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무임승차자에 대해서

2018.01.21 14:21

겨자 조회 수:1994

아래 MELM이 올린 '청년세대의 역린. 단일팀 문제'란 글을 읽었습니다. MELM님이 쓰신 무임승차자의 목록은 이렇더군요.


"비정규직, 서남대생, 간호조무사, 기간제교사, 각종 여성지원책, 지역균형선발, 이대 미래라이프대학, 정유라, 정용화, 그리고 북한(아이스하키팀)이에요."


이 부분을 읽고 제가 놀랐던 건 첫번째 비정규직, 두번째 각종 여성지원책 이었습니다. 다른 건 제가 뉴스를 잘 읽지 않아서 몰라도, 이 둘은 제가 반대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017년 11월 13일 지한파 경제학자인 후카가와 유키코가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합니다. 여기서 후카가와 교수는 중요한 발언을 하는데, "비정규직 생산성이 정규직보다 더 높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왜곡됐다"는 발언입니다. 보통 생산성은 노동자들이 산출하는 생산량을 생산시간으로 나눈 것인데, 한 시간에 생산하는 생산량이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더 높다는 말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한시간에 10개를 만들고, 다른 사람이 20개를 만든다면, 20개를 만드는 사람이 임금을 더 많이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옳고 그르고의 문제, 정의의 문제조차 아닙니다. 노동시장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생산성이 높은 사람에게 더 많이 보상을 줘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노동시장이 왜곡됐다는 것입니다.


후카가와 교수의 말에 따르면, 한국에서 이른바 무임승차자는 정규직입니다. 비정규직이 아닙니다. 생산성이 높아야 이윤이 나기 좋은데, 비정규직이 올려놓은 조직의 전체 생산성을 정규직이 나눠먹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정규직이 무임승차자라니 왜 이런 생각들을 하는 걸까요?


2017년 12월 27일에 시사인에는 '인천공항 정규직의 '무임승차론'이 폭로한 것'이란 기사가 실립니다. 기사 읽어보면 인천공항의 한 정규직 사원은 자기는 시험을 치고 들어왔는데, 비정규직은 시험을 치고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게 과연 정의로운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이 정규직 전환 대상들이 맡은 업무는 '공항운영·시설관리·보안검색·보안경비'이며, 한재영 비정규직 노조 대변인은 “인천공항 용역 노동자들은 평균 7년간 이곳에서 문제없이 같은 일을 해왔다. 그중에는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임금은 절반 수준을 받고 힘든 조건에서 일해온 사람들도 있다. 이들 모두에게 이제 와서 시험을 보라는 것인가”라고 묻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조직이 애초에 왜 사람을 고용하는가에 대해서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사람이 뽑는 것인지, 아니면 시험 잘 치는 인간을 보유하기 위해서 사람을 뽑는 것인지 말입니다. 정규직 사원은 '시험을 치고 시험에 통과한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정의라고 보지만, 애초에 그 시험을 보는 목적은 조직이 업무를 더 많이, 더 잘, 더 빨리 수행하기 위해서가 아닌가요?


단 한 번 시험을 통과한 것으로 평생동안 경쟁에서 벗어나 비정규직보다 적은 일을 하고 더 많은 돈을 법니다. 이것이 바로 무임승차자 아닌가요? 남들의 생산성으로 버티어지는 조직에서 적게 일하고 많이 월급을 가져간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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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저는 정규직이 필요 없다는 소리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정규직은 필요합니다. 조직이 그때 그때 시장에서 인력을 사와서 얻는 이득이 있고, 또 인력을 정규직으로 고용해서 조직이 얻는 이득이 있습니다 (Market vs. Hierachy). 그런데 저번에도 이야기했지만, 한국의 많은 인력은 사무직, 생산직 등 중간 수준의 일자리를 바랍니다. 아주 고임금 고숙련도 아니고, 아주 저임금 저숙련도 아닌 적당히 연봉이 높고 안정성이 높은 자리를 바란다는 거죠. 시험 쳐서 통과한 사람이나 통과 못한 사람이나 능력은 에 큰 차이가 없고 (KDI 최경수 연구원 말에 따르면 "동질적으로 양성된 청년들") 일자리를 한 번 잡으면 아득바득 마켓에서 싸울 필요가 없기를 바랍니다. 또 시험을 쳐서 올라가기를 바라죠. (9급 공무원이 7급 공무원 시험 치고, 7급이 5급 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조직의 목적이 시험 잘치는 인재를 보유하는 것이냔 말입니다. 일을 해야 조직이 돌아가죠? 그리고 조직이 돌아가야 돈을 벌어오고, 돈이 벌려야 경제가 좋아지죠? 


p.s.2.저는 노조에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노조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사인 기사 읽어봐도 인천공항에 비정규직 노조가 없었으면 저렇게까지 목소리를 높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귀족 노조'란 말 때문에 노동자가 무슨 귀족이야, 귀족은 노동하고 안살아, 하고 그 어휘에 대단히 진저리내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또, 맨날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니 정규직 노조의 월급을 깎을 생각을 말고, 공무원의 연봉을 깎을 생각을 말고, 비정규직의 임금을 높일 생각을 해야지 하고 반발하는 분들도 있는 걸 압니다. 그런데, 그런 말만 계속 되풀이할 뿐이지 비정규직 임금 높이는 데 누가 힘을 보태주었나요?


p.s. 3. 노동시장 유연성 이야기를 하면, 또 사람들이 진저리를 내면서 조선일보나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거 뭐 사람 자르기 쉽게 만들겠다는 거 아니야 하고 말이죠. 그럼 다 같이 비정규직 하잔 말이야? 하고 반발할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겨레에서 논점을 잘 정리해 둔 게 있으니 그걸 링크합니다. 이 토론에서도 노동시장 양극화에 대해서는 보수, 진보 쪽이 동의를 합니다. 그렇다고 고용보호가 높지도 않고, 뭣보다도 이상하게도 재취업을 잘 받아주지도 않습니다. 이 조직에서 저 조직으로 옮기는 게 쉽지도 않고, 또 실업했을 때 사회에서 안정망을 잘 주지도 않습니다. 한겨레 기사에는 없지만, 노동시장 유연성을 위해서는 사회 안정망 확충을 먼저 보강해야한다는 것은 꼭 빠져선 안되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p.s.4. 비정규직 이야기 하다보니 체력이 다 되었네요. 제가 오늘 여성행진 (Women's march) 다녀오고 맥주 한 잔 하느라 체력이 없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왜 무임승차자가 아니고 오히려 기차에 불 때는 노동자들인가하는 이야기까진 가지도 못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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