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게가 복구되었네요. 오늘 중으로 복구 안 되면 후기 쓰지 말라는 하늘의 뜻으로 알고 안 쓰려고 했는데... ^^


사실 <악령> 상권의 66페이지에 스따브로긴이 나오는 부분을 읽으면서는 드디어 비뚤어지고 자학적인 마성의 꽃미남 캐릭터가 등장하는구나 싶어서


기대감이 하늘로 치솟았어요. 그런데 그 부분이 지나고 한참을 읽어도 스따브로긴이 다시 등장을 안 하니까 재미가 뚝. 뚝. 뚝. 떨어지더군요. 


저는 스따브로긴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분량으로만 보면 이런 장편의 주인공이라고 하기엔 턱없이 적은 분량에 등장해요.  


이 사람 말고는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다른 캐릭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권에서 자살에 대한 흥미로운 의견을 제시하는 끼릴로프 정도가 있는데 


끼릴로프는 거의 엑스트라급으로 상권과 하권에 잠깐씩 등장하죠.)


제가 이 소설에 별로 재미를 못 느낀 이유는 아마 1100페이지에 달하는 막대한 분량을 끌고 나갈 수 있는 매력적인 주인공 캐릭터가 없어서일 거예요. 


아니 매력적인 캐릭터는 있는데 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저에겐 문제였죠. 


스따브로긴이 등장할 때마다 긴장감이 생기고 흥미로워지긴 하는데 도대체 이 사람이 자주 등장하질 않아요. 


스따브로긴과 세 여자 - 마리야, 리자베타, 다리야 - 와의 관계도 얼마든지 흥미로운 방향으로 진전될 수 있었을 법한데 의외로 별다른 사건의 전개 없이 


끝나버리더군요. 


스따브로긴의 엄마인 바르바라가 다리야를 나이도 많은 스쩨판 뜨로피모비치와 서둘러 결혼시키려고 할 때부터 스따브로긴과 다리야 간에 무슨 관계가


있긴 있었던 것 같은데 다리야의 결혼이 없던 일로 되어버리면서 스따브로긴과 다리야 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흐지부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요. 


스따브로긴과 리자베타와의 관계도 리자베타의 약혼자가 스따브로긴을 찾아와서 리자베따를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 어쩌구 저쩌구 


할 때만 해도 세 남녀 간에 뭔가 비정상적이고 집착하는 삼각 관계가 형성되는가보다 하고 흥미진진하게 봤는데 축제 후 스따브로긴과 리자베타의 


원나잇(?) 같은 걸로 대충 정리되고 서로 각자 갈 길 가버리고... 


스따브로긴과 정신이 이상한 여자 마리야와의 결혼은 그야말로 비뚤어진 스따브로긴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줄 핵심적인 이야기가 될 줄 알았는데 


그것도 별다른 설명 없이 넘어가 버려서 실망이었어요. 


스따브로긴은 나중에 돌아온 샤또프의 아내와도 진한 관계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샤또프한테 따귀도 거하게 한 대 맞았고...) 그 관계에 대해서도 


도스토예프스키는 입 딱 씻고 아무 말도 없고... 


하여간 스따브로긴이 무슨 일을 많이 저지른 것 같긴 한데 소설 속에서 도무지 이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에 대해 자세히 묘사를 안 해주니


소설이 진전되어 나가질 않더군요. 


도스토예프스키가 뭔가 비정상적인 연애를 그리는 데는 좀 약했던 걸까요?? 아님 다양한 여성캐릭터를 그리는 데 관심이 없었던 걸까요??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보면 이 작가는 비정상적이고 자학적이고 비뚤어진 캐릭터를 그리는 데는 도가 튼 것 같은데 말이죠. 


<지하생활자의 수기>나 <죄와 벌> 등 다른 소설에서는 독자가 주인공의 펄떡거리는 고통스러운 심리 상태를 그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했던 심리 묘사를 이 소설에서는 별로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도스토예프스키 작가께서 스따브로긴이라는 흥미로운 캐릭터를 왜 이렇게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는지 저는 굉장히 이상해요.  


이 작가는 주인공 캐릭터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 캐릭터도 하나 하나 생생하게 만들어 주시는 분인데 이 소설에서는 도무지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가슴을 파고드는 캐릭터를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하권에서 아내가 돌아온 후의 샤또프나 끼릴로프 정도만 좀 매력적이었죠.) 


스쪠빤 뜨로피모비치나 현 지사인 폰 렘브께에 관한 세세한 묘사들을 보면서는 작가가 이 사람들을 통해 뭘 말하고 싶은지 솔직히 잘 이해가 안 갔어요. 


바르바라에게 20년 넘게 얹혀사는 무기력한 지성인(?) 스쩨빤, 부인인 율리아에게 꼼짝없이 쥐여사는 무기력한 정치인 폰 렘브께의 삶을 그냥 


풍자적으로 묘사하고 싶었던 건지 뭔가 더 심오한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건데 제가 못 알아들은 건지...  


하여간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좀 너무 희화화되어 있어서 실제 인물의 현실감을 느낄 수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해요. 


이 소설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철학 혹은 사상이라고 할 만한 것도 제가 기대한 만큼 그렇게 많이 드러나 있진 않네요. 


<지하생활자의 수기>,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에서는 등장 인물들의 독백이나 대화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인간에 대한 생각, 


선과 악, 종교에 대한 생각이 잘 드러나 있어서 그런 부분을 흥미진진하게 읽었는데 이 소설에서는 기대한 것보다 그런 부분이 굉장히 적어요. 


도스토예프스키의 신에 대한 생각은 끼릴로프의 자살에 관한 말들, 하권 마지막에 있는 스따브로긴의 고백 부분에서 잠깐 드러날 뿐이어서 


제 궁금증을 만족시키기에는 터무니없이 모자라네요. 


이 책은 뭐랄까... 신과 인간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고민을 담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러시아 귀족들에 대한, 그리고 그들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왁자지껄한 한 편의 블랙 코미디 같아요. 


뭔가 상당히 과장되어 있고 우스꽝스러운데 어떤 부분이 웃기다고 딱 꼬집어 말하기는 힘든...  소설이라기보다는 연극적인... 


제 나름대로는 열심히 읽었지만 날씨도 너무 덥고 하루에 읽어야 할 양도 많아서 얼마나 잘 이해하면서 읽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보통 소설 읽을 때 1시간에 60~70페이지는 읽는 것 같은데 이 책은 1시간에 평균 30페이지 정도 읽은 것 같아요.  


하루 목표량 400페이지를 읽으려고 하루에 거의 13시간은  읽은 것 같네요. (하루 계획량 완전 잘못 잡았어요. ㅠㅠ)


그런데 그렇게 안 읽었으면 영영 못 읽었을 것 같기도 해요. 솔직히 제 기준에서는 별로 재미가 없었거든요. 


(하권의 800페이지부터 끝까지는 재미있어서 술술 읽혀요. 하권은 600페이지에서 시작해서 1099페이지에서 끝납니다.) 


솔직히 저에겐 그리 흥미로운 소설이 아니었는데 혹시 이 소설을 아주 재미있고 감명 깊게 읽은 분이 계시다면 좋게 읽은 부분들을  


알려주시면 제가 놓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어제까지는 죽기살기로 읽었고 오늘은 띵까띵까 놀았는데 역시 저는 사회적 압력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안 하고 노는 사람이라는 걸 


뼛속까지 느껴서 계속해서 듀게에서 압력을 받도록 독서 광고를 할 수밖에 없겠어요. ^^ 


내일과 모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을 읽고 목요일에 후기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역자 해설을 빼면 총 450페이지니 하루에 225페이지, 7시간 정도만 읽으면 되겠어요.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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