지도 않았죠. 70년대에 디노 데 라우렌티스가 [킹콩]을 리메이크했을 때 그걸 최초의 리메이크라고 했잖아요.([킹콩 대 고지라]도 킹콩 나오는 파트는 원작의 스토리를 그대로 재탕한 리메이크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말이 안되는 이 대결을 성사시키려면 어떻게든 콩을 벌크업시켜야 하는데 그렇다고 60년대 일본애들이 했던 것 처럼 막무가내로 콩의 크기를 고지라와 동급으로 키울수는 없죠. 그럼 킹콩의 팬들이 '이게 무슨 킹콩이냐!'라고 버럭할 겁니다.(일본애들이야 둘 다 사람이 입고 연기하는 옷이니까 덩치가 같아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있지만요...) 더군다나 이번 고지라는 역대 최대사이즈(였으)니까요. 그래서 일단은 너무 심한 반발이 나오지 않을 선에서 적당히 크기를 뻥튀기하고는 거기서 또 [고질라(2014)] 보다 한참 이전으로 시대를 설정해 앞으로도 더 성장할 여지를 남겨두게 됩니다.

그리고는 세번째 영화 [킹오브몬스터]가 나왔죠.
이 영화를 보고는 영화팬들은 다시한번 놀라게 됩니다.


"아니 우리 콩 진짜 불쌍해서 어떡하니!"


안그래도 상대가 안되는데 [킹...]에서는 고질라를 더 강력하게 만들어서 그야말로 우주적인 재앙급으로 벌크업시킨 거였습니다. 설령 콩이 더 성장한다고 해도 저 괴물과는 도저히 상대가 되어보이질 않습니다. 콩이 고질라와 싸우려면 어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보였습니다. 도대체 무슨 요술을 부려서 둘이 싸울수 있는 상태로 만들려나...?

그리고 드디어 만인이 기다리던 [고질라 vs 콩]이 나왔습니다.
특단의 조치는 개뿔... 콩은 그저 나이 좀 먹어서 키만 좀 더 커졌을 뿐이었습니다. '그런 둘을 싸움붙이겠다고? 어떻게?' 거기에 대한 영화의 태도는, '우린 그딴 거 모르겠고... 고지라하고 콩이 싸우잖아. 뭘 따져. 그냥 구경이나 해요'

여기서 이 시리즈가 얼마나 생각없이 진행되었는지를 알 수 있죠.
정석대로라면 일단 고질라와 콩이 싸운다음에 화해하고, 그 뒤에 우주적인 존재가 쳐들어와서 둘이 편먹고 같이 대항해야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우주적인 재앙 먼저 불러와놓고 고질라가 그걸 물리쳐 범접불가능한 괴수왕이 되도록 만든 다음에야 아직 애송이에 불과한 콩과 싸우도록 만든 겁니다.
그러니까 이 몬스터버스라는 거창한 세계관은 처음부터 콩과 고지라에게 싸움을 붙이는 걸 목적으로 시작된 거였고, 그래서 콩과 고지라의 싸움이 최종장(토호와의 고지라 대여계약이 종료되는 작품)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걸겁니다.


뭐 이렇다 보니, 이 시리즈는 참으로 일관성 없는 괴상한 연작이 되었습니다.
방금 나온 신작은 일단 뒤로 미루고 그동안 몬스터버스로 나온 네편의 영화들을 함 보자면, 4편의 영화로 구성된 하나의 시리즈라기 보다는, 두편의 고지라 영화와 두편의 콩 영화로 구성된 복합체입니다.
이 둘은 각자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고, 내용도 따로놉니다.

[고질라]는 처음부터 유니버스 이딴거하고 관계없는 독립작품이었고,


[콩: 스컬 아일랜드]는 쿠키에서 다음작품 떡밥 뿌린거 말고는 역시 온전한 독립작품입니다.


[킹오브몬스터]는 [고질라]의 직격속편이고, 여기서 콩은 숨은그림찾기 수준의 카메오로만 나올뿐, [스컬 아일랜드]의 사건은 무시됩니다.


[고질라VS콩]은 [킹오브몬스터]에서 (고질라를 포함한) 몇몇 캐릭터와 일부 사건만 물려받았을 뿐, [스컬...]에서 이어지는 직격 속편이고 [킹오브...]의 내용 및 세계관이 놀라울 정도로 무시됩니다.(만약 그 세계관을 그대로 물려받았다가는 콩이 고질라한테 감히 덤벼볼 생각조차 할수없는 상황이긴 합니다만...)


고질라와 콩이 각각 속편을 따로 가지고 있고 두 이야기줄기 사이에 연결이 아~~주 느슨하거나 없는겁니다.

앞 세편이 각자 고질라연작 1,2편/어린 시절의 콩을 다룬 별개의 이야기로 완전히 나눠지니까, 사실상 네편의 작품중에 진짜로 고지라와 콩의 세계가 합쳐진 유니버스 영화는 [고VS콩] 하나뿐인 거죠. 그런데 그 영화는 또 막무가내로 고지라와 콩을 한데 엮어놨을 뿐 고질라 세계관을 무시해버린 겁니다.


그니까요... 처음부터 목적은 고지라와 콩을 싸움붙이는 거였고, 둘이 체급차이가 너무 나서 바로  붙일 수는 없으니 브릿지로 [스컬 아일랜드]가 들어가고, 그 사이에 (딱히 콩과의 유니버스 연계를 고려하고 만든 것 같지는 않은) 고지라의 독자 속편이 하나 끼어들어간 거 같은 모양새입니다.


고질라 시리즈 두편은 절대적인 재앙에 인간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코스믹 호러스러운 분위기이고 거기 맞춰 화면도 칙칙하고 어둡습니다. 대부분의 액션도 밤에 벌어집니다.

콩 시리즈 두편은 전형적인 소년모험물이고 콩의 성장이야기입니다. 화면도 밝고 색감도 화사하고 주요한 액션이 낮에 벌어지고 밤이라도 화려하고 울긋불긋한 조명 속이라서 어둡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두가지 이야기로 갈라지니, 보는 사람의 취향에 맞춰서 둘중 하나만 골라봐도 상관 없을 것 같습니다.(특히 고질라 영화 두편은 콩 영화는 볼 필요가 전혀 없을 정도로 독자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다행히 [고vs콩]이 코로나가 절정이던 시기에 유의미한 극장흥행을 기록하는 바람에 토호와 연장계약을 할 수 있게되어 시리즈가 지속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신작은 콩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어쩔수 없다고 봐요. 일단 고지라의 서사는 끝났습니다. 괴수왕 됐잖아요. 아마도 [킹오브..] 찍을 때만 해도 계약 연장해서 계속 할거라는 보장은 없는 상태에서... 토호의 임대괴수들로 뽑아낼 수 있는 이야기는 거기서 끝을 보자고 생각한 것 같아요.
고지라는 다시 또 계약 끝나면 놔줘야될 존재니까. 고지라를 이야기 중심에 깊게 박아넣기에는 약간의 주저가 따를 지도...?
그래도 이번 영화에는 전작이 무시했던 고질라 세계관을 어느정도 끌어들입니다.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더라도....


앞으로 이시리즈가 어찌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의 실책-세계관 최강자이자 인기짱인 악역괴수를 너무 일찍 소모한 것-의 여파가 [고질라X콩]에서 바로 드러났습니다. 이번의 빌런이 너무 부실해보였죠. 앞으로도 고질라와 콩이 계속 한편먹고 누군가와 싸워야하는 거라면 납득이 갈만한 악당, 상황들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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