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5 13:52
듣던 대로 아름다움의 끝장을 보여줍니다. 예상과는 다르게 고전 조각상들이 그렇게 많이 나오진 않아요. 하지만 실물 조각상이 나오죠. 앨리오(샬로메)가 조각상이랑 똑같이 생긴 미소년이에요. 샷도 그렇게 잡고요.
여러 모로 탐미적입니다. 언어도 이탈리아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가 막 나와요. 등장인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러 언어를 쓰는 것이 관능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확실히 탐미적입니다. 다같이 영어나 이탈리아어만 써도 영화 전개에 아무 문제가 없는데 여러 언어가 나와서 아주 사치스러운 기분이 듭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 엄마가 '중세 프랑스 연애담'이라고 하면서 읽어주는 대목이 나오는데, 하필 독어버전이어서 (프랑스 연애소설이 왜 독어버전인지. -.-;;;) 독어로 한 번 읽고 그걸 해석해서 또 한 번 읊어 줍니다. 독일어가 굳이 등장할 필요가 없는데, 단지 독일어로 읊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 독어 버전이라고 설정한 듯합니다.
여러 언어가 귀를 간지럽히기 때문에 음성적으로 사치스럽다는 기분, 또 문화자본이 넘쳐난다는 점에서 또 사치스럽게 느껴지지요. 등장인물들의 생활은 거의 로마 귀족 같아요. 먹고 수영하고 악기 연주하고 책 읽고 노닥거리고 섹스하고.. 남는 게 시간입니다. 올리버는 연구하러 왔다는데 연구는 대체 언제 하는지. 영화 보면서 부러워 죽겠더라고요. 아름다움의 끝장을 보여주려고 작정했는지, 미소년이 기타치는 장면, 피아노치는 장면, 자전거타는 장면, 수영하는 장면 등등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배경이 1983년인데 1963년이든 2013년이든 아무 상관 없습니다. 그냥 초월적인 시간이에요.
풍경은 또 어찌나 아름다운지. 이탈리아 관광 홍보국에서 만든 영화인가 싶기도 합니다.
영화 보고 나서 동행과 이야기를 했어요. 이거랑 비슷한 영화를 예전에 봤었는데.. 이탈리아가 배경이고 역시 끝내주게 탐미적이고 화면 느낌도 비슷하고 영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등 여러 언어가 막 나오는... 뭐더라? 아. 맞다. '아이 앰 러브'였지.
그런데 아이 앰 러브 감독이 이 영화 감독이네요. 루카 구아다니노;;;; 어쩐지 정말 비슷한 느낌이더라고요.
아래는 약스포? 영화평만 봐도 그리고 예고편만 봐도 다 나오는 거라서 스포 아닌 것 같지만. 피하고 싶은 분은 패스하세요.
연애의 두근거림이 놀라울 정도로 잘 살아 있어요. 처음의 밀고당김도 그저 다 아름답고 섬세합니다.
그나저나 미성년 아들이 성인 남성과 연애를 하는데 막 대놓고 밀어주는 엄마라니;;;;; 그냥 모른 척 눈 감아주는 것도 아니고 적극적으로 밀월여행을 보내버립니다. 아무래도 오버스럽게 느껴지더군요.
죄책감이나 갈등 같은 건 무시하고 아름다움을 즐겨~ 라는 연출이라 고용인(하인, 하녀..)들도 자기 생활에 만족하는 것처럼 나와요. 계급 갈등 따윈 신경쓰지 않겠다는 거죠. 보는 저는 좀 불편했습니다.
2018.04.05 14:02
2018.04.05 15:42
어케 그렇게 맑은 날만 찍은 거죠;;
2018.04.05 17:13
그래서 햇살이 그렇게 청량했군요. 비온 뒤에 해가 반짝 뜨면 진짜 날이 맑으니까요.
2018.04.05 14:23
2018.04.05 15:42
마음은 아직 청춘. 몸이 안 따라주는 게 슬프네요. 흑.
2018.04.05 16:56
원래 남자 동성애자들 얘기니까요. 그리고 엘리오 여자 친구의 성숙한 태도가 괜찮더군요. 물론 17세라서 가능한 얘기긴 하지만...(27이면...-_-;;)
2018.04.06 13:05
엘리오 여자친구들도 비현실적으로 어른스러워요. 물론 걔들이 드라마에 난입하면 복잡해지니까 연출상 그냥 쳐낸 거겠죠.
2018.04.05 16:04
많은 언어가 사용되는 것, 또한 여러 다른 시간대의 문화물이 생활속에 있는 것은 앨리오 가족이 유대인인 것과 관련있습니다. 세상 어디에나 속하면서 또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죠. 앨리오가 우리는 discreet jews라고 하지 않나요? 올리버는 여러모로 앨리오 집 사람들과 다릅니다. 올리버를 본 앨리오의 첫 표현은 confident이고 그는 은 긍적적인 의미로 사용한게 아니지요. 올리버는 자기가 자고 싶을 떄 자고, 먹고 싶은대로 먹고, 다비드별을 하고 있습니다. 올리버의 존재가 처음에 거슬리는 이유는 올리버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갖혀있지 않기 때문이죠. 그런 사람이 책에서는 오직 앨리오의 시선으로 그려진다는 게 흥미롭기도 해요.
2018.04.05 16:54
저도 이 사람들이 유대인 중산층이라는 점에서 정말 뭔가 전형적인 부르주아 지식인들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대인 중산층이 지적이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라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2018.04.05 16:11
(원작소설을 보면 올리버는 영어로 출간했던 본인 논문을 이태리어로 출간하려고 번역자와 교정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저야 영어, 불어, 이태리어를 구분할 수준밖에 안되지만 히어링이 되는 평론가에 따르면 엄마역 배우만 빼고 나머지의 불어와 이태리어는 좀 어색했다고 하네요.
2018.04.05 16:24
2018.04.05 17:11
오히려 저는 이 영화가 은근 정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굳이 배경을 원작의 87년에서 83년으로 옮긴 것도 그렇고(감독 인터뷰에서 아직은 에이즈 광풍이 몰아치기 전) 대처와 레이건의 신보수주의 집권 전으로 잡았다고 하더군요. 그런 분위기에서 이렇게 마냥 동성애를 아름답게만 그리기가 뭣했을 테니까요. 그리고 영화 중간 중간 좌우대결로 시끄러운 얘기들이 나옵니다. 무솔리니의 얘기도 나오고(이 때 무솔리니 손녀딸이 정계에 진출하면서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었죠.) 파르티잔(빨치산)에 대한 (긍정적인)얘기도 하죠. 그 때문인지 5개 정당이 난립하면서 연정을 이루지 못해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어진 얘기라든가...사실 주인공들은 정치나 사회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는듯 한데 주변 사람들이 열심히 이 얘기들을 하고 또 감독이 이들의 이야기를 적지 않게 들려줘서 재밌다...하면서 봤습니다. 그리고 마팔다나 안키세스 처럼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계속 비춰주는 것도 감독이 상당히 이 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급문제라든가 노동문제에 대해서 판단하는건 관객의 몫이라는 거겠죠.
그런데 확실히 어머니 아넬라 캐릭터는 비현실적...
2018.04.06 13:07
오호. 그렇게 생각하니 굳이 83년인 이유를 알겠네요. 콘돔과 경구피임제가 나왔고 아직 에이즈 공포가 없던 그 짧은 시기 동안 서구는 진정한 성해방 분위기였다고 하죠.
2018.04.05 17:51
그냥 여러 방면에서 들려오는 평을 들을수록, 이 영화를 보고 싶던 마음이 푸슈슉 사라집니다. 잘난 행복한 백인 남성 서사에 지친 것도 있고요. 여성 캐릭터를 매우 도구로 써버린다는 평도 많이 보이고요..
2018.04.05 17:57
그런데 이런 스토리에서 여성 캐릭터가 주도적으로 나선다면...그것도 문제인게, 두 남자의 사랑을 방해하는 훼방꾼 역할 밖에 더 있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요. 반대로 여성 동성애자가 주인공인 영화에서 남자 캐릭터들이 들러리로 나오는걸 생각해 본다면(예를 들면 캐롤) 이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의 지분이 작은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8.04.05 18:47
2018.04.05 20:50
2018.04.07 2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